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코펜하겐은 적요 속에 잠겨 있었다. 찻잎에서 우려낸 향처럼 도시의 밤엔 분명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가을이라고 하기엔 꽤 관대한 바람이 따스하게 불었다. 바람결은 다정히 나를 감싸 안는 듯하더니 찬찬히 스러져갔다.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 부드러운 바람에선 감미로운 맛이 났다. 스톡홀름에서 기차를 타고 코펜하겐에 도착한 날이었다. 호텔 주변 동네 산책은 다음날로 미룰 작정이었는데,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은 후 옷을 갈아입고 부리나케 길을 나섰다. 가뿐한 마음으로 버스에 냉큼 올라탔지만 내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 헷갈렸다. 버스 기사님의 호의와 로컬 사람들의 친절한 마음씨 덕분에 '정류장이 아닌 듯하지만 분명 정류장인 곳’에서 내릴 수 있었다. 구글맵이 종종 맥을 못 추는 때가 있는데 이때가 바로 세상이 여행자에게 마법을 부리는 때다. 낯선 이에게 친절과 다정함을 듬뿍 건네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영혼이 위로받는 순간 말이다.
버스에서 내려 십여 분 걷다 보니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운하가 나타났다. 운하에 비친 아름다운 붉은 벽돌의 건물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첫 만남부터 이리도 낭만적이라니. 성공적인 첫인상을 담당한 건물은 무려 17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자 르네상스 양식의 증권거래소라고. 뜻밖의 조합이 매력적이다. 작고 예쁜 식당이 널찍한 간격을 두고 모여 있는 길을 지나고 나니 민트색의 동그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옛 페리 선착장 건물을 개조한 곳이라고 한다. 넓은 창으로 빼어 나온 조명빛과 민트색이 자아낸 아늑함이 예쁘더라. 민트초콜릿 아이스크림 위에 황금빛 에스프레소를 붓는 느낌이랄까. 우아하고 향긋한, 달콤 쌉싸름한 매력. 흡사 부둣가 풍경을 바라보노라니 기분이 묘했다. 도시에 흐르는 운하가 만들어내는 진풍경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이내 정신을 부여잡고 건물의 2층으로 향했다.
계단 맞은편에서 드디어 발견한 이름, ‘더 스탠더드 재즈 클럽(The Standard Jazz Club)’. 코펜하겐과의 첫 만남을 상상하며 여행 준비를 하던 어느 날 ‘도시를 음악으로 먼저 만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찾아왔다. 뉴욕과 파리 못잖게 재즈 사랑이 엄청났던 코펜하겐을 당연히 재즈로 만나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 그렇게 시작된 코펜하겐 재즈 클럽 온라인 투어. 역사와 스토리 그리고 연주 프로그램을 세밀히 찾아봤다. 그러던 중 10월의 가을 단 3일 간 재즈의 왕 마일스 데이비스의 오마주 연주가 있을 거란 소식을 발견했고 쾌재를 불렀다. 그 3일 중 하루, 연주의 마지막 날이 나와 코펜하겐의 첫 만남의 날이라는 것. ‘운명이자 인연이다'라는 강력한 의미부여와 함께 코펜하겐의 첫날밤의 계획이 완성된 것이다. 재즈클럽 입구를 찾지 못해 연주에 늦을라 발을 동동 구르다가 벽인 줄 알았던 묵직한 문을 발견했다. 힘껏 밀고 들어가 티켓을 구매한 후 레드 와인 한 잔을 고이 들고 클럽 안으로 향했다.
재즈 퀸텟의 연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무대 중앙에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트럼페터가 왠지 고독해 보였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곡을 연주하기 위해선 아마도 필요한 감정이었겠지. 너무 앞도 아니고 너무 뒤도 아닌, 약간은 구석지지만 무대는 잘 볼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금요일 밤 재즈 클럽에서 객석의 8할을 차지한 은빛 백발의 물결을 보고 있자니 잠시 음악은 잊고 짧은 상념에 빠져버렸다. 의미인즉슨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감동과 환희가 솟아올랐다는 것. 이 풍경이야말로 진정한 어른들의 밤이구나 싶었다. 서로를 한 번씩 바라보다가 연주와 무대에 심취하고, 찬찬히 레드 와인을 마시는 할머님 할아버님들을 은밀히 구경하는 즐거움에 빠져 하마터면 음악이 뒷전으로 밀려날 뻔했다. 한 곡 한 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목청껏 브라보를 외치고, 힘껏 박수를 치며 환한 미소를 띠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내 노년의 삶의 한 장면이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나직이 외쳤다. ‘오늘을, 이 장면을 잊지 않기로 하자.’
심금을 울리는 트럼펫 솔로에 이어 콘트라베이스 솔로 연주가 이어졌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된 듯 숨을 죽인 채 점잖고 육중한 콘트라베이스 선율에 집중했다. 어른들의 환호와 외침 그리고 고요히 몰입하는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연극 같았다. 어두운 뒤편에 홀로 앉아 연주도 즐기고 은빛 백발 어른들의 모습도 감상하려니 음악회와 영화를 동시에 보는 기분이었다. 당시 30대 중반이던 나와 노년의 어른들이 한 공간에서 음악과 와인을 만끽하는 이 어우러짐은 특별했다. 인터미션이 되어 조명이 밝아지고 나서야 ‘젊은이’는 나 하나라는 걸 알게 됐다. 덴마크인도 아니고 동양의 젊은이가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은 이들에게 낯선 풍경이었을까. 힐금 쳐다보는 분들 반, 어린아이 같이 신난 표정으로 눈인사를 건네준 분들 반. 그저 수줍은 미소로 화답할 수 있었을 뿐 어떤 말도 꺼낼 자신이 없었지만 마음으론 계속 말하고 있었다. ‘저, 할머님 할아버님들 사이에 끼어 음악을 즐기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요’라고.
어른들의 표정과 몸짓은 ‘일상을 잘 살아가는 삶의 예술가들’의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 이렇게 음악을 즐기는 금요일 밤을 보냈을 테지. 스스로에게 최고의 하루, 최고의 순간을 선물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살아오셨을 거고. 소소한 행복을 얻는 순간을 자주 가지며 소중히 여기는 삶의 태도를 빚어 왔을 테고. 분명 아픔도 슬픔도, 어쩌면 불행도 이따금씩 겪었겠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내가 살아온 날들의 2배에 달하는 세월을 살고 있음에도 음악 앞에서 이렇게 웃고 환호할 수 있다면 노년의 삶이란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 세곡의 앙코르 연주가 끝나도록 모두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왜 그리도 감동이던지. 그런데 예상도 못했던 반전 감동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콘서트가 끝나고 지층으로 내려가 호텔로 돌아갈 방법을 검색하고 있던 찰나에 마주친 풍경은 완벽한 피날레. 열댓 분의 어른들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정말로 의도치 않게 ‘아!’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열심히 감상했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려 했던 계획을 접고 밤산책을 실컷 했다. 걷지 않고는 소화시킬 수 없던 감동의 과식이었다.
햇살이 유난히도 뜨거웠던 어느 오후, 여기는 빈의 카페 프뤼켈(Prückel). 노천에 앉아 멜랑즈를 마시며 여름의 마지막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빈과 노천카페와 멜랑즈의 3박자는 독보적이다. 그 어떤 조합도 여간해선 넘어설 수 없는 그런 특별함이 있다. 한가로이 풍경과 사람을 구경하던 중 새빨간 립스틱이 치명적으로 잘 어울리는 백발의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순간의 나는 미소를 지을지 눈을 피할지 몇 초간 고민하고 있었던 듯하다. 경계선을 과하게 넘지도 지키지도 않으려는 여행자의 습관이랄까. 그런데 그녀는 함박 미소를 짓더니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눈인사를 건네왔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최대치의 미소로 화답했다. 얼마간 또 각자의 시간을 보냈지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걸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찰나 그녀는 작고 어여쁜 핸드백을 어깨에 메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하는 거 아닌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 곁에 있던 연인과 내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방그레 웃었다.
곧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한 번 더 나와 눈 맞춤을 하더니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눈길로 방해하지 말아야지 결심하고 연인과의 대화에 집중하려는 찰나 그가 나타났다. 체구는 작지만 꼿꼿한 자세가 인상적인 백발의 남성이 그녀에게로 다가가니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입을 맞추는 거 아닌가. 정말로 공기 중에 하트가 둥둥 떠다니는 게 보였다. 연인과 나는 또 눈이 마주쳤고 전보다 더 환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우리의 대화는 내내 사랑과 노년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갈까? 우리의 관계와 사랑은 어떻게 진화하고 변화할까? 여행을 할수록 전과는 다른 호기심과 상상이 찾아든다. 노년의 삶에 대해 막연히 그려봤던 그림이 청사진을 보고 듣고 느껴가며 구체화되고 있달까. 여행에서 수집한 로망 만으로도 이미 마음 만은 넘치도록 풍성하다. 이런 이야기를 연인과 자주 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무조건 운동뿐이다’라는 현실 조언으로 뼈를 맞는다. 그러나 너무나 옳고도 지당한 설득 덕분에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선다. 로망이 로망으로만 끝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빈과의 세 번째 만남에 이르러서야 찾은 응용미술관. 마음속에 몰래 아껴둔 곳이었다. 600년 전통 합스부르크 왕가의 방대한 예술 세계와 빈의 미술사를 몇 년 간 찬찬히 훑고 오다 보니 근현대 미술로 채워진 응용미술관에는 좀 더 천천히 다다르고 싶었던 것.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실은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지 뭐람. 세기말 빈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가구와 예술품 전시 그리고 빈 분리파의 작품 전시가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클림트를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장식 미술가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의 옛 정체성과 천재성을 가까이 볼 수 있었던 건 기대 이상의 감동이었다. 벨기에의 어느 저택에 완성작이 있다는 <생명의 나무> 스케치를 만났다. 스케치라고 하기엔 이미 완성작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왔지만. 응용미술관에서 한참을 머물며 작품과 생활 사조를 들여다 보고 나니 드디어 빈을 그리고 클림트를 제대로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어쩌면 코로나로 인한 단절과 그리움의 시기 그리고 성숙의 시기를 지나야 만 볼 수 있는 게 있었던 걸까. 가뜩이나 빈을 향한 사랑이 크고도 큰데 분명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미술관 덕분에 빈과의 운명 공동체적 사랑을 느낀 것도 행복했지만 여전히 강렬히 추억하는 다른 만남이 있다. 티켓을 사고 입장을 하려던 차 나직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주시는 백발의 여성을 만났다. 진주귀걸이와 목걸이를 하시고 블랙원피스를 입고 계신 모습에서 우아한 광채가 났다. 그녀는 본인을 미술관의 자원봉사자라며 소개를 했고, 미술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더불어 층별 안내를 해주셨다. 안내를 시작하기 전 “독일어로 할까요? 아니면 영어를 원하세요?”라며 우리에게 물어오셨는데 당연히 영어를 원한다고 답하며 모두가 함께 유쾌히 웃음을 터뜨렸다. 외국어를 하나만 더 할 줄 알아도 내가 사는 도시를 위해 그리고 예술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가 사는 곳과 젊은 영혼들 그리고 여행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어른이 되자고 다짐했다.
어디서 왔냐는 물음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본인이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아쉽다며 배시시 웃는 그녀에게서 소녀의 사랑스러움이 묻어났다.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말을 덧붙이셨는데 진심 여부를 떠나 참 듣기 좋은 말이더라. 여전히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내 삶에서도 부디 영원하길. 안내를 다 듣고 나니 마치 할머니가 동화책을 읽어주신 기분이 들었다. 어떤 순서로 보는 게 빈의 근대 미술사와 생활사를 재밌게 볼 수 있는지, 아울러 어디로 가야 클림트의 작품을 볼 수 있고, 지금 특별전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유창한 영어도 그렇고, 힘이 있는 자세와 목소리 그리고 겸비하신 다정함을 내가 가야 할 길을 위한 이정표로 삼기로 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고 간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 아닌가.
여행의 시간들이 쌓이면서 노년의 삶을 위한 힌트와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노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여행을 할수록 분명해진 것. 파리 로댕 박물관에서 로댕의 <키스>를 감상하던 중 내 눈길을 빼앗아 갔던 노부부를 기억한다. 지팡이를 곁에 세워두고는 벤치에 함께 딱 붙어 앉아 돋보기안경을 주고받으며 가이드북에 푹 빠져 어린아이처럼 미소지으시던 모습. 도쿄 필하모닉에서는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 끝나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고 벌떡 일어나 열띤 박수와 우렁찬 환호를 보내시던 바로 옆 자리 백발의 젠틀맨을 잊지 못한다. 탄탄한 근력과 매력을 뽐내며 음식과 커피를 한 쟁반에 담아 한 팔로 거뜬히 내주시던 카페 슈페를의 백발의 매니저님도 결코 잊을 수 없지. 여성의 매력은 단단한 전완근에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던 개안의 순간이었다. 삶의 환희와 즐거움을 가득 안고 있는 인생 선배님들이 세계 도처에서 내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걸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지혜로운 어른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가 그 어른들 중 한 명이 되어 있겠지. 그때까지 로망은 계속 수집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