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준비하는 밑줄 긋기

20180103 단상 #9

by Wendy An

지난 해 늦가을 베를린 여행을 왜 아직까지도 글로 옮기지, 아니 이 곳에 담지 못하는 걸까. 그저 mood의 문제라 핑계하며 게으름을 감추고만 싶다. 올 해의 여행지는 부르기만해도 아름답게 빛나는 그 곳, 오스트리아 빈으로 정했다. 8월의 태양과 함께 그 곳에서 한 주간 살아보련다, 란 마음으로.


여행을 앞두고 있는 때면 늘 솟아오르는 욕망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준비'. 그런데 그 준비란 게 사뭇 다르다는 것(또는 다르고 싶다는 것). 항공권과 호텔 그리고 음악회 티켓까지의 실질적인 준비를 마치고 진정한 의미의 '준비'의 첫 단계로 선택한 것은 바로 '헤세의 여행' 읽기.



헤세의 여행에 뛰어들어 본격적으로 만끽하고 감동하기도 전에 머리말에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가치 있는 여행이 되려면 어떻게 여행해야 할까, 란 물음에 답해준 듯한 헤세의 말 때문이다. 클리셰지만 짚고 넘어가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은 '수줍게 조용히 간직해왔던 내 생각과 어쩜 이리도 일치하냐는 것'이라는 것!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가는 즐거운 소풍, 어떤 음식점 정원에서의 유쾌한 저녁, 멋진 호수 위에서의 증기 기선 여행은 그 자체로 체험이 아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며,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극이 아니다."


덧붙인 역자의 의견도 가히 공감과 경탄에 한 몫을 했으니...


"모든 여행은 즐거운 것이 되고 좀 더 깊은 의미에서 하나의 체험이 되려면 확고하고 특정한 내용과 의미를 지녀야 한다. 지루한 나머지 또 김빠진 호기심 때문에 내적 본질에 진정한 관심을 느낄 수 없는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은 잘못되고 우스꽝스런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성껏 가꾸거나 희생의 제물이 되기도 하는 우정이나 사랑처럼, 신중하게 고르고 사서 읽는 책처럼 모든 유람여행이나 연구여행은 좋아하기, 배우려고 하기, 몰두하기를 의미해야 한다. 여행은 어떤 나라와 민족, 어떤 도시나 풍경을 여행자의 정신적 소유물로 만들려는 목적을 지녀야 한다. 여행자는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낯선 것에 귀 기울여야 하고, 낯선 것에 담긴 본질의 비밀을 끈기있게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깊은 밤, 이렇게 밑줄 긋기로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을 준비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