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찾을 물건이 있어서
오전오후 교육이 끝나자마자
바로 저녁 기차를 타고 서울 집에 왔다.
물건을 찾고
바로 돌아가는 막차를 타야 했다.
청량리에 도착해서
바로 택시를 잡았다.
집에 다 와서 내리기 직전에 신호에 걸렸다.
택시 기사님은 빨리 내려 주기 위해
녹색 신호였는데 움찔 차를 몰려다가
보행자 한 분이 지나가려던 찰나 멈칫했다.
그분은 택시 기사님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기사님은 한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했다.
나는 모른 척 핸드폰을 봤다.
정말 주관적인 내 느낌이지만
바로 코앞에서 신호에 걸리자
빨리 내려주고픈 마음이었던 것 같았다.
사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보행자 분은 횡단보도를 건너다
당연히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운전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보행자의 안전을 생각한다는
명확한 명제이다. 신호를 지키고 안전을 생각한다는.
오늘 교육 중에 이 같은 명백한 명제가 또 있었다.
청소년 가해자 상담 시 내담자가 은폐하는 것은 아니 된다는.
너무나 명확한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쉬운 이 명제가
내게는 명료하게 와닿지 않았다.
작년이었을까. 재작년이었을까.
교육분석 중에 아주 비슷한 주제가 다루어진 적이 있었다.
○○이에게 상담은 무엇인지 정의 내려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이 과정에서 나와 교육분석 선생님 간에
미묘한 분위기가 오갔던 적이 있었다.
교육분석 선생님에게는 긍정 감정을 주로 느껴왔기에
그런 감정은 자주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오래되었지만 미묘한 나의 내적 불편감을 기억한다.
1년? 2년? 만에 이 화두는 다시 올라오는구나.
교육분석의 묘미랄까. 언제든 해결되지 않은 화두는
결국 다시 도마에 오른다. 언제고 만나게 되어 있다는.
오늘 교육을 마치고 느낀 해결되지 않은 이 화두에
찜찜함이라 해야 할지 불편감이라 해야 할지
나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감정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왜 이 쉬운 명제가 너에게는 쉽지 않은 걸까?
생각했던 곳에 물건이 없어
잠시 당황했으나
바로 찾았고
바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옆에 ○○ 있어요?
응. 있지.
바꿔줄래요? (아이가 받았다)
○○야, 엄마.
엄마, 왜.
○○야, 엄마 찾았다. (야후를 외치듯) 이제 기차 타러 간다.
알겠어. 나 끊는다. (뚝).
순간 명제는 사라졌고
아이와 신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청량리역 플랫폼에 왔을 때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어디야?
청량리역.
역에 도착하면 몇 시야?
10시 5분?
그럼 택시 타고 집에 오면 몇 시?
10시 15분?
그럼 10시 30분이겠네.
아냐. 10시 15분. 기다려.
엄마, 근데 아까 레고에서 뭐 찾았다.
뭐?
잠깐만. (잠시 뭔가를 꺼내더니) 이거. 이거 뭐게?
구슬 같은데.
맞아. 이거 찾았다. 6개야 이제. 근데 이게 제일 작은 거야.
그래? 똑같아 보이는데 다르구나.
응. 나 끊는다. (뚝).
쉬운 명제가 와닿지 않음에 대한 고민.
하지만 이내 곧 아이와의 장난스러운 통화.
갑자기 떠오른 교육분석 때의 미묘했던 감정.
조금 전 택시기사님과 신호등, 보행자.
필요한 물건을 찾으려 한 시간 내 기차 두 번 탑승.
이것이 마치 똑 닮았다 생각했다.
퍼즐이 여기저기 흩어져 무언가 통합되지 못하고 있는
어수선한 머릿속 나.
그러나 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그러나 정의 내리고 싶다. 내 머릿속에서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