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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Jul 06. 2023

그래서, 하겠다는 일이 뭔데?

Supersense Letter 1

익숙함이 찾아들면 낯섦을 찾아 떠나곤 했습니다. 탐색기를 시작으로 과도기를 거쳐 적응기에 이르러 익숙해질 때면 온몸의 촉수를 곤두세워 작당 모의를 시작하죠. 마치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내면이 소란스럽게 요동합니다. 왜일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자주 건넸어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 고민했지요. 늘 유쾌한 고민은 아니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반복과 지루함을 견디는 역량 혹은 성품이 너무 중요하다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에요. 더 정확히는 '왜 그러지 못하냐?'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죠. 그때 차라리 태풍 속으로 질주하듯 이 사안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어야 했는데(안 죽었을 텐데요), 일하고 독서하고 틈 내서 노느라 바쁘단 핑계로 지나갔습니다. 일은 대체로 열심히 했고, 독서는 늘 즐거웠고, 노는 건 더 즐거웠으니까요.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어느 날 영혼이 체했습니다. 일을 하던 중에 '이게 뭐지? 나 뭐 하고 있지?'란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어요. 정확히 기억해요, 2016년 초입이었고, 지금 이 상황이 뭐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때 순식간에 찾은 유일한 해결책은 여행이었습니다. 환경을 벗어나보는 것 말곤 아무것도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저란 사람은 꽤 환경의 지배를 받고 있고, 나약해져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랩탑 화면 가득 세계 지도 이미지를 펼쳐놓고 눈알을 굴렸습니다(그냥 '눈'이라고 하기엔 아쉽... 분명 '눈알 굴리는 소리'가 났어요...). 어딜 안 가봤지? 아니다, 어디를 다시 가고 싶지? 갑자기 즐거운 혼돈이 시작되었습니다(딴 소리지만 스페인 작가 알베르트 에스피노사의 소설 <푸른 세계>의 부제가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예요. 우리 혼돈을 사랑합시다.). 이유는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암스테르담'이 눈에 들어왔고, 마침 파리가 고속열차 3시간 거리라 이거다 싶었습니다. 빛의 속도로 항공권, 호텔, 기차를 결제하고는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낚아채듯 '낯섦을 향한 욕망'을 폭식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이모저모를 딥 디깅 하고, 숨고에서 과외 선생님을 빛의 속도로 찾아 여행 프랑스어 과외를 받았습니다(아베쎄데 배운 사람). 파리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도 예약하고, 미술관/박물관 입장권도 미리 구매를 해두었지요. 일 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능률을 맛보면서 말이죠(내가 이렇게 빠른 사람이었나?). 그런 데다가 이 모든 준비 과정이 테라피 같았다랄까요? 그때 느꼈어요. 새삼스러웠지만 '여행의 시작은 여행을 결심한 그 순간부터구나'라는 것을요. 그리고,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지고, 단조로움과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말이죠. 그런데 막상 출국 당일엔 비행기를 놓쳤어요. 또 정신없이 산 거죠.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이마에 강펀치를 날려봤어요. 아프지만 성에 차지 않아 셀프 싸대기를 날려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도 좋았습니다. 속이 문드러진 건 사실이지만 비싼 수업료 낸 셈 쳤어요. 정신을 차려야 했나 봐요, 정말. 다음날 공항에서 노숙하다시피 머물며 가장 빠른 일정으로 항공권을 예약하고는 24시간을 잃어버린 여행을 했습니다. 놓친 비행기는 직항이었고 새로 산 티켓은 환승이었다죠? 밤 비행기 상하이 환승은 신세계였습니다(to be continued...).


나 홀로 여행의 최장점은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이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술 한 잔 할 때나, 한없이 걸을 때나, 잠을 뒤척일 때나, 기차 밖 풍경을 바라볼 때나 모든 시간이 바로 생각에 잠기기에 최적이잖아요? 찬찬히 생각과 마음을 살폈습니다. 어느 날엔 눈물이 나도록 파고들었지요. 피곤함, 서러움, 회한, 두려움, 불안이 밀려왔지만 결국 사라졌어요. 과거형의 감정들이었기에 과거로 보내주었죠. 지금 내가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요. 여행 전의 설렘 그리고 낯선 발견과 혼돈으로 가득한 여행 중의 흥분과 희열에 집중했습니다. 그러곤 어느새 충만한 감정들로 채워져 여행 이후의 일상을 제법 잘 살아갔습니다. 그 이후로 매년 '올해의 여행은?'이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삶의 관점과 시각을 조금 비틀었습니다. 일과 성공이 전부인 줄 알았던 그 생각, 나의 느린 속도와 세상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스펙과 한 회사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내밀한 내 욕망은 틀렸다는 생각, 이 모든 건 '다름'일 뿐인데 '결핍'이라고 여겼던 그 관점에서 한 걸음 벗어나기로 작정했던 거죠. 즐거움 못잖게 고민과 갈등으로 채워진, 조금은 특별한 여행을 하면서 '디자인'이란 말과 의미에 꽂혀버렸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도시 전체의 디자인에 현기증 나도록 반해버리고 취해버린 덕분이기도 했지만요. 

Cafes in Amsterdam

그때부터 결심을 했습니다. 내 커리어도 인생도, 물론 여행도 내가 디자인해야겠다, 라고요. 처음부터 짠! 하고 말하고 싶었던 게 결국 이 한 마디지만 이번엔 꼭 스토리의 흐름이 필요했어요. 누구에게든 이런 순간은 있을 거잖아요? '그때부터였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터닝포인트의 순간이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먼저 꺼내 보았습니다. 이후로 제법 많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죠. 동일한 범주의 일을 했지만 전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직을 했고, 부모님껜 죄송했지만 명절 휴일을 십분 활용해 휴가를 붙여 매년 여행을 했습니다. 더디고 느린 내 속도를 내가 괜찮다 괜찮다 해줘야겠다 싶어 느리지만 방향만 잃지 말자, 란 생각으로 살았고요. 


채용과 인사 분야의 일을 다년 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는데 제게는 한 명도 빠짐없이 그들의 '다름'이 보였어요. 사람들의 커리어를 개관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고 또 개발이나 성장을 도와야 하는 직업병인 것도 물론 있었지만 '이렇게 다 다른데 왜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하나? 어찌 속도가 같을 수 있겠나?'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던 거죠. 헤드헌팅 일을 오래 하면서 찾은 하나의 관념이 있어요. '기업은 대체로 'best person'을 원하는 게 아니라 'right person'을 원한다'라는 거예요. 최고, 최상, 최적이면 좋은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진짜? 정말로?'라고 한 번 묻게 되는 거죠. 세상이, 사람들이 정의하는, 열망하는 그 길과 방향이 누군가에겐 정말 안 맞는 거예요. 한때 저도 이 사람 인생, 저 사람 커리어 따라 해보려다 뱁새 황새 장면 여러 번 연출했어요. 남는 건 별로 없었죠. 오히려 '내 방식대로 해보자', '내 속도로 가보자'라는 조용한 속삭임을 통해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더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내 사업을, 내 일을 하게 된다면 '커리어와 라이프스타일, 특히 여행을 디자인하는 일'을 꼭 해야지,라고 다짐했습니다. 예상보단 조금 늦었지만 드디어 한 걸음 내디뎠고, 하루하루 두려움과 즐거움이 교차로 찾아와요. 이게 또 상호보완적(?)이더라고요? 이 두 감정을 동력으로 잘 써먹어야겠습니다. 


Supersense가 커리어와 라이프를 어떻게 디자인하며 살아가는지 지켜봐 주세요. 필요할 때, 마음이 동할 때, 숨이 막히고 답답할 때 이 여정에 동참하세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 발견하고 뛰어들고 부딪히며 배우고 깨닫기 위해, 빠르던 느리던 내 속도로 성장하기 위해, 우리의 일과 삶을 야무지게 디자인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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