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함이 주는 평온함

나 혼자는 할 수 없는 것들

by 세만월

서울 아빠 집에 다녀오느라

어제 성당에서 제공한 어린이 놀이터를

아이는 즐기지 못했다.

오늘 미사 때 어제 못 받은

간식거리를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아빠에게 저녁약을 주려고

콧줄에 주사위를 껴고 있는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이거 봐라. 어제 아빠 집 가느라

성당에서 같이 못 놀았다고

먹을 거 주셨어. 디개 많지?


엄마, 초코바 좋아해?

응, 엄청 좋아하지.

대한민국 1등 자유시간 초코바 이거 맞지?

응. 하하하. 잘 읽네.

나는 초코바 싫어하니까 이거 다 엄마 줄게.

엄마, 근데 이거 어떻게 읽어?

AIR. 에어.

이건 처음 보는 건데, 잠깐 먹어 보께.

아이는 봉지를 뜯어 먹어 보더니

어, 맛있네. 이건 맛있으니까 안 되겠다.

○○, 맛있는 거 엄마 줘야지.


○○야, 낼 할머니가 올 때 엄마 연어 해서 갖다 준다고 했다.

아이는 갑자기 할머니를 부르더니

할머니, 내일 우리 병원 갈 때 연어 갖고 가잖아,

엄마 준다고, 엄마가 갖고 오지 말래요.

○○, 내가 언제?

아이는 장난기 가득 웃으며 할머니, 안 돼요. 한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갖다 줄 거야.


엄마, 내일 엄마한테 줄 건 이거야. 초코바 6개.

와, 엄마가 좋아하는 거네. 좋지.

그럼 안 갖고 갈게. 끊는다.


○○야, 할아버지한테 인사해 줘.

주무시면서 다 들으시거든.

영상을 아버지 얼굴에 가까이 댔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예요.

○○야, 할아버지 눈 뜨셨다.

엄마, 안 보여. 더 가까이 대봐.

보이지?


전화를 끊고 얼마 안 있다가

아빠가 웅얼웅얼하셨다.


돌팔이의사가 날 죽이려는 거냐.

왜 약을 입으로 줘.

너 왜 내 옆에 있냐. 콧줄도 안 빼주고.

나? 아빠 오줌 갈고, 콧줄로 약 주고, 기저귀 갈고 하지.

아빠 일어나면 의사 선생님이 콧줄 빼줄 거예요.


아빠는 또 쿨쿨 잔다.

엄마는 나 줄 연어를 찌고 있다.

아이는 나 줄 초코바를 챙기고 있다.

이혼하신 두 어르신이지만,

여전한 건, 내 아버지 내 어머니.


아이는 통화를 끊기 전 내게 물었다.

엄마, 언제 와?

엄마? 금방 가지. 할아버지 일어나실 거야.

알았어. 낼 봐.


아이는 내 아이.

바뀌지 않는 이 사실들에 맘이 놓이는 것 같았다.


대모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는 어떠셔?

○○씨는 어떻게 있어, 힘들지?

일주일 정도 되니깐 이제 좀 뭣좀 해보려고

내일 엄마한테 책이랑 성경책 등 갖다 달라 했어요.

그래, 잘했네.

나는 또 아들들이 와서 챙겨줘야 해.

미국에서 친척분들 오시지 않았어요?

며칠 전에 가셨고, 이번엔 아들 내외들 와서.

엄마는 바쁘다. 하시며 끊었다.


병실에서 느끼는 평온함이라니.

며칠 전만 해도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

점차 차분히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들어오고

날 챙겨주고 도움 주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차분함이 주는 평온함은

나 혼자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작가의 이전글한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