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내면 접촉
칼 로저스의 <사람 중심 상담>을 읽으며
마음에 들어오는 구절마다
줄을 긋다 보니
모든 문장에 줄을 그어야 해서
줄 긋기는 않고 띠지를 붙였으나
띠지도 모자라 더는 붙이지 않고 있다.
지난주 주문했던
<사람 중심 상담> 원서가 배달되었다는
문자를 방금 전 받았다.
들고 다니며 한 문장 한 문장
씹어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자
심장이 콩닥콩닥 거렸다.
어제 아이와
마지막 날 샤갈 전시를 보러
한가람미술관에 다녀왔다.
그의 기법을 설명한
전시장 한 벽면에 쓰여 있는 문구를 읽으며
화가로서의 그의 기법은
내게는 상담사로서의 기법으로
읽혔다.
마르크 샤갈에게 기법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의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내면의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담아낼 수 있는
언어였다. (마르크 샤갈, 도록 중)
칼 로저스의 일치성이라는 단어는
그 순간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때
그리고 인식하고 있는 것을
의사소통을 통해 전달할 때
이 세 가지 차원이 잘 들어맞는다는 뜻이다.
(사람 중심 상담, 34쪽)
그렇다면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접촉해야 함은 아주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내담자와의 사이에서 진실되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의 관계는 발전됨을 배운다.(35쪽)
어떻게 하면
내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고 쓰고 싶은 것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35쪽)
샤갈의 기법이 그의 내면을 담는 언어였듯
칼 로저스의 물음은
나의 내면 언어는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너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며
너는 그것들을 어떻게 담고 있는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너 자신에게 귀 기울여 줄 것인지.
나의 순간마다 접촉하려 애쓰는 작업은
결국 내담자와의 작업동맹에 아주 중요한 조건일 것이다.
나를 알아야
제대로 날 위한 기도도 할 줄 알아.
그러니 성급히 가지 말고
찬찬히 나를 봐.
지난달 다녀온 피정에서
룸메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그녀의 조언이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