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_이동진 독서법, 을 읽고
은근히(?) 기다리던 신간을 예약구매 하고선 받아보는 즐거움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내겐. 작가를 향한 신뢰일 수도 있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설렘이란 작은 선물일 수도 있고. 가끔 아니 꽤 자주 일상 속 독서 라이프에서 갈증을 느낀다. 말인즉슨, 장서를 고르는 수준을 업그레이드 하고 싶기도 하고, 책을 사랑하는 이들로 정평이 나 있는 이들은 '어떤 책을 읽고', 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란 것들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때론 나의 가는 이 (독서의) 길이 어떤 길인지 남몰래 검증받고 싶은 마음도 적잖이 들고 말이다.
무심코 가다 길을 잃었을 때 바로 찾아 접속해 의지할 수 있는 네비게이션 같다랄까. 올드 버전이지만 낯선 유럽의 어느 도시를 떠돌다 펼쳐든 손 때 묻고 약간은 구겨진 종이 지도라고 하고 싶지만... 이동진이란 사람, 그 브랜드 자체가 나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이런 존재이리라 생각된다.
그는 제목을 통해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을 단 번에 전한 건 아닐런지.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독가, 애독가, 작가이자 영화 평론가, 넓은 분야로 지적 허영을 추구하며 실천하는 지식인인 그가 이렇게 말해주니 실은 반갑기 그지없다. 위로 아닌 위로, 격려 아닌 격려를 받은 느낌?! 아무렴 어떠리, 기분이 좋아졌지 말입니다! ^^
책을 읽는 모임에도 겨우 한 두번 기웃거려 보았고,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실컷 책 수다를 떨어보고 싶어 주변을 돌아보며 소심하게 결성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포기했던 기억이 여럿 있다. 첫째로는 친화력이 부족한 가엾은 내 성격 탓이고, 다음으로는 생각보다 주변에서 책 얘기만 실컷 하길 원하는 이들을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았단 것이다. 이내 가슴 한 켠 묻어있는 외로움을 팟캐스트 방송 '빨간 책방'을 통해 종종 달래곤 했다. 꽤 즐겼고, 또 외로움에 공감도 받았지만, 책이, 더 정확히는 그 활자들과 행간의 의미가 안겨주는 매력으로, 스토리로, 받고 싶은 위로는 별개로 있었다고나 할까? 마치 내 마음을 훔쳐보기라도 한 듯 출간된 이동진 작가님의 '독서법'을 다룬 이 책이 더할나위없이 벌써 이미(?) 소중할 수밖에!
책은 총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는 이동진 작가님의 책에 대한 농축되고 영글어진 그의 '생각'이 담겨있고, 2부는 빨간 책방의 헤로인 이다혜 작가님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부록으론 이동진 작가님의 추천도서 500권이 주제나 문제의식에 따른 분류로 들어 있다. 예약 구매하며 추천도서 500권 리스트가 담긴 큰 포스터를 함께 신청 했었는데 잘한 듯싶다. 회사 유리벽 한 켠에 붙여 두었는데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되고 읽은책은 반갑고, 마음에 품고 있던 책은 '더' 반갑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은 조용히 '읽노라고' 결심하게 된다.
이동진 작가님에게는 하루 종일 한다고 해도 결코 질리지 않을 일이 '독서'라고 한다. 일에 치이거나 또는 일이 잘 안풀리거나, 몸 컨디션이 별로거나, 무언가 속세가 어지러울 때면 십여년 동안 내가 나 스스로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산 속 깊숙한 곳에 있는 산장에 숨어 들어가 한 일주일만이라도 책만 읽다 오고 싶다'라고. 가장 편안하고 가장 즐거운 '고독' 아닐까. 쉼이자 기쁨일 수 있는 게 과연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굳이 깊은 산 속 산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재에서, 그리고 침대에서(my super favorite) 그 고독은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작가님만큼은 아니겠지만 일종의 '동질감'과 '연대'가 느껴졌다.
그는 1부에서, '깊이'를 갖기 위한 '넓이의 독서'를 권하고 있고, 우리의 생각 자체이면서 표현 방식이기도 한 언어를 가장 예민하고 다루는 '문학'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본다며 문학을 향한 그리고 '언어의 중요성'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으며, 안 읽힌다면 그리고 흥미가 없다면 들고 있던 책을 포기하라며 완독으로부터 자유하길 권하고 있다. 더불어, 책을 읽는 시간을 정해둔다면 그 시간을 지키지 못했을 때 되려 독서는 미뤄지거나 싫어질 수 있으니 '닥치는 대로' 읽을 수 있게 언제든 가까이 하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은 무엇인지 묻는 그의 질문에 침대맡을 보니 '요네하라 마리'의 책 2권(마녀의 한다스, 프라하의 소녀시대)이 놓여있고, 이 글을 끄적이고 있는 서재 책상엔 여러 책들이 질서없이 놓여져 있지만 바로 오른편엔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 놓여 있다. 회사 책상엔 요네하라 마리의 '문화편력기'가 놓여 있고, 가방엔 한병철의 '타자의 추방'이 들어 있네, 후훗.
왜 느리게 읽어도 상관 없는지 그의 스토리를 들려 주고 있고, 책은 숭배하기보단 '하대'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듯도 하고. 해가 지날수록 나 또한 점점 책을 하대하고 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하대(?)하며 접고, 구기고, 밑줄 긋고, 커피도 살짝 흘리다 보니 더 깊이 들어가는, 더 친해지는 느낌이랄까.
그가 공유한 책을 고르는 세 가지 방법은 깊은 공감이 되기도 하고, 유용한 조언이 될 수 있단 생각이 들어 이 곳에 그의 글로 약간 옮겨보고자 한다.
"우선 서문을 읽어보는 겁니다. 의외로 서문을 읽는 사람이 드문데 저는 짧은 서문에 저자의 모든 생각이 농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 전체는 잘 썼는데 서문이 별로인 책은 없습니다. 훌륭한 책은 반드시 서문이 좋습니다. 그래서 서문을 꼼꼼히 읽는 게 중요합니다. 짧으면 한 페이지, 길면 대여섯 페이지 정도 되는데요. 서문을 읽으면 지은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썼고 이 사람의 공력은 어느 정도인지 다 알 수 있습니다. (중략) 다음으로는 차례를 봅니다. 서문처럼 차례를 살펴보는 경우도 드문 것 같습니다. 차례는 말하자면 건축에서 설계도와 같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례에서 실패한 책이 좋은 책일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중략) 훌륭한 책은 당연하게도 모든 페이지가 훌륭합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고를 때 마지막으로 3분의 2쯤 되는 페이지를 펼쳐봅니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를 읽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시선이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잘 읽히거든요. (중략) 집중해서 한 페이지만 보면 그 책이 나한테 맞는지, 좋은 책인지, 잘 쓴 책인지 알 수 있습니다."
2부에선 위 아래로 접어둔 페이지가 꽤 된다. 이다혜 작가님과 이동진 작가님의 현문현답(?)으로 펼쳐진 스토리라 워낙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대화를 통해 그리고 그 행간을 통해 마치 이동진 작가님을 사적으로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그의 어린시절 책 읽기부터 시작된 삶 전체를 아우르는 '독서'를 이야기하기 때문이겠지.
어떻게 '책'이 한 사람의 삶에서 이토록 중요하고 압도적이면서 동시에 일상적이고 재미진 게 될 수 있을까? 그의 삶을 2부의 대화를 통해 들여다 보니 갖게된 감탄 섞인 물음이다. 그는 행복은 '반복이다'라고 말한다. 일회적인 '쾌락'이 아닌 '반복되는 일상에 있는 소소한 일'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인데, 그 일상 속 매일 반복되는 행복의 행위가 독서란 의미이겠다. 기자였고 작가이자 영화평론가인 그가 말하니 그 '반복'과 '행복'이 '소소'해보인다기보단 '능력'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 의미로만 보자면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대문호 카프카도 말하지 않았던가, '일상이 우리가 가진 인생의 전부다'라고...
중간 중간 질투어린 마음과 눈빛으로 바라보며 페이지를 넘기기도 했지만 결국엔 닮고 싶은 독서가다. 그의 스토리가 깃든 (뭐라 부르든) 노하우, 방법, 경험, 취향, 기대, 계획 등이 한 데 절묘하게 섞인, 맛깔나게 만들어진 요리 한 접시 같은 책이다. 짧지만 농짙게 책을 이야기했기 때문일지 무어일지 모르지만 암튼간에 커피보단 와인 한 잔이 더 어울리는 책이랄까. 덕분에 낮술(?) 곁들인 독서를 즐겼기도 했고, 후훗.
이동진 작가님 책을 읽고 올렸던 예전 리뷰 포스팅도 공유해본다. 무튼, 그를 통해 접하는 책과 스토리는 매력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