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긴 연휴가 끝나고
월요일 무료 피정을 다시 가야지
하며 잠이 들었는데
비가 주룩주룩 왔다.
가기 싫다 싶다가
안 돼, 그래도 가보자.
서강대역에 내려
정문 맞은편 횡단보도에 섰다.
정문 옆 스벅에 갔다가
2시에 신부님 강의를 듣자 했는데
아침기도도 안 드렸고 하니
이냐시오 성당으로 가자.
성당에 들어서
감사기도를 드리기 위해
묵주를 꺼내고 9일기도 책을 꺼냈다.
고통의신비 1단을 들어가려는데
한 여사님이 말을 건네셨다.
저, 저보다 키가 크죠?
성모님 상 위쪽에 먼지가 끼었는데
손이 안 닿네요.
아, 제가 손이 다행히 닿네요.
거미줄처럼 보이는 먼지 가닥을
손으로 걷어내었다.
순간 참 영광스러웠다.
은혜로웠다.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고통의신비 4단쯤 되었을까.
그 여사님이 다시 말을 건네셨다.
저,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사진이 있어서요.
그러시면서 그동안 여러 성당과 순례지를 다니면서
은혜받았던 장면을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여주셨다.
이건 오늘 찍은 거예요.
여기 학교길 올라오다 보면 있는데
지난 7월에 찍은 나무는 안 그런데
이번에 찍은 나무는
몸이 꺾여 고통받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요.
매일 고통을 알아가며 기도하려고
머리를 쥐어짰었는데
이 나무를 보면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돼
은혜로웠어요.
기도를 열심히 하길래
나누고 싶어서 사진 보여드렸어요.
사실 처음엔
성당 안에서 조용히 기도를 하는데
말을 거시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순간 이상한 분이신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분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야겠다는
생각이 자리했다.
그분 이야기가 다 끝나고
다시 기도를 들어가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분의 이야기는
내가 들어야 했던 게 맞구나 생각이 들며
감사했다.
평소 끝쪽에 앉는데
오늘은 성모상 가까이에 앉고 싶어
몇 칸 더 앞으로 가 벤치에 앉았다.
기도가 다 끝나고
12시 미사가 시작되기 20분 정도 남았을까.
성모상 옆에 '고해소'가 보였다.
그리고 신부님이 안에 계시다는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어제 회개기도할 문장을 적어둔 게 있었는데
회개할 자신이 없어 덮어 두었던 것이었다.
아, 지금이 회개기도해야 하는 때구나.
바로 고해소로 들어갔다.
눈물이 또 한 번 왈칵 쏟아졌다.
미사 시작 전 지향기도를 넣고
그리고 바로 미사는 시작되었다.
미사 중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성체를 잘 모셨다.
미사가 다 끝나고 짐을 챙겨 성당 밖을 나가려는데
아까 그 여사님이
예쁘게 말려놓은 네잎클로버를 주셨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뵈어요.
하고 밖을 나섰다.
학교 정문에 들어가기 전에
전 직장동료에게 톡이 왔었다.
잘 계시죠?
선생님 톡 프로필 사진 보니까
아이가 선생님이랑 똑같이 생겼네요.
그래?
샘은 어떻게 지내?
저는 그럭저럭요.
나도.
내 일 어느 정도 정리되면
우리 보자.
하고 가볍게 톡안부를 마쳤었다.
미사가 끝나고
월요 무료 피정 시간이 남아
옆에 있는 스벅에 왔다.
오늘 오전 톡을 나눴던 동료가 보내준
스벅 커피쿠폰을 썼다.
히비스커스 따뜻한 차 한 잔을 시켰다.
동료에게 다시 톡을 보냈다.
잘 마실게. 고마워.
구역장님과 대모님께도
제 걱정하지 마세요.
잘 추스르겠습니다.
곁에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톡을 남겼다.
아침부터 걱정 불안 자책 등
마음이 흐트러져 있었는데
그 여사님의 말을 건네주심부터
아니 동료의 안부 인사부터
아니 이냐시오 성당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니 비가 오는 아침 외출하기 싫음에도
나설 차비를 한 순간부터
나의 걸음을 이끌어주셨다.
금세 평온함이 내 안에 자리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