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gge Copenhagen # 10
어느덧 2주 간의 스톡홀름-코펜하겐 여행의 막을 내릴 마지막날 밤이 다가왔다. 여행의 첫 날엔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은 마지막 날 밤. 조금 더 쿨하게 맞이할 순 없었을까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시작도 끝도 행복함을 말하자면 비할 데 없지만서도 여행의 말미엔 항상 만감이 교차하고 이름모를 묘한 감정이 물 밀듯 밀려온다. 굳이 저항하지 않고 그 감정에 밀려 남은 시간을 보내보기로 한다.
코펜하겐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한껏 기대에 부풀며 예약해 두었던 레스토랑 Radio에서 하기로 한다. 옛 라디오 방송국 근처에 위치해서 이름이 'Radio'라고 한다. 뭔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듯... 지하철 Forum역 출구에서 약 2분 거리에 위치한다. 찾아가기가 꽤 쉬웠던 곳. 이름도 정감있는데 찾기도 어렵지 않아 한껏 설렘이 부풀려졌다.
출구를 따라 나오니 눈앞에 펼쳐지는 노랗고 예쁜 건물의 모습. 지도에서 얼핏 찾아보니 The Royal Danish Academy of Music이라는데...음악학교의 모습이 어쩌면 이리도 노랗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Radio에 당도하기 전 노란 아름다움을 마구 흡수했다. 맑은 하늘 아래 비쳐진 노란 색감이 꽤 강렬하게 기억에 자리했다. 색이 불러일으키는 기억과 그에 따라오는 감정은 정말이지 기대 그 이상이다.
이 곳을 바로 지나면 레스토랑 Radio를 만나게 된다. 한아름 나무 아래 예쁜 이름인 듯 서 있는 표지판이 왜이렇게도 담고 싶었던지... 이 곳에 잠시나마 발걸음 했노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레스토랑 Radio다! 빨간 벽돌 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다. 반가움에 그만 잠시 멈춰 한 컷 담고 살며시 바라보았다. 레스토랑이 뭐길래... 코펜하겐의 레스토랑(들)은 왜이리도 나를 설레게 하는걸까.
예약은 website에서...간편히 ^^
덴마크 고유의 식재료를 기반으로 한 노르딕 퀴진의 선구자 격 레스토랑이라 불리우는 Radio. 코펜하겐에 들어서기 전부터 예약을 해두고 기다리고 기다려왔다. Noma의 공동운영자 클라우스 메이어(Claus Meyer)가 조금 더 편안하고 합리적인 가격대로 노르딕 퀴진을 맛볼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 셰프들과 함께 공동 창업을 한 곳이라고 한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노르딕 퀴진'이란 오픈 의도에 200% 공감한다. 더불어 감사를 표하고싶기까지 한 곳. 신선한 로컬 식재료로 계절에 맞는 high quality 노르딕 푸드를 코스로 맛볼 수 있는 만족도 높은 레스토랑이다.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셰프 및 스탭들의 친절한 설명까지 매 번 가미되어 정말이지 완벽에 가까운 식사를 즐기며 노르딕 퀴진에 한껏 심취해볼 수 있는 곳이다. 코펜하겐 여행에서 누구든 꼭 발걸음하기를 권하고 싶은 곳!
예약 확인을 마치고 창가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정갈함을 뽐내는 듯 시크하게도 블랙으로 프린트 되어 있는 창문 한 곁 Radio.내부 인테리어의 컬러에 블랙이 많았다. 원목은 본연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듯했고, 곳곳에 심겨져 있는 블랙 컬러가 차분함과 시크함을 적절하게 안겨 주고 있었다. 노르딕 퀴진에 걸맞는 인테리어스러우면서도 편안함이 깃들어 있는 '적절함'을 갖춘 매력적인 곳. 블랙이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구나, 를 배울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바라 본 Radio 내부 전경. 고혹적이면서도 정갈하다. 머무는 내내 블랙의 '미'에 흠뻑 취해 있었던 듯싶다. 강렬하지만 어쩜 이리도 적당할까. 강렬하면서도 은은하다란 게 과연 가능한 표현일까 싶지만 느낌은 분명 그랬다. 어떤 의도였건 이 곳을 찾는 이들을 다시 발걸음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단연 음식이겠지만서도 공간의 매력 또한 큰 이유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은 아우라를 가졌지만 손님에 대한 배려가 가미되어 편안함과 세련미를 동시에 자아낼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맞은편 벽에 걸린 사진은 Radior가 직접 운영하는 농장의 모습과 수확물의 사진이라고 한다. 신선한 로컬 식재료로 아름다운 노르딕 퀴진을 그려낼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이게 아닐런지!! Two thumbs up!!
테이블 세팅은 매우 심플하고 시크하다. 냅킨과 커트러리의 놓여진 모습이 내뿜는 단순함의 매력은 시작되지도 않은 식사를 향한 기대를 증폭시켜주었다.
도용하고 싶었던 아이디어 ^^ 포크 위에 얹어진 나이프. Impress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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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스낵이 나왔다. 식감이 정말 독특했다. 밀가루인줄로만 알았던 wrap에서 채소의 식감을 느꼈던...시작부터 즐거웁게 재밌었다. ^^ 뿌려진 페퍼가 정말 신선했던!
식전주는 샴페인으로. 스타터와 맛의 조화가 꽤 좋았다.
버터의 위엄. 직접 구운 빵과 직접 만든 버터. 이 감동은 여전히 내 부족한 표현력으로인하여 전달 실패다...ㅠ,ㅠ 크리미함의 극치. 고소함과 약간의 짭짤함과 부드러움의 완벽 조화 그 자체. 가장 가져오고 싶었던 게 있더라면 그건 바로 단연 덴마크의 '버터'다. 건강한 맛이 물씬 나는 빵에 올려 미끄러지듯 발리는 그 느낌은 또 어떻고. 다시 생각해도 감동은 여전하다. 꿀꺽, 침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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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dish - 컬리플라워와 관자요리. 컬리플라워의 식감은 완벽 그 자체였다. 탱탱함과 아삭함의 그 어느 사이. 트러플 향이 나는 식감은 가볍지만 맛은 강렬하게도 묵직한 소스와 부드럽게 씹히는 관자의 조화에서 이미 이번 디너는 승리예감. 첫 번째 디쉬부터 미각의 숨은부분까지 자극시켜주는 느낌이었다랄까. 식재료 본연의 맛을 놓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맛을 경험케 해주는 놀라운 맛의 경험이었다. Bravo.
2nd dish - 단호박과 대구살과 이름모를 seeds. 단호박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식감에 한 번 놀랐고, 크림처럼 부드러웠던 대구살과의 조화에 두 번 놀랐다. 단연 로컬 식재료의 향연, 셰프가 부린 마법같았다. 어찌보면 하나하나는 전혀 생소하지 않은 식재료인데 이 재료들에 대한 해석의 결과물은 the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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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디쉬로 향하기 전 추천 받은 레드와인 한 잔. 북유럽에서 즐긴 캘리포니아 와인이다. 셰프님에게 덴마크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을요? 라고 물었는데, 결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라며 강력 추천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묵직한 바디감이 마치 북유럽스럽게도 세련되게 느껴졌고, 풍미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캘리 와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기회였다랄까. :)
3rd dish - 비트 뿌리 요리. 지난 번 manfred's 에 이어 두 번째 맛보는 비트 뿌리. 이 식감을 어찌 묘사할 수 있을런지.... 부드러이 씹히지만 뿌리 채소답게 힘이 있다. 와인에 조린 듯한 맛과 풍미가 입 안 가득 맴돌고 향긋한 허브 딜과 튀긴 해초가 곁들여지니 생각지도 못했던 오케스트라의 향연이 내 혀 위에서 펼쳐졌다. 이 식재료로 이런 맛?!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 중 하나다.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소스와 함께 먹으니 맛은 더 예술
모든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내가 여행자여서일까, 이방인이어서일까, Radio의 분위기 때문일까. 상관없지만 모두가 아름다워보이는 게 살면서 얼마만인가, 싶었다. 특히 노인분들에게서는 더 인간적인 향기가 났다. 저 여유가 부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메인디쉬가 드디어. 송아지 요리라고 한다. 육질과 육즙으로 이미 최고의 디너. 계속해서 식감에 감동하고, 재료도 테크닉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소스의 풍미에 놀라고 또 놀랐다. 분자요리처럼 살포시 얹어진 듯한 모습이지만 맛은 묵직하고 풍미가 한가득이다. 요즘말로 미친 존재감이라고나 할까.
완벽한 식감의 송아지 고기에 못잖게 버섯의 역할이 엄청났다.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과 소스에 깊이 배어 있는 버섯 향과 맛이 단연 메인 디쉬의 대미를 장식해주었다. 미식가처럼 천천히 음미하며 먹어보려 했지만 맛에 취해버려 미식가 흉내는 내지도 못했던 듯하다. 아무렴 어떠리. 심장 떨리게 하는 음식 앞에서 교양은 갖춰서 뭐한담...이라며 스스로를 대변하는 듯 그렇게 서둘러 감동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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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웰컴 스낵과 3개의 dish 및 메인디쉬의 대장정을 마치고 디저트에 이르렀다. 황홀경이었지만 끝은 언제나 아쉽고 아쉽고 아쉬운 법. 잠시 시간이 멈춰주기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란 생각을 하던 차에 디저트가 서빙됐다. 절인배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견과류와 화이트 초콜릿. 한 스푼에 각각의 맛을 하나씩 올려 모두를 한 꺼번에 맛보기를 권해주신 셰프님의 말대로 하나씩 예쁘게 올려 한 번에 맛을 보았다. 느낄 수 있는 모든 맛을 느낀 듯했던 최고의 디저트였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나고 감동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박수 갈채를 보내며 환호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랄까...
황홀했던 노르딕 퀴진의 장정을 마치고 레스토랑 Radio를 나서며 한 컷. 계산을 하며 셰프님에게 감사와 감동을 소박하게나마 전했다. 그는 꼭 다시 찾아주라며 미소를 건네 주었다. 나 또한 다시금 언제곤 꼭 와보고 싶은 곳이지만, 여행을 앞둔 누군가에게도 꼭 추천해주고픈 곳이다. 노르딕 퀴진의 정수를 합리적인 가격과 훌륭한 서비스로 맛보고 싶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다음번 발걸음은 꼭 사랑하는 그와 손잡고, 였으면 좋겠다. 그도 분명 좋아하리란 확신이 드는 곳.
레스토랑 Radio 바로 앞에 있는 Forum역에서 편히 지하철에 올라타 호텔 근처 Bella Center역으로 향했다. 이젠 정말이지 코펜하겐의 모든 것들과 작별을 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조금 더 느즈막히 다운 타운에 머물러볼까도 생각했지만 호텔로 돌아와 잔잔히 여행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발걸음도 생각보단 가벼워지고 있었다.
제대로 담지 못해 아쉽지만 밤에 바라 보는 호텔 Bella Sky는 더 아름다웠다. 다시봐도 정말 독특한 건축물. 이 동네의 랜드마크답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호텔에 가까워지자 믿을 수 없게 눈물이 한줄기 주르륵 흘러내렸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무의식에선 이미 '그리움'과 '앓이'가 시작됐구나, 싶었다. 정확히 무엇을 향한 그리움일지 알 수 없었지만 짧고도 짧지 않았던 여정 동안 넘치도록 느끼고 얻었던 것들에 대한 동경의 마음에 흐른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게는 언제 다시 이런 시간을 이토록 매력적인 도시에서 가져볼까, 란 생각이었겠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묘하게 복잡했던 심경이었던 듯싶다. 코펜하겐에 마음을 너무도 쏟아부었던걸까? 짝사랑이었대도 마냥 좋기만 하다. 내 모든 여정에 내가 최선을 다해 마음을 열었다 생각하니 조금도 후회가 없으니말이다. 다시 온다면 그 땐 사랑좀 해주겠지, 미치도록 시크한 이 도시!!
잠시 호텔의 이곳 저곳을 거닐었다. 고요하지만 생동감 넘치던 곳.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 이런 저런 풍경이 심상치 않았던 곳. 어딜봐도 매력적이기 그지 없다. 공기에서도 느껴지는 설렘과 생동감과 기대...여행을 시작하는 이도 나처럼 마치는 이도 모두 이 곳에서만큼은 행복하기를! 행복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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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다 싸고,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어 호텔의 스카이라운지로 향했다. 체크인 할 때 선물로 받아 두었던 쿠폰으로 칵테일 한 잔 하며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움은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에, 코펜하겐에서의 하루하루 아니 순간 순간을 기억해내며 추억 속으로 들여 보내는 작업을 하는 심정으로,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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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과 그리움에 취해 칵테일 벗삼아 몇 글자 끄적여보기도....
어떤 여행이라 기억될까, 언제까지 추억하게 될까
계속해서 이어나갈 내 삶에서 어떤 에너지가 돼줄까
나는 자라 났을까
나는 무언가 내려놓았을까
나는 무언가 깨달았을까
나는 사랑에 더 다가갔을까
나는 더 용기를 갖게 되었을까
나는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되었을까
나는, 나를 더 사랑하게 됐을까
THANK YOU! Tack!
Stockholm
THANK YOU! Tak!
Copenhagen ♥
이렇게 마지막 날이 저물었다.
여행은 추억할 때 어쩌면 더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지난 여행에 인사를 건넨다.
고마웠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