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심리학 7
과연 이름답다, 아르누보라니. 19세기 말의 정취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듯. 당시 진보적인 예술가들에게는 도전이자 개혁이었을 새로운 예술 사조인 아르누보가 21세기의 오늘에는 유럽 곳곳의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이 되어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그래, 이토록 오랜 세월을 품은 곳을 원했던 나 아닌가. 사진 한 장에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혀버린 그 인연의 시작 그리고 숙명인 듯 이어졌던 두 번의 만남. 그 만남의 연결고리는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못내 그리워하는 그곳, 오스트리아 빈 아르누보 아파트먼트 호텔. 공간이 그를 닮은 것일까, 그가 공간을 닮은 것일까를 곰곰 생각해보지만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으리란 확신이 드는 아름다운 공간의 아름다운 주인 이네스(Ines). 긴 짝사랑을 끝내고 마침내 만난 도시 빈과의 조우는 이네스의 아파트만으로도 충분했다. 빈을 향한 짙은 그리움과 추억의 중심은 늘 그의 공간이다.
1800년대 어느 즈음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랄까. 빛과 색이 바랜 나선형 돌계단을 오른다. 아파트라기보다 차라리 오래된 성의 구석진 곳을 오르는 것 같기도. 곧은 직선이라면 결코 느낄 수 없을 묘한 기운이겠지. 역시 곡선이 뿜어내는 비밀스러운 분위기와 상상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에 사로잡혀 두 개의 층을 다 오르는 일이 요원하다. 문득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계단이 없어질 리 만무하다란 생각에 흡족한 미소가 차오른다. 계단이라는 공간이 선사하는 정신의 버라이어티 쇼를 놓칠 순 없지, 암. 생각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계단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충동적인 꿈에 다다른다. 묻고 싶은 게 많은데 과연 그 꿈은 이루어질까. 잠시 난간에 비기어 서서 올라온 만치 아래를 내려다본다. 며칠간 이곳을 오르내릴 기쁨은 확실한 행복이란 생각이 마음에 들어선다. 난간기둥의 문양에 시선과 의식이 향한다. 짐작해볼 수 있는 건 글쎄 당시 아르누보 신사조 열풍의 한 트렌드가 아니었을지 그리고 누군가 이곳을 만든 이는 아마도 새로운 시도에 설레진 않았을지, 란 재미난 상상. 이토록 오랫동안 이 자리에 그대로 남겨져 낯선 이방인에게 호기심 어린 즐거움을 안겨주리란 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겠지. 누구에 의해서든 오늘날까지 지켜졌기에 가능한 일일 터. 빈의 일상에서는 혹 이런 발견쯤은 흔한 일일까 궁금하기도, 부럽기도 하다. 백 년 후의 내 주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과연 무엇 하나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을까. 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층층대 사색이여!
또 하나의 미니 여행 같았던 세 개의 층을 오르는 여정을 마치고 나니 이네스의 환한 미소가 한낮의 태양처럼 문 앞을 밝히고 있다. 이메일과 목소리로 만났기 때문일까 싶지만 낯선 이에게서 느껴지는 낯설지 않음은 무엇인가. 두어 번쯤 그의 생김새와 이미지를 상상 속에 그려본 적 있었는데 제대로 빗나갔지만 그래서인지 첫 만남이 더 흥겨운 걸까. 그의 부스스한 금발이 창을 뚫고 들어온 햇살을 받아 하얀 조명처럼 빛난다. 가녀린 체구가 무색하리만치 곧게 선 몸의 자세가 위풍당당하다. 중년의 나이가 설핏 드러나지만 금세 그가 뿜어내는 오라(aura)에 가려진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조용함과 평화로움을 지닌 듯한 여유가 묻어나는 표정이 매혹적인데, 고풍스러운 멋이 깃든 도시가 사람이라면 분명 이런 모습일 거다. 강렬한 눈과 눈의 마주침과 함께 악수를 건네는 몸짓에선 자못 위엄마저 느껴지는데 손과 손이 만남과 동시에 그의 빙그레한 미소가 더해지니 내 마음에 감도는 포근함과 따스함. 이네스를 만난 건 빈(Wien)을 제대로 조우한 기분이다. 진정한 비에니즈(Viennese)를 만나 비로소 빈이란 도시의 깊숙한 내부로 스며들어가는 느낌. 그제야 이 도시가 내게 마음을 한껏 열고 우리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건네준 셈이랄까. 이제부터 마음껏 이 도시와 아파트와 이네스에게 흠뻑 빠져들어도 되겠다.
빈에서 머무를 때는 위층이 집이라는 이네스. 아, 그는 너무나 비엔나스러운 비에니즈가 아니던가 싶어 물었는데 본래 잘츠부르크(Salzburg) 태생이고 빈에서 오래 살았지만 지금은 잘츠부르크가 본거지라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가장 멋진 두 도시 아니던가. 그는 두 도시를 오랜 시간 거하고 오가며 온갖 매력이란 매력은 다 수혈받은 것인가 보다. 농익은 내 설렘이 빼죽이 내밀려 나올 즈음 그가 둔턱한 열쇠로 문을 연다. 저 안쪽 공간으로 새어 들어온 햇살이 어여쁘다. 들어서려니 오른편에 귀여운 욕실이 숨겨진 듯 자리하고 있고, 마주 보이는 흰 벽과 흰 타일 바닥이 마치 나는 키친이다라는 외침을 하듯 선명하다. 여전히 우리네 부엌이란 곳은 아날로그의 모습을 역력히 띠고 있지만 이곳은 오랜 세월을 머금은 아날로그랄까. 그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붉은빛을 머금은 갈색 원목가구가 하얗디 하얀 공간에 차분한 무게를 실어준다. 있어야 할 모든 게 있다. 더 있었다면 번잡했을 것이고 덜 있었다면 서운했을 것인데 그렇지가 않다. 머무는 동안 하나씩 찬찬히 음미하고 즐기라며 마치 내게 딱 맞는 것들로 나를 잘 아는 누군가가 채워주고 간 느낌. 만족감과 익숙함이 뒤섞여 성급하게 솟아오른다. 뭐 아무렴 어때, 란 생각에 작정하고 흥분하기로 한다.
오래된 것이란 게, 아날로그라는 게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보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여 발견하고 흡수하기를 바라 마지않는 정취이자 삶의 양식'이다. 그에 딱 맞는 공간을 만나면 그 기꺼움을 몸과 마음으로 마음껏 발산한다. 부러 택하는 약간의 불편감과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안겨주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 어쩌면 여행의 목적 아닐까. 모두에게 드러난 것보다는 바라는 이에게만 모습을 드러낼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때 일상도 여행도 한층 더 흥미로운 것 아니겠나. 보물이 없는 보물찾기, 답이 없는 수수께끼 같은 뭐 그런 것. 보물을 찾는 과정과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모든 정신적 육체적 활동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여행이 될 테니 말이다.
시선이 빼꼼 빛을 따라 안쪽으로 향한다. 몇 걸음 더 떼고 나니 발과 나무 바닥이 만나 삐거덕 소리가 난다. 공간은 나를 반기고 나는 흥분을 하였으니 이 소리 어찌 어여쁘지 아니할까. 갈색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검은빛을 띤 주홍색이라고 하는데 가히 갈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오래된 사진 속 배경과도 같은 곳으로 들어선다. 빛을 받은 색은 차라리 검기보단 붉은빛이 감돌며 온기를 안겨준다. 아, 어디부터 바라보아야 할까. 무엇에 더 마음을 빼앗기고 싶은가. 내 마음 이토록 흔들리며 갈피를 못 잡아도 되는 걸까. 창문의 가장자리 구석진 곳 햇살의 자양분은 한 톨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아름드리 모여있는 화분 하나하나가 꽤 사랑스럽다. 녹음이 드리운 저 작은 공간은 머무는 내내 생기 있게 살아 움직이며 내 시선과 미소를 당당히 훔쳐갔다는 것.
숨길 수 없는 내 호기심 어린 탐색과 즐거움과 만족을 노련하게도 받아낸 이네스의 기다림과 잔잔한 미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바로 이 자리에 서서 그녀에게 이런 모습을 들키곤 수줍어했을까. 나로서도 피할 재간이 없는 걸. 공간과 이네스 사이에 채워진 게 자신감과 세월이라면 단 며칠일지라도 나와 공간 사이에 채워갈 것들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그와 마주 서서 적잖은 이야기를 유쾌히 나눴음에도 그의 눈빛이 남긴 여운만이 선명하다. 아, 그래서 인가보다. 어인 까닭인가 싶었지만, 아르누보 아파트먼트란 이름을 잊은 적은 없음에도 줄곧 이네스 아파트에서 말이야, 라며 되뇌던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