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서점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정서’가 있다. 서가에 빽빽하게 꽂혀있는 책이 뿜어내는 어떤 기운일까? 책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공명하는 에너지일까? 아니면, 온갖 종류와 장르의 책들 속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지혜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신비감 때문일까? 예의 그 특유의 정서에 이름을 붙여보고 싶지만 결코 쉽지 않다. 겉모습이나 언어가 달라도, 나라와 도시마다 지닌 문화가 달라도, 서점은 어디에서나 그저 ‘서점’인 것이다. 역사와 세월 및 다양성을 담은 책이 있고, 이야기와 교감이 있는 충만한 곳 말이다. 여행을 거듭하며 정리해 본 나름의 사적인 해석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는 ‘호텔은 도시의 축소판’이라는 것. 다음으로는 ‘서점은 세계의 축소판’이라는 것이다. 서점에 들어서면 언어의 장벽과 문화 차이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 듯하다. 그저 공간에 흐르는 공기와 책냄새 그리고 책을 발견하고, 읽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교감하는 곳이니까.
서점의 정서를 닮은 듯한 오스트리아 빈의 7구 노이바우에는 작은 동네 서점이 참 많다. 노이바우는 빈의 23개의 구 중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한 구로, 규모가 꽤 작은 구역이다. 이제는 길을 걷다 우연히 서점을 만날 확률이 매우 희박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가능한 도시가 있단 게 큰 행복이다. 문화와 예술이 도시를 숨 쉬게 하듯 서점은 세상을 숨 쉬게 하는 것 같달까. 빈에 도착한 첫날의 저녁 식사 리추얼을 위해 마리엔호프로 향할 때도, 하루의 첫 라테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 찾았던 카페를 지날 때도 시선을 잡아끈 동네 서점이 있었다. 여러 차례 지나는 동안 이른 아침이거나 저녁 시간대였기에 문은 대체로 닫혀 있었지만 계속 힐끔거리며 뇌리에 각인시켜 두었다. 구글맵에 미리 별표를 해둔 곳이 아닌 순전히 발걸음과 시선으로 찾은 곳이라는 것 그리고 그곳이 서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호텔 이사를 앞두고 노이바우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오후 드디어 시간을 냈다. 연인은 호텔에서의 쉼을 택했고, 나는 당장 거리로 나섰다. 계획에 없던 순간을 위해 부러 만드는 시간은 의미와 가치가 남다른 건 물론이고 짜릿했다. 10여분 남짓 걸어가는 발걸음은 사뿐사뿐 가벼웠고, 마음은 간질간질 설렜다. 드디어 서점 앞에 다다랐는데 간판이 참 인상적이었다. 간판 자리를 거의 차지할 만큼 큼지막한 텍스트는 ‘서점(Buchhandlung)’이고, 아주 작게 쓰인 텍스트가 서점의 이름 ‘유리 지붕 서점(Buchhandlung zum Gläsernen Dachl)’이라는 점이다. 마치 ‘여기는 서점입니다. 네 맞아요, 여러분의 동네 친구 서점이에요’라고 말풍선이 떠있는 것만 같았다. 서점의 이름보다는 ‘서점이라는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고, 이름을 알릴 의무는 있으니 작은 글씨로나마 알린다는 의미가 아닐는지. 그런데 왜 ‘유리 서점’일까? 직접 물어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과거의 내가 너무 원망스럽다. 머잖은 날 다시 찾아가서 꼭 묻고, 이야기 한아름을 안고 오리라.
서점 입구엔 귀여운 크기의 매대에 두세 권은 너끈히 들고 다닐 수 있을 듯한 깃털 무게의 페이퍼백들이 채워져 있었다. 대부분 독일어 책이었기에 제목을 읽을 수 있다는 기쁨만 몰래 즐긴 채 안으로 들어섰다. 독일어 과외를 받고 있던 꿈나무는 세상의 모든 것을 텍스트로 인식하는 모드를 가동 중이었으니. 읽을 수 있는 원초적인 기쁨에서 의미를 이해하는 것으로 나아가 몇 마디 말을 뱉어내며 짧디 짧은 대화를 하는 희열까지 그 어느 것도 놓칠 수 없는 현장 학습형 여행이었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려니 갑자기 쑥스러움과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서점 내부의 첫인상은 ‘동굴’이었다. 어둠과 박쥐가 연상되는 동굴이 아닌 따스한 빛과 안전함으로 가득 찬 책 동굴. 직사각형의 모양을 띤 서점 내부는 벽을 두르고 있는 서가가 안쪽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공간의 중간중간 벽 역할을 하는 서가가 여럿 있어 장르별로 구획이 나눠져 있었고, 구석구석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도 반가운데 의자 곁엔 조명까지 놓여 있어 일부러 앉아봤다는 거 아니겠나. 오래 머물며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은 물론이고 누군가와 긴밀히 대화를 나누고 싶게끔 다정하게 꾸려놓은 곳이었다. 마음먹고 이곳에 숨어 몇 시간이고 세상과의 단절의 시간을 보내는 이가 분명 있겠구나 싶어 부러웠다. 긴 내부 공간의 중간 즈음에서 의자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반가운 오브제를 만났으니 그건 바로 피아노. 옛 시절 유럽 영화에서 본 이웃집 할머니댁 응접실처럼 붉은 카펫이 깔려있고, 피아노 곁엔 예닐곱 개 의자가 반원형으로 놓여 있다. 따뜻한 캐모마일차 한 잔 하며 밤새 읽은 소설 이야기를 나누는 완벽한 오후의 한 장면을 상상했다. 혹은 퇴근길 집이 아닌 동네 서점으로 향해 위스키 한 잔 하며 인문학자나 철학자가 된 마냥 아무 말 담소를 나누는 하루가 있다면 한주가 완벽하지 않을까도 상상해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는 곡도 없고, 배운 지 오래라 칠 줄 안다고 말하기엔 어설프지만 피아노는 늘 나를 끌어당긴다. 어디서든 언제든. 그리고 피아노가 있는 공간엔 메시지가 있다. 오래 머물다 가도 좋다는, 당신만의 음악을 들려달라는, 어릴 적 향수로 빠져보라는, 누군가의 연주에 격려를 건네보라는 그런 메시지 말이다. 피아노를 만나면 수줍고 머쓱하다가도 어떤 끌림에 일단 의자에 앉는다. 건반을 몇 개 툭툭 쳐보는 동안 기억 저편 아득한 곳에 묻혀있는 멜로디 몇 마디를 끄집어낸다. 서너 번 시도하다 보면 마치 처음 만났지만 호기심이 드는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 눈인사를 주고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쑥스럽지만 입을 열어 인사를 먼저 건네는 용기를 내듯 몇 차례 더 연주를 시도해 보면 피아노 선율이 내 몸을 휘감기 시작한다. 양손이 따로 놀며 멜로디를 이탈하고 삐끗하지만 어느새 어떤 곡인지 나도 알고 남도 아는 지점에 다다른다. 비록 곡의 끝지점에 방점을 찍진 못하지만 어린아이처럼 볼은 붉게 물들고 입꼬리는 올라간다. 짧고 강렬했던, 순수한 유희의 순간이다.
공간을 여기저기 세밀하게 구경하는 내게 서점 주인 두 분 중 한 분이 슬쩍 다가와 나직이 한마디를 건네왔다. “원한다면 피아노를 쳐도 좋아요, 마음껏.” 은은한 미소가 깃든 그의 얼굴 표정은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삼고 싶을 만치 밝게 빛이 났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미소를 잊지 못해서 발걸음 할 테지. 고마움을 표하고, 생각나는 곡들의 일부를 짤막하게 연주했다. 연주라기보단 똥땅대는 소리에 더 가까웠지만 기분이 무척 좋았다. 서점과 나, 제대로 인사를 한 후 스몰 토크까지 나눈 셈이었다. 더 이상 기억나는 멜로디가 없어 피아노를 뒤로 하고 다시 탐색에 집중했다. 숨겨진 공간이 더는 없을 줄 알았는데, 안쪽으로 깊숙이 더 들어가 보니 어여쁜 공간이 또 있는 거 아닌가. 이번에도 의자다, 더 오래 머물고 싶게 만드는 안락의자. 의자 곁 테이블엔 책이 여러 권 쌓여 있는데, 무심한 듯 보이지만 큐레이션 아닐까 생각했다. 완벽한 조도의 조명빛 아래 반쯤 눕듯이 앉아 잠깐 졸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를 이곳에 반나절쯤 가둬두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빈에서 돌아온 지 한참이 흐른 후에도 서점을 잊을 수가 없어 관련 정보와 이야기를 찾아봤다. 홈페이지에 마침 역사를 훑어볼 수 있는 정보가 있었는데, 1986년 문을 연 유리 지붕 서점의 역사가 40년이 다되어 간다는 것. 내가 발걸음 했던 때는 2019년 가을이었고, 34주년이었던 것이다. 동네 서점의 나이가 불혹이 되어가다니 40주년에 찾아가 축하 파티를 해주고 싶다. 더 장수하길 진심으로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볼까나. 처음 문을 연 건 게르하르트(Gerhard)와 브리기테 이윈(Brigitte Iwin) 부부였는데, 2014년에 게랄트 욉스틀(Gerald Jöbstl)이 인수를 해 브리기테 이윈과 함께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게랄트는 20년간 단골 고객이었다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사정과 스토리가 있겠지만, 게랄트는 어쩌면 이 동네의 영웅이 아니었을지. 당시엔 미처 이름을 물을 생각도 못했지만 내가 만난 사람이 창립자 게르하르트가 아닌 게랄트라는 걸 알게 되니 내심 더 기뻤다. 20년 단골 출신 서점 사장이라니 부러움이 피어오른다. 그는 내게도 단연 영웅이다.
안락의자에 한없이 앉아있다가는 달콤한 잠에 빠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문학 섹션으로 향했다. 독일어 책은 여전히 그림의 떡이지만 문학이라면 언젠가를 꿈꾸기에 최고의 동기부여 아닐까 싶었다. 여행을 떠나기 몇 개월 전 독일 소설가 니나 게오르게의 장편 소설 <꿈의 책>을 읽고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터라 원어로 된 <꿈의 책>을 구하고 싶었다. 과연 몇 장이나 읽을 수 있을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섬세한 묘사와 가슴을 아린 뜨거운 문장들을 독일어로 만나고 싶다는 열망에 조심스레 재고 여부를 물었다. 세 차례 시도했지만 끝내 내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어 난처해하는 게랄트를 위해 스마트폰 메모장에 이름을 적어 물었으나 아쉽게도 재고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만 그가 니나 게오르게를 알고 있고, 훌륭한 소설가라 생각한다는 한마디를 건네준 덕분에 아쉬움은 금세 사라졌다.
“저는 독일어를 배우고 있어요. 책을 추천해 줄 수 있나요?” 두 마디 말을 독일어로 겨우내 뱉어냈다. 다행히도 내 말을 이해한 게랄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약 10초간 고민하더니 다른 편 서가로 향했다. 그가 순식간에 찾아내 내 손에 건네준 책은 무려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Die Welt von Gestern)>였다. 오스트리아 빈 태생 전세기 최고의 작가인 그의 자전적 소설을 추천해 준 건 역사와 양차 세계대전 그리고 언어를 함께 공부해 보라는 제안이었을까. 추천 사유를 묻는 대신 나는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무려 슈테판 츠바이크를, 과연 내가 읽을 수 있겠냐며 의구심 가득 투덜댔다. 그는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읽을 수 있을 테니 부디 천천히 노력해 보라며 격려해 주었다. 다정한 격려에 마음이 동한 건 사실이지만 무의식에선 이미 알고 있었다. 끝까지 읽진 못하겠지만 보물처럼 늘 책상에 두고 지낼 거란 것을. 서점과 이웃인 카페로 건너가 한 시간 동안 끙끙대며 두 페이지를 읽어보았던 가상한 노력을 부끄럼 대신 추억으로 삼아 서점과 빈을 그리워한다. 과연 언제 다시 펼쳐보려나?
어려운 소설을 추천받고 보니 보상 심리가 솟아났다. 부담감 없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쉽고, 짧고, 흥미로운 책을 간절히 찾아 나섰다. 역시 간절함은 통했고, 작고 어여쁜 레시피 책 ‘아보카도’를 발견했다. 금세 기분이 고양된 나는 차오르는 만족감과 함께 계산을 하려 브리기테에게로 향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잠깐 모습이 보이지 않던 게랄트가 다시 불쑥 나타났고, 피아노 뒤편 서가로 다시 나를 안내했다. 그러더니만 갑자기 교육 인지 공학에 관심이 있냐는 거 아니겠나. 방금 아보카도책을 찾고 환희에 차있는 내게 교육 인지 공학이라니 당치도 않았다. 그는 돌연 사명감을 띤 표정으로 빈에서 1년 간 이수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이 있는데 혹 관심이 있냐면서 철학과 인지공학과 교육책 등 여러 교재를 소개했다. 관심과 가능성은 일단 배제한 채 좋은 교육 과정을 소개하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 일단 열심히 들었다. 유려한 영어 실력에 그리고 교육을 향한 그의 열정에 그저 감탄하며. 한두 마디도 겨우 하는 외국인에게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하다니 무엇보다도 그 마음가짐과 태도에 반했다. 잠시 스쳐가는 외국인 여행자도 마치 로컬 사람처럼 대해주며 소중한 정보를 건네준 그에게 여전히 고맙다.
결국 머리를 긁적거리며 웃기만 하는 나를 입구 데스크 쪽에 앉아있던 브리기테가 구해주었다. 책 두 권을 계산하고, 게랄트와 브리기테에게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한 다음 정성스레 작성해 준 영수증을 기념품 삼아 서점을 나섰다. 그저 작은 동네서점인 줄 알았는데 한 시간가량 머물다 보니 이 도시의 기둥 같은 존재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훗날 찾아보니 빈의 유명 매거진 LIVE에서 선정한 ‘빈에서 가장 멋진 어린이 서점 세 곳’에 이름을 올렸다. 더불어, 독서회와 바자회로 지역사회와 활발히 교류하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만남의 장소를 제공해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라고 한다. 한낱 백일몽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늘 은밀히 꿈꾸는 그것, 서점. 유리 지붕 서점을 만나고 나니 백일몽이 더 구체화되고 있어 골치 아프지만 아무렴 어떠랴. 생각만 해도 가장 즐거운 곳이 서점이니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즐거이 공상에 빠져보는 수밖에. 그나저나 빈 사람들은 서점이 없어지는 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가 보다. 빈을 만날 때마다 차곡차곡 ‘서점 인수’ 이야기가 쌓이고 있으니 말이다(하르틀리프 책방 이야기 읽으러 가기). 나와 서점 사이, 우린 과연 어떻게 될까? 부디 흥미진진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