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라기보단 예술일까
전 세계가 '격리'라는 개념에 갇혀 살고 있는 지난 몇 달 그리고 오늘. 봄은 이미 완연하지만 마음에 봄이 올리 만무하다. 이와 같은 대혼돈과 위기 속에서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그 시간의 흐름에 코로나 종식을 외치며 무기력하게도 기대 본다. 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이토록 없다는 것에서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진다.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간절히 바라는 것밖에는 없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주어진 내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자 비결일 것이다. 힘내십시오! 모든 확진자들, 확진자 가족들, 질본, 정부, 의료진, 격리 중인 분들, 생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 모든 부모들, 모든 환자들, 모든 이들이여...
재택근무한지도 언 2개월이 되어간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만 프리랜서와 다름없는 업무/근무 스타일을 고수할 수 있는 나로서는 이미 지난 1년 연습(?)이 되어 있던 것이 바로 재택근무다. 요즘 내 별명은 '준비된 자'. 과연 그러한가, 무엇에? 글쎄. 아무튼 재택은 더 이상 내게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은 그런 것. 여전히 시행착오 중에 있고 잘되는 것과 잘되지 않는 것 사이에서 방황 중이다. 하지만 마음가짐만은 다르다. 내 삶을 디자인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점에서. 하루의 삶은 내가 디자인하기 나름이고, 계획한 대로 살았다면 스스로를 칭찬해야 마땅하고, 실패감이 느껴지는 하루를 보냈다면 다시 제자리도 돌아오면 그만이다.
한 달 여 전부터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가급적 '집콕'하며 '홈쿠킹'하기.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먼저 만나는 미래일지도 모를 재택근무에 적응하기 위해 적극 집콕을 실천 중이다. 나의 연인은 지척에 산다. 정확히는 그가 2년 전에 내가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보고 싶을 때마다 보기 위함이라나 뭐라나, 후후. 나의 어중간한 몸집과 다리 길이로 뛰면 5분이다. 그 또한 회사가 전사 재택근무 중인지라 나는 그에게로 출근한다. 그리고 우리는 점심과 저녁식사를 함께, 때론 각자 요리하여 먹는다. 식재료 구입은 새벽 배송 등의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고, 산책이 필요하다 싶은 날엔 반드시 밤 10시 이후로 외출해 마트로 향해 장을 보고 오기도 한다.
우리는 요즘 서로의 '창의적인 생각'에 감동을 표하며 칭찬한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뭐 그럴 거 까지야 있나 싶지만 재택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식재료를 고르고, 레시피를 찾거나 연구하고, 요리를 성실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달 이상을 요리하며 고민하며 살다 보니 머스트 해브 아이템도 생겼고, 역할 분담도 자연스러우며, 서로를 위해 요리하는 것에서 행복감도 느끼고 있다. 원칙까진 아니지만 함께 지켜보고자 하는 것들을 정해보았는데, 주중 5pm 운동과 저녁식사는 반드시 요리하기다. 뭐든지 혼자보단 둘이 나음을 실감하는 날들이다. 그래도 뿌듯하다고 남겨둔 사진들을 아카이빙 해보고 싶기도 하고 우리와 같이 집콕 앤 홈쿡을 실천 중이실 누군가들과 공유하며 아이디어를 교환해보고 싶기도 하여 끄적이게 되었다.
1 와일드 루꼴라를 흐르는 물에 씻어 물기를 뺀다. 닭가슴살(컬리 PB상품을 요즘 애정한다)을 먹기 좋은 사이즈로 썰어 소금, 후추, 강황가루 & 올리브 오일로 마리네이트하고 기버터를 두른 팬에 굽는다. 토마토를 끓는 물에 삶아 껍질을 벗기고 믹서에 넣어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 레몬즙, 파미지아노 치즈를 갈아 넣어 믹싱 해주니 딥소스 또는 드레싱으로 딱이다. 접시에 루꼴라를 라운드로 두르고 토마토 딥을 바닥에 깔고 닭가슴살을 올린다. 딥소스 나머지는 바게트를 찍어 먹는다.
2 어느 날의 아침. 토마토를 슬라이스하고 계란물을 입힌 후 코코넛 오일을 두른 팬에 약불로 굽는다. 나머지 계란물에 소금, 후추, 파미지아노 치즈를 살짝 뿌려 스크램블드를 만든다. 와일드 루꼴라를 몇 가닥 올려 맛있게 먹는다.
3 어느 날의 점심. 요즘 점심 식사와 최애 메이트는 넷플리스 오리지널 다큐시리즈. 이날은 아마도 소금, 산, 지방, 불 중에서 '불'편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소시지와 닭가슴살을 굽고 방울토마토를 곁들였다 with coffee.
1 그에게는 '스테이크 천재'라는 내가 붙여준 별명이 있다. 미국산 살치살이 나무 도마 위에서 레스팅 중인 듯.
2 아페리티프. 요리하며 마시라고 건네준 그의 센스. 시원하고 쌉싸름하고. 요리할 맛 난다는. 다소 길고 지루한 요리엔 알코올이 필요하다. 아, 그에게는 '전속 믹솔로지스트'라는 별명이 하나 더 있다.
3 브로콜리를 삶고 정말 오랜만에 매시드 포테이토를 만들었다. 편하게 하고 싶어서 밀크팬에서. 감자는 깍둑썰기 해서 용기에 담아 랩을 씌우고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포크로 찍힘 정도를 확인하고 밀크팬에 옮겨 버터, 생크림, 감자, 우유 아주 약간을 넣고 계속 저었다. 불에서 내린 후 소금, 후추 휘리릭. 오랜만에 스테이크와 곁들이니 얼마나 꿀맛이던지.
1 로즈메리가 없어 아쉽지만 월계수 잎으로 대신해본다. 비린내를 잡아 주기엔 충분했다.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 레몬즙이면 연어는 부족할 게 없는 스테이크로 변신.
2 냉동고에 저장해두었던 옥수수에 기버터를 치덕치덕 발라 에어프라이어 180도에 15분 굽고 뒤집어 5분 더 구웠다. 노릇해진 옥수수에 레몬즙을 뿌리고 그라나 파다노 치즈를 그레이팅 해 뿌려주었다. OMG JMT.
3 어린잎을 씻어 볼에 담고 연어를 구웠던 올리브 오일에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잘라 빠르게 구워준 후 볼에 올려 그라나 파다노 치즈를 흩뿌려 곁들여 먹을 샐러드를 완성한다.
완연한 봄날의 연속인가 싶더니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었던 날이 있다. 따스한 수프가 생각났다. 이번엔 나 혼자 실력 발휘할 차례. 요리하는 비율이 7:3으로 압도적으로 그가 높기 때문에 이날만큼은 큰 맘먹고 풀 서비스를 했다. 설거지 거리가 엄청났지만 그래도 그가 맛있게 순삭 해주어 행복했다(설거지는 그가 한 거 안비밀).
1 브로콜리를 잘 분리해 끓는 물에 삼는다. 소금을 적당히 뿌려주기. 대 부분은 더 삶아주고 따로 담아 둔다.
2 믹서에 삶은 브로콜리, 생크림, 우유, 뜨거운 물 4/1컵, 치킨스톡 1/3 티스푼, 소금, 후추, 파미지아노 치즈를 넣고 잘 믹싱 해준다. 색깔이 아주 곱게 나왔다.
3 크루통을 대신할 요량으로 ASURA 통밀 토스트를 마구 부셔버린다. 못생긴 채로 올리브 오일을 몇 가닥 뿌린 수프 위에 무심히 얹어준다.
4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 강황으로 버무려 구워준 닭가슴살을 썰고 씻어둔 딸기, 어린잎, 루꼴라와 함께 담아 샐러드로 곁들인다.
1 명란크림우동 with 모카 스타우트, 마리아쥬가 엄청나다. (그의 요리여서 레시피를 알 수 없다)
2 그 말로만 듣던 부프 부르기뇽(뵈프 부르기뇽이 더 정확할까)! 영화 '줄리앤줄리아' 모먼트. 무려 2시간 가까이 할애한 그의 요리의 화룡점정. 고기든 야채든 부드러움의 극치였고 와인과 토마토의 절묘한 조화가 상큼한 듯 달콤한 듯 매우 맛있었다. 레드와인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1 옥수수가 너무 좋아서 그만, 또 먹었더랬다.
2 샐러드는 반복의 연속이었고만. 토마토, 닭가슴살, 루꼴라, 그라나 파다노 치즈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커피는 일리 캡슐. 클라시코, 인텐소, 포르테 다 맛있다. 역시 커피는 일리.
1 시작은 '애플 민트'가 도착한 그 순간으로부터... 그가 모히토를 위해 유기농 애플민트를 구입했다며 보여주었다. https://www.nonbaat.com/ 논밭 상점, 이름도 참 어여쁜 이 곳에서. 어찌나 싱싱하고 향긋하고 많이도 주셨던지! 나는 밤 산책 겸 당장 뛰어나가 라임 한 팩과 필업할 스파클링 워터를 사들고 와 그에게 바쳤다. 믿기지 않겠지만 가보지 않은 쿠바를 제외한다면 내겐 인생 모히토라는 것! 싱싱한 라임과 애플민트와 얼음이 다했다. 이렇게 아낌없이 화이트럼과 라임과 민트를 선사해주는 바(bar)는 없지 않을까(있겠지 뭐, 비싸겠지 훗).
2 한 잔 더 하기 위해 뭔가 안주가 아쉬웠던 어느 날 밤. 컬리에서 구매해 두었던 보코치노 치즈를 플레이트에 담고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슬라이스 하여 역시 담은 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듬뿍 담뿍 둘러준 후 통후추를 솔솔 흩뿌리고 와일드 루꼴라를 몇 가닥 얹었다. 칵테일과 너무 잘 어울려 다음에도 해 먹기로 결심한다.
1 그는 뚝딱 된장국을 끓였다. 왜인가 했더니 엄마가 삼채로 재워서 비린내를 싸악 빼준 고등어를 보내준 김에 들고갈 테니 같이 먹자 했더니 어울릴만한 반찬을 해둔 거라며. 그에게서 주부의 향기가 났다. 그래, 살림은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는 거지. 그를 응원했다.
2 비빔국수 + 열무김치 + 군만두의 조합에 반기들자 그 누구인가! 완벽하다, 정말이지 완벽하다. 결국 이렇게 먹다가 IPA 맥주 꺼냈더랬지. 요즘 마리아주에 탐닉한다. 나에게는 알중의 향기가 나려나...
오랜만에 또 실력 발휘했던 어느 날 저녁 식사. 호기심의 발로로 만들어 두었던 시금치 페스토가 있었다(잘했다 잘했다, 셀프칭찬!). 칵테일 새우 해동시켜 올리브 오일 자작하게 팬에 둘러 다진 마늘과 함께 볶아 준 후...그 뒤로는 모두가 아는 그 알리오 올리오 스타일로. 파스타 면 반, 스파이럴 칼로 만든 주키니면 반으로. 마지막에 면수와 생크림을 약간 추가하고 통후추와 파미지아노 레지나오 치즈를 넉넉히 뿌려준 후 불을 끄고 한 10초 후 와일드 루꼴라를 얹어준다. 내가 했지만 어찌나 맛있던지. 소스라기보다 수프가 돼버린 정체를 알 수 없는 저 '국물'을 그는 열심히 전부 다 퍼먹었다. 실은 많은 우연이 모인 레시피였기에 다시 먹고 싶다는데 다시 해줄 방도가 없다, 어쩐담. 샐러드는 루틴대로 하되 이날은 방울토마토 대신 오렌지로. 요즘 오렌지 맛 정말 최고다. 1일 1 오렌지 하는 중.
1 이토록 아름다운 진토닉이라니. Can you believe this? 그가 버터플라이 피 찻잎으로 봄베이 사파이어를 인퓨징 했다. 그 인퓨징 한 컬러는 블루였는데 레몬즙을 뿌리니 이렇게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보라색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란색의 비밀은? 진저비어다.
2 네그로니(Negroni). 애정 하는 칵테일 탑 3 중 하나다. Bittersweet, 이 한 마디로 설명이 될 듯. 강력 추천하는 멋진 칵테일이다. 세련된 도시 맛 같기도 한, 고독을 부추기는 그런 맛이라고나 할까.
3 올드패션드(Old-Fashioned). 말해 뭐할까. 오렌지 제스트와 절임 체리라니. 아... 집콕이 견뎌진다. 기꺼이.
1 확찐자가 되어감을 부정할 수 없다. 라가불린과 밴 앤 제리 바닐라의 조합? 이건 마치 천생연분, 나와 그 같은.. 훗. 갈수록 왜 이러지. 술 이야기를 하려니 취해가는가.
2 봄이 오니 스카치보다는 버번에 마음도 입맛도 빼앗긴다. 바닐라빈 향의 그 강렬한 흡인력과 그윽함. 지난해 와일드 터키 마스터 디스틸러 에디 러셀이 내한했을 때 들려준 한 마디가 생각난다. 버번은 식도로 마시는 거라고. 아 역시 켄터키인가.
3 이름하야 파리지앵. 아름답지 아니한가, 고혹적이기도 한 이 자태. 그러나... 오래전 6월로 계획해두었던 우리의 파리행은 취소... 흑흑
어묵탕에 꽂힌 날도 있었다. 내가 한 거라곤 꼬치에 어묵 끼우기. 정성스러운 가쓰오부시 육수 담당은 그가. 사케가 생각났던 어느 날 저녁.
1 페투치니 면으로 하는 알리오 올리오. 제법 괜찮다, 맛있다! 올리브 오일+마늘 조합에 월계수 잎도 투척했다. 페페론치노 가루도 흩뿌리니 은은한 매콤함이 매력적이더이다. 화이트 와인이 없어 보드카로 대신. 정말 오랜만에 플람베 성공했던 날인데 나만 보자니 아쉬웠던 그런 날. 이탈리안 파슬리와 그라나 파다노 치즈 얹어 완성. 역시 꿀맛. 그리고 곁들인 하몽 샐러드. 한 거라곤 야채 씻고 하몽 올리고.
2 새로운 버번으로의 모험은 언제나 짜릿하고 즐겁다. 하이 웨스트 위스키. 마치 라이 위스키의 스파이시함을 가진 듯하면서도 옥수수 향이 강한 버번. 독특한 건 켄터키가 아닌 유타주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흥미롭다. 딸기와 고다 치즈와의 조화도 괜찮았다.
밥상 공동체, 식탁 공동체라고 하던가. 음식을 앞에 두고 그 누가 즐겁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마음을 어찌 아니 열겠는가. 시국은 흉흉하고 전 세계가 떠들썩하지만 아무튼 핵심은 '격리(quarantine)'다. 격리 가운데 피어나는 가족, 연인, 친구, 또는 나 자신과의 대화, 전우애, 애정 그 무엇이든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위기는 기회다. 그런데 기회로 만드는 자들에게만 그런 것은 아닐까. 코로나의 최전선에서 모든 위험을 무릅쓰며 분투하고 계신 분들을 생각하면 나는 내 생활 하나 책임지는 걸로 무슨 말이나 한마디 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본분과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우선 순위이자 역할이니 우울해지지 않고 무기력해지지 않고 그렇게 루틴을 만들어나가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