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다음에>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다음에>를 돌려드려요.

by 김서르

" 너는 네가 하고픈 모든 일을 해."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옆집에 사는 덕순언니가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엄마를 졸라 이내 곧 나도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 해 여름방학,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미술학원에 등록했고 4학년 때부터는 걸스카웃에 가입해 한 해에 몇 번씩 캠프에 참여하곤 했다.


하지만 어릴 적 내가 평범하게 누리던 이 풍요가 당연한 은 아니였다. 엄마의 구두가 단 한컬레 뿐이었다는 거, 늘 다 쓴 화장품 용기만 놓여져 있었다는 거, 매일 늦은 밤까지 일을 하셔야 했다는 것으로 볼 때 나의 <평범>은 <아직은 먹고살만 함> 정도의 수준이었던 것 같다.



ᆞᆞᆞ

나에게 <평범함>을 지켜주기 위해 엄마는 매번 또 어떤 것들을 포기하셨을까?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나는 태어났던 그 순간부터 엄마의 인생을 나눠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의 젊은 날의 빛나던 꿈도 나와 함께하는 행복에 기대어 아낌없이 내주었겠지. 나 역시 내 아이들에게 그러하듯. 부끄럽게도 나는 지금 껏 단 한 차례도 엄마의 꿈에 대해 물은 적이 없다. 뻔뻔하지만 그냥 내 꿈이 엄마의 꿈이겠거니 했다. 그렇게 엄마는 내게 당연함의 존재였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자고 싶은 것,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수 많은 것들.


"하지만 나는 다음에, 내껀 나중에."


어느덧 나도 내 아이를 키우며 연속된 포기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니, 포기라는 말 보단 양보라고 우겨 볼까나?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나를 멈추기는 정말 싫으니까.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끝없이 늘어가면서 내가 내게 해주고 싶었던 것은 점점 뒤로 밀려나더니 점 차 잊혀져가고 있었다. 자신의 삶에서 한 발짝 물러선다는 것이 얼마나 아플지 미처 알지 못한채.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의 <다음에>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혹은 당신은 엄마의<다음에>를 몇 번이나 돌려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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