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인생.

끝과 시작, 시작과 끝

by 세만월

그동안 애썼다.

툴툴 털어버려.


나야 뭐 엄마가 카바 쳐주니깐 버텼지.

엄마가 항상 그 사람하고 얘기하고 만나고

다 해줬잖아.

그래서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고 잘 지냈지.


너희들 너랑 동생 어렸을 때

너희들 뒤에 숨어서 지낸 거 갚는 심정으로

버틴 거야.


순간 나는 정지화면이었다.

순간 심쿵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 한 문장에 스쳐 지나가버린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꺼낸

어머니의 한 문장이

내 심장에 박혔다.



매듭이 풀어지는구나 이렇게.

듣는 내가 다 고맙네.


교육분석을 마치는 즈음

지금 기분이 어떤지 묻는 교육분석 선생님의 질문에

마무리로 꺼내놓은

지난주 내게 있던 일이었다.


아무 의미 없이 기도문으로 읽던 영광송이

한 글자 한 글자 제게 와닿더라고요.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이요.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요.


그래, 우리는 끝이 나면 끝이 났다고만 생각을 하지만

끝이 난다는 건 무언가가 우리에게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거든.


네.


지금 기분은 차분해요. 정리되는 기분인데,

2주간의 정리가 아니라

그간의 제 삶 전반을 아우르는

그런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선생님의 은사님이 돌아가신 얘기까지 듣게 되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가끔 생각하거든요.

선생님 돌아가시면 나는 어떡하지 하고요.


인생은 계속 살아가는 거야.

OO이도 마음수련하면서

계속 OO이 자신과 깊게 깊게 만나.

그런 면에서 ○○이가 앞으로 기대가 돼.


지금껏 최선을 다해,

한 고비 한 고비 넘기며

후회 없이 원 없이 열심히 살아서

사실 인생이 참 길구나 생각할 때가 있어요.


나의 이 얘기에

교육분석 선생님이 자신의 은사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이었다.


나도 은사님처럼 마음수련하면서

잘 정리하고 싶어. 그럴 거고.

그러니, OO이도

지금처럼 마음수련해서 얻은 지혜들을 나눠야지.

그렇게 살아.


요새 매일 미사 드리고 성체조배실 가서 기도하고,

기도 끝나고 옆에 도서관 가서 책 읽고요,

아이 일정 마칠 때쯤 아이와 시간 보내고요.

저는 요즘 수도자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기도란 것이 저를 알아야

기도도 할 수 있는 것이더라고요.

그렇게 저에 대한 대화를 깊게 하니깐

저에 대해 더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기도하며 사는 삶이

상담을 더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내가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야.

제목이, 수도자처럼 생각하기야.

OO이한테도 보내줄게. (네)

나눌 사람이 없는 것 같지만,

살다 보면 지내다 보면

기지국처럼 서 있는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또 있고 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네.


OO이가 매듭을 졌고 매듭을 또 풀었어.

오늘 얘기 나누면서는 계속 이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 (네)


조용히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잠잠히 오늘의 교육분석 시간을 마쳤다.

참 잠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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