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심리학 8
부스스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팔다리를 내뻗어 기지개를 쭉 켜는 순간 창으로 스며든 햇살과 눈 맞춤을 한다, 안녕. 그래 시차 따위 나와 상관없어, 라며 피곤을 거부한다. 맨발로 나무 바닥을 서성이며 발 디딜 때마다 다른 소리를 선사하는 삐거덕거림에 빠져든다. 정확한 위치와 소리를 기억할 수만 있다면 두 발로 연주도 하겠는걸 싶지만 흠 어림없는 일. 제법 자주 어리석어지는 여행자의 아침이란 게 얼마나 좋게요. 푸르른 화분 꾸러미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녹색 정원과도 같은 곳으로 시선도 마음도 옮기어 잠자코 바라본다. '너희들처럼 내게도 생기가 마구 솟아났으면 좋겠어!'란 욕망이 차오른다. 생기란 건 분명 선명하게 빛나는 초록색일 거야,라고 중얼거린다.
어서 커피를 내려와야지 생각하다 그만 가지런히 정렬돼 있는 여러 시디(CD)에 주의력을 빼앗긴다. 음악이 먼저라면 급할 것도 없지 싶다. 얼마 만에 해보는 이런 행위인가. 그러니까 시디를 시디플레이어에 넣어 음악을 재생시키는 것. 실눈을 뜨고 익숙한 이름을 찾아 헤매는 시선, 그러다 아, 마일스 데이비스에서 멈칫. 내게 마일스 데이비스는 늘 밤의 음악인데 오늘은 왠지 끌려, 라면서 플레이. 분초를 다투며 의식을 깨우던 보통날의 나는 온 데 간데없고 틈만 나면 멍해지는 이 시간이 야단스럽게 좋다. 내 몸과 정신이여 부디 이 느낌을 기억하길. 귓가에 부딪히는 농익은 트럼펫 소리에 멍 때리기는 잠시 양보하고 드디어 커피를 내리려 향하는 약간 리드미컬한 재즈(jazz) 로운 발걸음. 이런 느릿한 리듬 타기라면 매일이라도 하겠어, 훗. 이 순간의 천진난만한 생각과 몸짓(아마도 표정이 가관이겠지만)을 기억 속 저장고에 진하게 새겨본다. 바보스러울지 몰라도 이게 나란 걸 잊으면 안 돼,라고 스스로에게 부탁하듯 속삭인다.
투박한 생김새와는 달리 소심한 소리를 내는 커피머신이 귀엽다. 머그잔 말고 찻잔에 마셔야겠어, 란 생각에 발걸음도 손길도 진중해진다. 냉장고에서 크림도 꺼내어 도자기에 옮겨 담는다. 창가 테이블 자리로 커피도 몸도 마음도 옮겨 간다. 어여쁜 흰 레이스 커튼과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혹스러운 짙은 밤색 테이블이 함께 자아내는 분위기는 분명 나를 위해 준비된 사랑스러움이리라. 이 썩 괜찮은 그림 같은 장면에 과연 내가 끼어들어도 될는지 고민한다. 아니야, 그래도 주인공은 나야 나.
크림을 넣어 휘젓기 전 한두 모금 먼저 맛보는 진한 블랙의 쌉쌀한 맛. 감각이 하나씩 깨어나는 듯, 두어 번의 목 넘김 끝에 그윽이 올라오는 초콜릿향.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던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나도 말하고 싶다, 우리 삶에 단 한 번도 같은 커피맛은 없었노라고. 이곳에 머무는 내내 커튼 밖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며 음미했던 모닝커피의 맛과 향은 단순히 감각 자체라기보다 차라리 모든 것이 깃든 내 기분과 생각이었을 것. 그 찰나의 행복과 만족감, 빈에서 하루를 열고 있다는 설렘과 충만함, 여행자라면 으레 아침마다 느끼는 두 다리의 피로함까지 모두 커피에 녹여져 있는 거다. 일상에서도 하루의 첫 커피 첫 모금이 안겨주는 게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라. 하아...라는 탄성 한 번 내뱉으며 말단 세포들이 깨어나는 느낌과 함께 눈 한 번 지그시 감았다 뜨면 그래도 어찌어찌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것도 같은 그 다행스럽고도 고마운 기분 말이다. 하물며 빈에서의 아침과 이네스 아파트에서의 커피는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느리고 더디고 멍한 나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감각이란 감각은 다 소환시켜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마음껏 유영하도록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 같단 말이지. 이 느낌을 혹은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기억해보기 위해 나에게 건네는 하나의 충동적 제안. '커피를 마실 때마다 말이야, 행복을 마시는 거라고 생각해봐'.
행복 한 잔 더 마셔볼까? 저항할 수 없는 이 욕망에 커피를 한 잔 더 내린다. 햇살이 밝아지는가 보다. 마치 계산된 듯 햇살 세례가 쏟아지는 지점에 고운 자태로 놓여 있는 흔들의자에 몸을 맡겨 본다. 자연스레 눈을 감고 서서히 힘을 빼 등을 기대는데 제법 흔들리는 통에 커피를 든 손과 팔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이리저리 조심스레 움직이며 최상의 자세를 찾는다. 이 기분 좋은 흔들거림과 커피 어느 것도 놓칠 수 없잖아 생각하며 다리 한쪽을 접어 의자에 걸치니 드디어 찾아온 몸과 마음의 균형. 조용히 내뱉는다, '아, 좋다'. 이 좋음을 기억 속 어딘가에 잘 각인시켜 두자. 흔들의자도 햇살도 레이스 커튼 밖 빈이라는 도시도 향긋한 커피도 다 지금 여기여야만 가능한 것이지만 무엇에 내 감각이 반응했는지, 마음이 동했는지, 감탄이 뱉어 나왔는지 기억하면 된다. 어느덧 여행은 어떤 공간과 장면을 기억하는 것에서 그 순간의 '나'를 기억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도. 나라는 존재에 대해 세밀히 알게 될수록 더 자주 더 많이 즐겁게 해 주고 감동시켜줄 수 있는 법. 유쾌한 지식인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설파한 '감동을 자주, 잘 받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란 한마디가 떠오른다. 우리가 누구인가, 스스로를 감동시킬 의무와 책임을 지닌 여행자들 아닌가. 틈만 나면 솟아나는 여행 세일즈. 여러분, 여행하세요.
시선을 옮기니 문득 찾아든 생각, '사람도 사물도 제각각의 색깔을 지녔지'라는. 그런데 그 오묘하고도 개성 어린 색감을 언어로 표현하려니 늘 한계에 맞닥뜨려 서글프단 것. 세상의 많은 것들엔 여전히 더 많은 이름이 필요하다. 아니 그러한가? 흰 레이스 커튼, 고색창연한 짙은 밤색 테이블, 그리고 꽃무늬 패브릭 암체어와 빈티지 느낌의 녹색 스탠드도 다른 이름을 갖고 싶지 않을까란 나만의 재미있는 상상. 나 자신도, 내 인생도 때때로 수없이 많은 색을 드러내곤 할 텐데 그 색에 이름을 붙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삶의 마지막에 다다르기까지 총천연색으로 알록달록 반짝이기를.
이네스 아파트에서, 아니 아름다운 빈에서 머무는 내내 감각의 축제를 벌이듯 모든 감각을 기꺼이 예민하게 깨워둘 수 있었던 건 삶에서도 여행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의 조짐이었다. 그 작은 변화의 시작은 어느 공간과의 만남을 통해 일어난 멋진 일이었다. 빈 여행을 오매불망 고대하고 준비하며 발견했던 수퍼센스(SUPERSENSE). 수년 전 어느 매거진에 딱 한 줄, '아날로그'와 '빈티지' 플레이스라고만 소개돼있던 곳인데 이미 그 두 단어만으로도 심장은 뛰기 시작했지만 '수퍼센스'란 이름에 왜인지 온 마음을 사로잡혀 메모해두었던 곳. 두 번의 빈 여행 동안 마치 영혼의 집처럼 마음길 발길 빨려 들어갔던 곳이다. 수퍼센스는 거미의 감각을 상징하는 의미라고 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공간을 만든 이는 거미를 연구하던 박사라고 한다. 예지력에 가까운 거미의 오감을 연구하면서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고 깨어나게 하는 것이야 말로 과연 아날로그라고 생각했던 것. 아날로그 체험을 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오감을 깨워낼 수 있는 것이겠지.
수퍼센스는 오직 아날로그로만 채워진 공간이다. 아날로그 체험을 통해 의식적으로 모든 감각을 깨워 여러 재미난 자극에 반응해볼 수 있다. 마치 빈티지 놀이동산 같다랄까.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 내가 드디어 왔노라고 생각한다. 레코드판을 녹음하고, 나와 가장 잘 어울릴만한 향을 찾아보는 체험을 통해 나만의 향수가 탄생되는 곳. 실크 스크린 인쇄로 포스터를 만들거나 티셔츠를 제작하기도 하고, 취향대로 고른 가죽 커버엔 망치와 이니셜 스탬프로 이름을 새겨 넣는다. 온갖 모양의 스탬프를 찍어 대며 나만의 노트를 장식하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큰 폴라로이드 사진기 앞에서 포즈도 취해본다. 한 숨 돌리고 나선 커피 한 잔 벗 삼아 1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는 공간 전체를 찬찬히 깊숙한 곳까지 바라본다. 문가에 매달려 있는 주크박스를 발견한 순간 다시 흥분이 시작되는 곳. '아날로그 파라다이스', '감각의 축제', '오감 파티'라고 부르고픈 곳. 잠시 쉼을 갖던 중 역사적 발견이 일어났다.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된 포스터 속 한 문장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TRUST YOUR SENSES'! 내 감각을 믿으라니, 영혼에 팔다리가 있다면 힘이 풀린 꼴이 바로 내 이순간 내 정신 상태였으리라. 어쩌면 평생 찾아 헤매던 한 마디 아닐까 싶은 강렬한 끌림과 동요. 삶도 여행일진대 그 여정 동안 내 감각을 신뢰하는 게 무척 어렵고 두려웠구나, 란 생각이 차오르더니 눈물이 핑그르르 돌고 코끝이 시큰해졌다. 내 인생에 터닝 포인트 따위의 순간은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분명하다. 그때부터였던 것이다. 내 감각을 굳게 믿으며 눈길 손길 마음길 닿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예사롭지 않게 보고 느끼는 것의 소중함과 희열을 깨닫기 시작한 것 말이다. 이 한마디만 기억하면 여행도 삶도 더 '나'스러우리란 믿음. 오감은 물론 식스센스까지도 자주 불러 깨우겠다는 다짐과 어디에 있든 내 감각에 집중하겠다는 삶의 새로운 목표. 그렇게 이 한 문장은 내 삶과 여행에 유일무이 슬로건이 되었다. 지금 이 글과 함께 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선물하련다. TRUST YOUR SENSES! 감각을 깨우세요, 그리고 믿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