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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만월 May 10. 2024

감사로 무장하기; 신 앞에 기도

2023년 9월 옥수역 계단에서

2023년 9월 가을

양육권 및 양육비 책정을 위한 인터뷰가 있어 

양재동 서울가정법원에 갔다.

2022년 5월 봄

협의 조정을 위한 인터뷰가 있어

아이 아빠를 보고는 처음이었다.


바보같이 손발이 떨렸다.

화장실로 숨었다.

그때처럼 변호사가 동행해 주지 않았다.

기둥 뒤 자판기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조사원이 누구누구 님 오셨어요? 호명 소리에

그때 인터뷰실로 재빨리 들어갔다.  


조사원은 그 사람과 나를 옆으로 나란히 앉게 하고

그와 나를 마주하고 앞에 앉아 인터뷰를 했다.

조사원은 인터뷰에 앞서

양육권과 양육비 책정을 고려하자리이므로

그 밖의 이야기들은 다루지 않는다고 주의를 주었다.


인터뷰가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의 과거사부터 들춰기 시작했다.

나의 어린 시절 가정사부터

방황하던 시기 개인사까지

그에게 듣는 나의 과거사는 잔혹사 그 자체였다.

다급해지는 순간 드러나는 그의 밑바닥이었.


나는 인터뷰 초반 20분쯤 지나서였을까.

말하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기를 선택했다.

무슨 말을 할쏘냐.

여기는 양육권과 양육비를 고려하는 자리이다.

계속 마음으로 되뇌었다.

시험에 들지 말자 되뇌었다.


2시간 반, 3시간 

나의 잔혹사는 드디어 끝이 났다.

그에게서 적나라하니 고스란히 었다.

진이  빠져 인터뷰실을 나왔다.


이곳은 아내 분을 비난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사람을 끊어준 조사원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걱정이 들었다.

인터뷰실을 나가면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이 하나인데

여기서 어떻게 혼자 갈 수 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조사원에게 인사를 하고는

바로 문을  열고 나서서부터 달렸다. 

여자화장실로 숨었다.

10분을 부스 안에 들어가 있었다.

007을 찍듯 주위사방을 경계하며 화장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선택했다. 

한 층씩 내려올 때마다 그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1층 로비, 출입문 옆쪽에 자리한 커피숍에서

이제 막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그가 보인다.

다시 달렸다.

정문 출입문을 밀어젖히고 양재역까지 뛰었다.

전철을 탔다.

내가 탄 칸에 그가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안도감이 들더라. 휴~


안도감이 들고나자 우울감이 들었다.

급한 상황에 내몰리자 쏟아내는

그의 무자비함 속에 속수무책으로 있던 나.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네가 아직 덜 당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천성이란 게 있긴 한가보다 생각도 들었다.


경의중앙선을 타려고 옥수역 환승 계단을 내려가는데

정면 위쪽으로 환한 빛이 보였다.

계단같이도 보였고 창문같이도 보였다.


하늘로 통하는 문일까 싶었다.

저기서 뛰어내리면 좋겠다 싶었다.

저기로 뛰어내리면 여기서 사라질 수 있나 싶었다.


누굴 탓하랴. 네가 선택한 사람이잖아.

나에 대한 한심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저를 긍휼히 여기신다면, 주여, 저를 데리고 주옵소서.


한 줄기 빛으로 보였다.

창조주로 여겨졌다.


신이시여, 저를 거둬주소서.


감사를 미친 듯이 외지 않으면 무장해제된다.

그 새를 못 참고 비집고 나오는 마음들로 건강하지 않다.

희망하고 확신하고 싶은데

조금만 방심해도 비집고 나온다.

사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이다.

감사하자. 감사하자.

감사한다. 감사한다.  


주일날 성당에서 묵주기도 5단을 읊는다.

회개하고 매달려 감사로 무장한다.

신의 가호가 나와 함께하기를

신의 가호가 나의 가족과 함께하기를

기도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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