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옆구리를 꾹 찌르며 말을 거는 공간이란

호텔심리학 10

by Wendy An

시간의 흐름과 지구의 중력에 저항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자 나이 듦이겠지. 하나씩 하나씩 많은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기도 하고. 가령, 에너지, 생기, 열정, 또는 치기 어린 생각 같은 것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무언가 사라지기만 하는 건 아니더란 것. 나이 듦의 둘레에 서서 뒤 한 번 돌아보고 다시 앞을 내다보니 특별하지 않을 자유와 이제는 나만의 속도로 가보겠노라는 용기 어린 여유가 마음의 그릇에 담기더라.


한때는 변화하지 않는 나와 내 삶의 모양새가 지겹다는 생각에 현실에서의 나를 잊기 위한 도피성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무엇으로부터의 도피였을까 생각하면 변화와 도약을 향한 갈망이 열렬했지만 나 빼고 세상과 사람들만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만 같아 잠시 시간을 정지시키고 싶었다랄까.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라던데 이정표는 온데간데없고 속도는 제한이 없어지는 것 같더라. 그런데 난 왜 변화하고자 했던 걸까. 그저 세상의 요구에 부응하려 했던 반응이기도 했고 더 나은 내가 된다는 게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목적 없이 변하려고만 했던 몸부림은 내가 지닌 것 이상의 지구력과 투지를 요했기에 종종 지치고 낙심했다. 시간이란 게 내 청을 들어주거나 내 호흡에 맞춰줄 리 만무하지만 여행이란 건 참으로 놀라워서 현실을 살짝 벗어난 이상한 시간대에 거하는 것만 같은 분위기와 기분을 안겨주더라는.


여행 중에는 어디에서나 언제나 어떤 생각이든 꺼내고 펼치고 날개를 달아 더 멀리 높이 날려 보낼 수 있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이네스 아파트 공간의 한구석 늘 마음이 유독 가던 자리에 아침 또는 오후의 햇살이 살며시 스며들 때면 기분 좋게 멍해질 수 있어 꽤 행복했다. 어떤 행복인가 하면 순수한 멍 때리기의 기쁨이기도 하겠고, 여정의 중간 즈음이라면 자연스레 장착된 익숙함과 앞으로 여행할 날들이 더 남아있다는 안도감이 뒤섞여 '영원의 느낌'을 갖는 찰나적 희열이기도 하리라. 떠날 날은 별안간 오겠으나 충만했다면, 충전됐다면 그로써 족하다.


서울에선 주로 통제하고 관리했던 여러 모양의 감정들이 보다 선명한 색을 내비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솟아나 춤을 추는 연유가 무언가 곰곰 들여다봤더니,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이 공간이 자주 내게 말을 걸고 마음 옆구리를 꾹꾹 찌르는 것 같아 무심결 몸과 마음을 내맡겼던 것. 어떤 한심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어도 좋으니 다 꺼내보라고 내가 들어주겠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공간이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정말 그렇다. 오래된 모든 것엔 신성함이 깃든다 하지 않나. 그 신성함은 다름 아닌 여전함이리라. 생각과 감정을 끄집어내어 공간 곳곳에 흩뿌릴수록 그 빈 마음 공간이 묘한 안정감과 든든함으로 채워지더라. 나아져야 하고 달라져야 한다는 집착 어린 강박에 그토록 스스로를 내밀어놓고 정작 결코 변하지 않았을, 그대로일 것이 확실한 이곳을 애절하게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온 것은 모순일까. 아니, 차라리 진심이겠다. 떠나온 무렵이 옛 상사의 부름으로 회사를 옮겨가 2년 간 마음고생 몸 고생의 절정을 찍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이 악물고 버텼던 탈진의 시간을 끝낸 지 수개월이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떨쳐지지 않은 감정의 잔해가 여전히 내 안에 머물던 시기였으니 고요한 마음의 평화가 간절했던 것. 돌연히, 아니 제법 자연스레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두려움이었음을. 나이 듦을 향한 막연한 두려움, 저만치 먼 곳에 있는 줄 알았던 불혹이 성큼 지척에 다가와 있다는 긴장감, 그리고 세월의 속도에 한참을 못 미치는 느림보 나무늘보 같은 내 삶의 걸음걸음을 답답하게만 여겨왔던 원망이었음을. 그리고 이번엔 확신했다. 변함없는 여전함을 향한 갈망이 나를 계속 이곳으로 데려올 것임을.



무겁고 어두운 심연으로만 빠질 리가 있나. 생각의 실타래는 얽힌 듯해도 만지작 거리다 보면 결국 마디마디 풀리는 것. 이곳에 머물며 하루의 여러 순간 환기의 역할을 담당해준 것은 바로 납작 복숭아였으니. 단 하루도 이 어여쁜 과일 없이 보내는 날이 없도록 늘 채워 두었다. 이 기특함은 칭찬받아 마땅하지, 암. 생각 한 번 찐득하게 하고 나선 창가 자리를 떠나 부유하듯 키친으로 달려간다. 복숭아 꼭 두 개씩을 꺼내어 흐르는 물에 대충 씻고 흔들의자에 반쯤 누워 한입 베어 물면 뭐랄까... 고뇌와 번뇌의 노고에 치하를 받는 느낌이었다랄까. 그 누구도 아닌 공간으로부터.


생각해보면(생각을 또?) 아침엔 커피의 쓴맛이 그윽하고도 맛깔나게 느껴지고 오후엔 납작 복숭아의 촉촉한 달콤함이 반가워 마음이 녹고 또 힘이 나는 걸 보면 단 하루 건 인생의 많은 날들이건 과연 이런 쓴맛과 단맛 사이를 정신없이 들락날락거리는 것 아니겠나 싶은, 뭐 그런 것. 그러니 앞으로의 삶도 띄엄띄엄 여행하며 살 수 있다면 괜찮겠다란 것. 문득 이어서 떠오르는 건, 혼자 건 함께이건 여행 중엔 또 이런다는 것. 이런 게 무어냐인즉슨 호텔이라 부르기보단 '집'에 가자고. '집'에서 먹자고, '집'에서 쉬었다가 거기 가자고 한다는 것 말이지. 얼마간 동안 집인 게 팩트지만 예사롭지 않은 집이어서 자꾸만 나를, 우리를, 마음과 몸을 끌어당기지. 빈 여행 추억의 팔 할은 이네스 아파트로 귀결되기에 한편 그 멋진, 우아한 도시를 충분히 거닐었나 싶지만 '집'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기에 도리어 추억은 아름다운 것 아닐는지. 좀 과장을 보태자면 지금의 글 쓰는 나를 만든 건 빈과 그 공간 아니었을지. 아무튼, 부러 그곳에 남겨두고 온 생각이 조금 있으니 곧 다시 가야겠다고... 긁적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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