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엄마는 언제나 무죄

정말 멋진 상어가 될 수있을꺼야

by 김서르

"우리 아들은 커서 뭐가 되고 싶어~?"

- 지후는 커서 상어가 될꺼야~!

" 상..어??"

- 응, 그래서 크면 지후는 바다에서 살꺼야.

" 우와, 정말 멋지다~ 지후는 정말 멋진 상어가 될 수 있을꺼야.



영화 주토피아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4살배기 아들과 나눈 대화다. 토끼로서는 허무맹랑한 경찰관이라는 꿈을 갖은 '주디'. 그녀의 부모님은 시골에서 안전하게 살기 원하지만 주디는 결국 경찰관의 꿈을 이룬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어우러져 사는 주토피아에서.



언젠가 이 아이가 자라면 상어가 되겠다는 순수함은 사라지고 말것이다. 지극히도 현실적인 꿈을 가지고 지금 내 모습과 얼추 비슷한 꿈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가 그렇게 성장하는 것은 죽도록 싫다. 아마도 이것은 수 많은 부모들의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자식들만은 나보다 눈꼽만큼이라도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 나는 요즘 흔히들 말하는 흙수저를 넘겨주게 될까, 지금의 삶에 조바심이 난다. 무엇보다 아이의 꿈을 서포트해주지 못하는 부모가 될까봐, 정말 두렵다.


나는 운 좋게도 내가 꿈꿨던 수 많은 직업 중의 하나를 이뤘다. 그렇다곤 하지만 10년 넘게 같은 일을 하면서 왜 다른 일을 꿈꾸지 않았겠는가? 다만 내 게으름과 의지박약 때문에 아직도 꿈만 가득 머금은 채 이곳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보통의 직업과 보통의 월급, 보통의 사회적 위치가 더 이상 나를 행동하게 하지 않았다. 그 어떤 꿈도 서두를 필요가 없게 했다.


그런데 요즘 나를 자꾸 조바심나게 하는 녀석들이 있다. 무한대의 사랑을 주어도 무한대의 사랑이 남는 내겐 금쪽 같은 아이들이다. 남들보다 더는 못해줘도 부족함은 없이 키우고 싶다. 그러나 이 작은 바램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이후, 내 조바심은 극에 달하고 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내야 할 것같은 조바심, 당장 뭔가라도 되어있어야 할 것 같은 조바심.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안절부절 걱정투성이다.


같은 트랙에서 나란히 뛰고 있다고 보여지던 친구들과 직장동료들이 사실은 애초에 나보다 몇 바퀴는 더 앞서고 있었다는 것을 결혼 후에 알았다. 보이지 않았던 그들의 배경이 결혼 후 안개 걷히듯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챈 지금은 이미 아이들과 함께 뛰는 경주가 되고 말았다. 나 때문에 우리 아이들도 몇 바퀴씩 뒤쳐져 달리게 되었다는게 더 할 수없이 화가난다. 더 빨리 더 크게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과 함께 걷는 행복을 포기하기도 싫다.


안다. 그래도 역시 나는 계속해서 뛰어야한다.


아이가 태어났을 땐 그저 건강하고, 밝게 자라주기만 바랬다. 최고로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게 해주겠노라고 수만번 다짐 했다. 그렇게 다짐만 했다. 그 어떤 움직임 하나없이. 4년이 지난 오늘 나도, 그냥 그런, 어쩔수 없는 엄마일 뿐이였다. 작은 바람에도 휘청이던 내가 마냥 부끄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에 조급해하던 마음을 단단히 매우고 더 강하고 지혜로운 엄마가 될것이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달리던 다리를 멈추고,

진짜 내가 원하는 삶과 꿈을 그리며 달려야겠다. 훗날 < 너희를 키우느라 ~하지 못했어 >라는 말을 하는 엄마는 절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더 더딘 속도가 되겠지만 더욱 행복한 인생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또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라는 아이들은 분명히 나보다 더 행복한 어른이 되어있으리라.



언젠가 스무살 언저리 즈음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왜 행복해지고 싶은 건데? "
당시에는 그럴 듯한 말들로 얼버무리 듯이 대답했었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 그 질문이 떠오른다. 그때마다 내가 찾은 답은 무수히도 많았지만 오늘의 답은 이것이다.

행복해져보니 왜 행복해야하는지 알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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