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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고 있는 삶에게 오해받게 하지는 말아야지!

나의 고상함이 깎이며 모남도 깎인다

by 세만월

가을운동회였다.


어제저녁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도 오지?

엄마는 못 가는데.

아이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오, ○○야. 울어?

학교에서 별 얘기가 없길래

회사에 휴가신청을 안 냈지.

나도 오늘 들었어.

아, 그랬구나.

알겠어. 팀장님께 얘기하고 내일 갈게.

할머니, 할아버지도 다 갈게.

울지 마, ○○.

아이는 다시 <신비아파트>를 보며 귀신 얘기를 한다.


요전날 담임선생님이

아이스박스를 부탁하셔서

오늘 아침 아이스박스를 트렁크에 싣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갔다.

아이스박스를 전달드리려고

아이 반에 가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아이 학년 천막으로 향했다.

아이는 나랑 할아버지를 보자

엄마! 할아버지! 하고 부른다.

아버지도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나눈다.

아버지는 교실에 있는 아이에게

미소를 띠고 손을 흔든다.

(아이가 웃는다. 좋다.)


학부모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았다.

학부모로서 한 경기 참여했다.

아이 학년 경기가 모두 끝나고

고학년 경기가 남아 있을

기차 시간에 맞춰 회사로 향했다.

못내 아쉬워 아이가 있는 맞은편 천막 쪽으로 갔다.

운동장을 가로지르지 않고 옆 건물들을 통해 갔다.

별관 현관문에서 보니 아이가 천막 아래 의자에 앉아 아이들과 얘기 나누는 게 보인다.

그 뒤로 담임선생님이 보인다.

굳이 내가 가는 걸 말할 필요 없겠다 생각했다.

아이 학교 행사 중에 가서 인사하는 것도 실례일듯했다.


아이가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기차역으로 갔다. 팀장님에게 복귀 시간을 알렸다.

덕분에 아이 학년 경기 참여 잘하였다는 인사도 했다.


어제저녁 팀장님에게 느닷없는 휴가신청을 하게 되면서

한두 줄의 간단한 내 사정얘기를 했다.


아이아빠와 3년째 이혼소송 중에 있는데 판결1심은 올 겨울쯤 난다고 해요. 아이는 2주에 한 번 아빠를 만나고요. 그래서 아이에게 더 신경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불편한 얘기드려 죄송합니다.


휴가 잘 쓰고 오라는 팀장님의 톡을 아침이 되어서 확인했다.

휴~ 이제 아이 가을운동회 다녀오면 되겠다!


○○야, 오늘 운동회야. 얼른 준비하고 가야지. 일어나.

아이는 운동회 소리에 바로 일어난다.


오늘 저녁 퇴근길에

운동회 어땠냐는 안부 영상통화를 하고

내일 퇴근하고 보자, 잘 자, 하면

하루 일과 무사히 ^^

아이를 키우며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마주하며

사람들에게 불편한 얘기도 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불편한 배려도 받게 되고

원치 않는 상황에 원치 않는 행동을 하게 되면서

내 고상함이 깎이며 내 모남도 깎이는 것 같다.


얼마 전 슈퍼바이저님의 조언이 생각났다.

이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당신 삶에게

억울한 오해를 받게 해서는 안 되지, 적어도.

선생님은 지금 오해를 받을 게 아니라 배려를 받아야 해요.

사람들을 깔보지 말고 팀장님이든 윗사람이든 얘기해요.

그러면서 사는 거야. 그걸 배우는 거야.

무조건 견디지만 말고 짜증도 내고 욕도 하면서 표현도 하고, 나눠요.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내 삶에게

오해를 받게 하지는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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