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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만월 May 28. 2024

내담자의 No Show

무조건적으로 옆에 있어 주기

오늘 내담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근 후 수련받는 곳에서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사례다.

회기 수가 50회기가 되어 간다.

상담 초기 얕게 별일 아니듯 언급되었던 부분이

회기가 거듭될수록 깊게 다뤄지기 시작했

내담자의 웃음은 온데간데없고 눈물은 쏟아졌다.

"제가 이런 얘기까지 할 줄 몰랐어요.

 저의 사적인 얘기를 꺼냈어요."

그런 뒤로도 여러 회기가 그렇게 반복되었다.


오늘 내담자의 노쇼(no show)는 내 기분 탓일까.

이제부터 시작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자기 내면의 깊은 얘기를 꺼내고

감추고 있던 눈물을 쏟고 나면

이제 되었다 생각하곤 한다.

이제부터 시작인데.

걸음마 뗀 것일 수 있는데.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오래전 내 모습이 생각났다.

노쇼를 밥 먹듯

제때 상담료 입금도 안 하고

핸드폰 꺼놓고 잠수 타고

그렇게 몇 주 뒤 다시 나타나고.

당시 나를 무참히 처참히 기다려주시던

상담 선생님, 현재 나의 교육분석 선생님.

어떤 마음으로 내 옆에 계셨을까.

상담사가 되고 나서 그분을 생각하면

더욱 고맙고 감사하고 위대하다.


피곤함을 이끌고

퇴근 후 부랴부랴 서둘러

상담실에 도착해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막 내담자에게 전화가 왔다.

 이유를 들어 마음이 놓이면서 목소리를 들어 반가웠다.

 연락 줘서 고마워요 인사를 건넸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내담자의 안위가.

 다음 주 일정을 알려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통화를 마쳤다)


오늘 오전 일정을 정리하기 위해 수련센터에 문의했다.

2학기 등록을 해야 현재 맡은 사례를 계속할 수 있다 하여

수련비를 입금하고 재등록 신청서를 제출했다.


두 사례 중 한 사례는 내 생애 첫 내담자로

수련센터에서 사례 배정해 주기 전에

개인적으로 구해서 연이 닿았다.

햇수로 4년째 80회기가 넘었다.

오늘 사례 또한 내 생애 첫 내담자로

수련센터에서 사례 배정해 주어 연이 닿았다.

햇수로 2년째 50회기가 되어 간다.


회기가 거듭될수록

이들의 감정은 농도가 짙어지고 있다.

상담을 오랜 시간 받으며

나를 알아간다는 것이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기에

이들과 함께하려는 것인지.


내가 이들과 함께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

내가 마주해야 하는 화두가 있는 것인지.


언제까지 나는 이들과 함께할 것인지.

언제까지 이들이 나와 함께할 것인지.


무조건적으로

내담자 곁에 있어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문장의 주어를 바꿔보니

내 곁에 내담자가 함께하고 있고

이들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난다.

내담자와 함께 머무르다가

내담자를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하므로

무조건적으로

내담자 곁에 있어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님을 마주하기를 두려워 말기를.

내담자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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