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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만월 Oct 17. 2024

옷장 속

여전히 옷장 속

한 30대 후반 남성,

저 멀리서 오는 소리가 들린다

집집마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육두문자와 함께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심장이 조여 온다

자기 집 현관을 부술 차례다

모든 집기는 박살 나고 조각난다

집의 틀만 남는다

도시가스 줄을 뽑아 폭파를 한단다

칼을 들고 죽인단다

한없이 어린 나이  

이불을 덮고 온몸을 웅크리고

숨조차 겨우 쉬며 서너 시간을 굳은 채 있다

잠잠해질 때까지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살며시 이불 밖으로 나와

홀로 남은 여인을 돕는다


한 30대 후반 남성,

슬슬 시동을 건다

목소리가 커진다

논박할 수 없는 논리로 여인을 조인다

한 덩치 하는 남성의 꽉 쥔 주먹이

올라온다 곧 내리치겠구나

공포 속 여인은 이미 옷장에 갇혔다


어느 공간에서 나와 숨을 쉬었다

긴장감이 풀린 건지 멍했다

작년 겨울 집단상담 시간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봐요

아무한테나 받음 안 되니 연락처 줄게요

식은땀이 나는 듯하고

심장이 마구 뛰고

답답하고

불편했다

숨을 들이쉬며 길을 걷는데

마치 옷장 속 아이 같았다 지금


용기 있는 결정이다

큰 결정을 이렇게나 신속히, 멋있다

응원한다

온갖 멋짐을 뽐내었으나

익숙한 긴장감이 다가오자

몸이 굳어버렸다

긴장감이 익숙했다

경직됨이 익숙했다

온몸이 가위눌린 듯 굳어 있다가

온갖 경기와 놀람으로 굳었다가

서서히 풀려나와

난장판이 된 집안을 하나씩 치우던

그때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긴장감 경직됨 안도감

이 셋의 조화는 중년 여성이 되었다

긴장감이 두렵지만 익숙하고

안도감은 좋지만 두려움을 떠올린다


어느 대목인 걸까

여전히 옷장 속이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떨린다

옷장 속 굳어 있던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다시 안도감을 찾으려 조였던 마음을 조금씩 풀어보려지만

긴장감 안도감 긴장감 안도감

긴장 속 안도감 긴장 후 안도감

긴장 없는 안도감은 어색하다

안정감은 낯설기만 하다

안정감을 느끼지만 주저하는 이유일까

몸이 기억하는 두려움과 경직됨이

뇌를 마비시키는 듯하다

미동조차 없는 긴장감이 바로 너야, 하고

심장이 머릿속이 고요해지질 않는다

내 안의 나와 싸운다

내 안의 나와 네가 싸운다

내 안의 나와 네가 통합이 안 된다


내 안의 너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도

내 안의 나이고

내 안의 나에게서 벗어나려 하는 것도

내 안의 너이고


나를 옥죄는 것도

너를 옥죄는 것도

내 안의 나와 너이구나.

옷장 속 그 아이는

도망치듯 집을 나온 그 여인은

네가 아닌 내 안의 나이고 내 안의 너였다

내 안의 너와 나가 싸워 이긴 승자만이

나를 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잔을 높이 들어 축배를 들고 싶은 자

이겨라 쟁취해라

내가 너를 채워주리다

내가 나를 채우리다

너와 나는 누구 하나 이기고 지는 것 없는

승자만을 용납하는구나

너와 나는 절대 섞이지 못한다

섞이는 순간 술잔은 깨지고 그 틈으로

어색함이 몰려와 나를 잠식시켜 버릴 테니까


2024.10.16.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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