벚꽃놀이는 못 가고 제주 4.3 사건 팟캐스트를 들었다.
행운의 봄
행운이 널린 봄이다
하루하루 간질이는 봄볕을
닷새도 못 참고
빵 터진 꽃봉오리
친구야, 여기 서울엔
걸음걸음 아껴 걷는
윤중로를 따라
경희궁 뒷길을 따라
벚꽃이 매화꽃이 지천이다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으로
어제 찍은 꽃을 또 찍고
또 찍어서 보낸다
아서라, 제주엔
벚꽃이 지면
유채꽃이 피고, 또
무꽃이 한 데 모여 핀단다
그래, 산다는 건 결코 운이지
행운이지
꽃 피는 사월
잊지 않으려 사진을 찍는 사람과
기억을 부르는 꽃을 피워대는 섬과
여린 잎처럼 생생한 그날의 기억이
뒤섞여 흩날린다
봄이 오면 나처럼 게으른 사람도 시간 앞에 조급해진다. 여기저기 만발한 벚꽃을 보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출퇴근길에도, 점심시간 산책길에도 왕벚나무나 매화나무가 종종 있어서 그렇게 꽃놀이에 목맬 이유가 없는데도 아주 사소한 것들이 마음을 그렇게 밀어붙인다. 평일 사무실 창 뒤로 비치는 햇볕이, 간만의 연차인데 나들이 계획은 없는지 묻는 스몰 톡이, 주말이면 같은 색으로 찍혀 올라오는 인스타 피드들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다고 외압적인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가 일찍 드는 주말에 눈을 떠서 바로 날씨를 체크했다. 비 소식은 다음 주 수요일에 있다. 남들보다 꽃놀이를 조금 늦게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기회가 사라져 버리는 건 싫다. 그래, 나를 움직인 건 봄의 시작이 아니라, 봄의 마지막이었다. 언젠가 대학생 시절 바닥에 꽃송이 째로 떨어진 붉은 목련을 보았다. 잎이 껍질처럼 검게 녹아 도시 미관을 해치는 꽃 1위. 그 목련 꽃송이는 아직 녹지도 않고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애석한 마음이 들었다. 너도 한 때는 누군가를 설레게 한 생명이었을 텐데.
그러곤 생각했다. 앞으로는 만발한 꽃만이 아니라 꽃잎이 어떻게 떨어지고, 누구한테 쓸려서 어디에 쌓이고, 또 어떤 모습으로 녹아서 거름이 되고 흙이 되는지 똑똑히 지켜봐야지. 날씨 뉴스에서 주야장천 말하는 개화시기 말고, 꽃이 완전히 져서 없어지는 시기도 알아둬야지. 물론 이건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는 못한 일이다.
해서 금요일 연차일에는 나들이를 나갔다. 큰 에코백에 비눗방울과 마트에서 산 먹을거리 등을 챙겨서 한강으로 나갔다. 택시를 타고 불광천을 달리며 만개한 벚꽃길을 만났다. 창밖으로 연신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망원 한강지구 한복판에 돗자리를 깔고 보이는 풍경마다 사진을 찍었다. 꽃도 찍고, 꽃나무 아래 서서도 찍고, 꽃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는 커플의 사진도 찍었다. 이 정도면 올봄의 인스타그램 숙제도 끝이다.
걸음걸음마다 다르게 피어있는 꽃과 나무 때문에 극한으로 느려진 이동속도에 남자 친구는 조금 답답했나 보다. 사진은 그만 찍고 눈에 많이 담아둬야지. 늘 하는 소리다. 그럼 바로 대꾸한다. 눈에도 담고 있어. 사진 찍는 기술도 없기에 카메라 렌즈에 담기는 풍경과 내 망막에 비치는 풍경이 천지차이임은 나도 안다. 그래도 어쩌랴, 오늘이 아니면 일 년 내내 다시는 볼 수 없는 2022년의 봄꽃이 내 앞에서 이렇게 환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데. 눈에 담지 않으려고 카메라만 보는 게 아니라, 좀 더 오래 보려고 사진을 찍는 거다. 아, 내년에는 이렇게 대꾸해봐야겠다.
금요일 나들이는 신나게 즐겼지만, 주말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집 밖에 나서지 못했다. 위장이 아프고 생리통도 심해서 수선 맡긴 여름옷도 찾으러 못 갔다. 하필이면 불광천 벚꽃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별수 없이 배 위에 핫팩을 올려두고 창 밖으로 파란 하늘을 구경했다. 그리고 평일에 못 들은 팟캐스트를 재생했다.
이번 주엔 제주 4.3 사건을 다룬 역사 이야기가 들려왔다. 곧 있으면 세월호 8주기라는 소식을 들은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슬프고 잔인한 이야기를 침대에 누워서 자세하게 들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내용을 서른이 넘어 귀로 한번 더 배웠다. 캄캄한 방, 머리에 겨눈 총구 소리,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영문모를 2분법 질문에 생사가 오갔다. 그리고 여전히 공론화하기에는 살아있는 아픔이 너무 많다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
머리가 지끈해져 나무 사진을 올리러 SNS에 들어갔다가 이웃이 올린 제주도 풍경을 보았다. 아래 지방은 벌써 벚꽃놀이는 한물 간 모양이었다. 대신 천여 평은 족하게 펼쳐진 유채꽃밭과 무꽃 밭 사진이 있었다. 희고 또 처연한 보랏빛이 감도는 무꽃은 처음 보는 꽃이었다. 수수하고 기품 있게 핀 무꽃에는 슬픈 설화도 깃들어 있었다.
그날의 제주 주민들에게 생명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냉기는 사라지고 봄꽃이 만발하는 4월에, 잊지 않아야 하는 생명이 또 하나 있었다. 우리 사는 길에 생명이 피고 지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봄날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닐 테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별 다른 걱정 없이 주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너무나 큰 행운이라고 느껴졌다.
금강스님의 경향신문 기고 한 편을 읽었다. <슬픔은 DNA처럼 그 사회에 유전된다>는 제목이었다. 문득 봄이 되면 카메라를 들고 뛰어나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그저 강박이나 인스타 중독으로 치부한 것이 부끄러웠다.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생명을 기록하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경외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랑스러운 본성은 아니었을까. 봄이면 쉼 없이 종을 바꿔가며 꽃을 피워대는 육지와 그 섬도 어쩌면 '그날'을 잊지 말자는 대화의 물꼬는 아니었을까.
꽃 한 송이의 생명, 오늘따라 그것이 아름다운 만큼 스멀스멀 져 가는 모습이 애달프다. 비록 동네 벚꽃축제는 놓쳤지만 선선한 창문 아래, 왜 4월은 잔인한 달인 지 한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는 개화 뒤에 필연으로 따라오는, 꽃이 예쁘게 지는 모습을 꼭 관찰해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