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len Dank, Berlin! #5
걷는 게 참 좋다.
유독 여행 중이라면 더 좋다.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 두 발을 디디고 열심히 걸어야 그 도시가 나를 받아들여주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면 걷는 게 좋은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좋다.
너무 cliché 이겠지마는, 늘 '도시산책자'를 꿈꾼다. 조건이 있다. 서울에서 하고싶은 건 아니라는 것.
뉴스룸 초대석에서 손석희 앵커를 머쓱케 했던 효리언니의 한마디에 과격히 공감하며 따라해본다.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겨울에 걸었던 파리와 암스테르담, 가을에 걸었던 스톡홀름과 코펜하겐을 추억한다.
그리고 늦가을에 추억을 에너지 삼고, 설렘을 벗 삼아, 베를린을 걷고 또 걸었다.
베를린을 찬찬히 거닐며 마주하는 풍경들에 마음문은 열리고 발걸음은 리드미컬해졌다.
10월 첫 주치곤 당황스럽게 추웠기에 이 도시에 잠시 삐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금세 약해졌던 이 내 마음.
여행자의 마음은 쉬이 지치지 않는다.
지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한들 어떠리. 베를린이었잖은가. The Berlin.
German들의 발음을 열심히 따라했다. 벌린, 벨린, 베알~린. 여행자는 시시때때로 참 할 게 많다.
무질서 속의 질서?!
자유함의 극치이자 상징인 그래피티. 베를린의 그래피티는 그저 베를린스럽다, 라고밖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로 삐죽이 모습을 드러내는, 그래서 더 반갑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됐던.
무언가 낯선 세계가 새롭게 펼쳐질 것만 같았던, 비밀스런 중정 입구.
꼭 들어가보아야 할 것만 같았던 묘한 끌림. 베를린 곳곳에 가득 차있는 비밀스런 매력.
극장 입구(우)는 마치 80년대 종로 극장가를 연상시키는 듯한 분위기. 이젠 오래된 것이 가장 현대적인 듯하다.
100년의 세월에 색채를 입은, 오래된 견고함과 팝아트적인 모던함이 제법 잘어우러져있는 곳.
8개의 건물이 'ㅁ'자 형태로 이어져 있어 8개의 중정이 만들어진 곳이다.
각 건물들의 1층은 암펠만 기념품 샵, 극장, 레스토랑, 카페, 패션 매장, 디자인샵 등으로 구성돼있다.
이른 아침 산책이었기에 고요하게 이곳 저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가까이 볼수록 사랑스러웠던 곳.
베를린 안의 또다른 베를린, 같은 곳이랄까. 색색의 타일이 흐르는 세월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것 같지 않은가.
유럽에선 건축물, 아니 그저 건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이 된다.
작품이 되고, 영감을 준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대로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 진정한 발견의 여정'이기에...
그렇다면, 이 곳을 바라보던 나의 새로운 눈 덕분이겠지.
WHO DESIGNS BERLIN?
그러게요, 궁금하군요. 매력적인 베를린은 누가 디자인하는가요?
베를린을 상징하는 키워드를 몇 개 뽑아보라면 그 중 단연 첫 번째는 '푸르름'이다.
정말이지 푸르르다. 공원도, 거리도, 중정도, 발코니도, 강변도...모든 곳이 푸르르다.
그들의 정신도 푸르를까. 마음에 깃든 여유에서 비롯된 걸까.
자주 짓궂어지는 날씨로 지친 영혼을 이 푸르름을 가꾸며 달래는 것일까.
베를린은 푸르르게 살아 숨쉰다.
고르키(Gorki)에 머무를 때에 호텔 직원이 추천해주었던 산책길이다. 간헐적으로 날이 좋을 때엔 운하(Landwehr Canal) 곁 길에 플리 마켓이 열리기도 하는 곳이라며 애정어린 제안을 건네던 그 선한 눈빛을 여전히 기억한다. 마침 향했던 날은 국경일이라 마켓은 열리지 않았지만 강렬한 태양이 뜨겁게 환영해주었다. 나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 나무들은 아름답기 그지 없고, 우아하게 물결을 가르던 백조 패밀리는 경치에 운치를 한껏 더해주었다.
조금 더 로컬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어준 산책.
운하 양 옆으로 주거지역이 형성돼 있어 마을 사람들의 오후 산책에 슬며시 동참할 수 있었다.
오후 러닝을 하는 사람들도 적잖았고, 인형같은 아기들이 동반된 즐거운 산책도 신나게 구경했다.
나무 한 번, 운하 한 번, 그리고 하늘 한 번. 힐끗 백조도 한 번.
잠시라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렇다할 목적도 없이, 그리고 목적지도 없이 걷는 건 최고의 휴식이나 다름없다.
두 발은 열일하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느슨해진다.
따스한 태양빛은 사라지지도 않고 갑자기 비가 내렸지만 우거진 숲 속에 있는 듯 어르신 나무들이 빗줄기를 막아주었다. 덕분에 산책은 계속될 수 있었다. 비냄새, 나무냄새, 흙냄새, 골고루 맡으며 한없이 걸었다.
도심 속 자연은 언제나 옳다.
내 맘대로 아지트 삼을 수 있잖은가. 그것도 언제나 반겨주는 듯한 피난처처럼.
Since 1990, 1.3 km, 105점의 그림.
세계에서 가장 긴, 그리고 가장 오래된 야외 갤러리,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로 부러 향했다.
분단이 '과거'인 독일이 부러웠다. 분단이 '현재'인 우리에게도 과연 과거가 되는 역사가 올까.
U-Bahn을 타고 Berlin Warschauer Straße역에서 내려 느릿느릿 베를린 장벽을 찾아갔다.
슈프레강은 바람도 햇살도 다 흡수해 역동적으로 흐르는 듯했다.
탁트인 전경은 내게 있는 많은 것을 비워주기도 하지만, 다시 많은 생각으로 나를 채워준다.
몇몇 작품들이 세월과 비로 인해 침식되기도 하고, 낙서로 훼손이 된 부분도 많아, 여전히 복원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하는데...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베를린이 겪어야 했던 많은 진통을 이 곳 갤러리가 대신해 짊어지고 가고 있는 걸까. 복원 작업도 보존도 모두 잘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바로 그 명물이자, 통일의 상징(?), '형제의 키스'
실제로 보니 현실감 가득 넘쳤던 작품. 괜히 머쓱해하며, 강렬한 동서 베를린의 '통일'로 해석하기로... ^^
슈프레 강을 따라 다양한 작품 보며 1.3km 걷기는 또 다른 색깔의 산책이었다.
강력한 소나기를 만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굳어버렸던 건 안비밀. 이곳에서 소나기를 만나면 달려가 커피로 몸 녹이기 좋은 곳은 지난 글에 소개한 Michelberger Hotel 카페. 기억하시길, 훗.
; 공원, 거리, 오브제, 그리고 베를린스러움
연출일까, 비바람 탓일까.
작품이 돼버린 공원 한 켠, 제법 멋진 장면.
우오, 이것은 과연 거리 전시일까...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이 곳은 어떤 곳이길래 마치 역사의 흔적을 남기듯 오브제가 우두커니 자리하고 있는 것인가.
모습이 참말 어여쁜 곳이길래 어떤 곳인가 보았더니 예상을 깨고, 병원이란다.
재밌는 소소한 발견.
귀여운 암펠만 미니.
뜻밖의 곳에서 마주친 트램 주차장. 마치 스토리가 시작되는 곳인 듯한 아우라. 아니, 끝나는 곳이려나.
Kreuzberg(크로이츠베르크) 산책 중 만난 벽화. 아니, 광고?!
사과는 아파트와 무슨 사연일까. 무척 리얼했다. H&M은 스웩.
; 슈프레강 그리고 버드나무는 산책 버디
박물관 섬(Museuminsel)에 있는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에서 즐겁고도 몽환적인 시간을 만끽하고선 '첫 학센 시식회'를 거하게 치르기 위해 힘차게도 걸었던 슈프레강변 버드나무길. 하케셔 막트(Hackescher markt)도 곁눈질해볼 수 있다. 20여분의 최고의 산책을 누릴 수 있는 강력 추천 도보 코스. 목적지가 레스토랑이었기에 그랬을지도. 음식은 내 두 발을 춤추게 한다.
신나는 발걸음과, 버드나무의 푸르름과, 햇살에 반짝이는 슈프레강 그리고 적당히 불어온 바람은 최고의 에피타이저였음에 과언이 아니다. 맥주와 학센이 배로 맛있었던 느낌적 느낌.
이 곳을 놓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니, 뿌듯했다.
나무들의 비호를 받으며 궁정을 거닐던 기분이었다랄까.
새삼 산책의 추억이 고마워지는 지금. 걷는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마음껏 누렸던 기분.
걷는다는 건 철학 산책과 다름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상가 아닌 산책자는 있어도, 산책자 아닌 사상가는 없다, 란 말도 있지 않은가.
베를린은 걷는 즐거움에 우리를 초대해주는 곳이었다. 걸어야 볼 수 있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낯선데 정겹고, 새로운데 친근하고, 아름다웠다.
별잔치 웬디 버전 베를린 구글맵.
아직도 자주 들여다 본다. 그리움을 달래는 최적의 놀이랄까.
발을 디딘 모든 순간 '베를린에서' 했던 생각들이 언젠간 꺼내쓸 수 있게 잘 저장돼있으리라며 우스운 기대도 걸어본다. 도시 산책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