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영화, 책 그리고 대화
매 년 휴가라는 명분으로 수개월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하는 여행은 정말이지 최고의 낙이다.
여행 자체가 가져다 주는 희열과 재미가 더 크지마는 기다리는 과정 동안의 모든 준비 작업은 또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자 기쁨이랄까.
어느덧 여드레를 앞두게 된 '트립 투 비엔나'. 설렘도 기대도 한가득이지만 이런 저런 장면과 배경을 미리 머릿속에서 그려보는 '상상'이야 말로 찰지게 재미난 준비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습관을 좇아 여행을 앞두고 제일 먼저 하게 되는 것은 서점으로 달려가 그 도시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을 열심히 찾고, 엄선해 손 안에 줄곧 두는 것이다. 이미 그 곳을 여행한 누군가의 발자취가 깃든 스토리를 지도 삼아 나만의 여행을 몇 번이고 계속해서 구성해보는 즐거움에 금세 흠뻑 빠져들게 된다. 상상해보았던 장면을 누군가의 스토리에서 만나게 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이런 저런 상상을 해두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설렘이 증폭된다. 나만이 써내려갈 수 있을 듯한 감상과 이야기도 '미리' 끄적여보기도 하는데, 두 발이 어느 곳엔가 닿게 될 때 그 끄적임은 감탄과 문장으로 완성된다. 빈 역사의 여러 면모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책은 <세기말 빈>, 빈이 곧 그요, 그가 곧 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클림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면밀히 만나볼 수 있었던 책으로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 하나인 <클림트: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빈의 문화와 예술을 온 몸과 마음으로 만끽할 수 있도록 풍요롭게 안내해주는 풍월당 박종호 대표의 여행 에세이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답다>까지 충만하기 그지 없던 책으로 하는 빈 여행의 여정을 마쳤다. 한층 더 준비된 기분이랄까.
언젠가의 빈 여행을 갈망하며 몇 해 전부터 몇 주 전에 이르기까지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우먼 인 골드>, <비포 선라이즈>를 보았다. 클림트와 쉴레의 첫 만남 그리고 그들을 통해 바라 본 빈 근대 미술사 및 혁명과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던 분리파의 열정과 다이나믹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빈이라는 도시에 대한 힌트를 얻은 기분. 저 골목 어귀를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란 심정으로 영화 배경 장면 장면들을 뚫어져라 보며 설렘을 꿀꺽 삼켰다. 세기의 여행지 커플 제시와 셀린느의 여정은 통째로 외워버린 듯하다. 이번까지 합하면 대략 예닐곱번 째 보는 거니 당연지사다. 그들이 걸었던 거리를 거닐고, 트램에 올라타 링 슈트라세를 돌며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하며 빈을 만끽하고, 레코드샵에 찾아가 20년대 재즈 LP판을 산 다음, 어스름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오스트리아 와인 한 잔 마신다면 그 날은 완벽하겠거니 싶다. 영화가 여행이 되고, 여행이 영화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한 도시를 일주일간 여행할 때면 그 도시의 역사와 그 역사에서 비롯된 문화, 예술에 호기심과 애정이 솟아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와 더불어 늘 궁금한 것은 젊은 세대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또 다른 '문화'다. 어떻게 어디서 들여다볼 수 있을지, 젊은 비에니즈들은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심취하고, 그들이 그리는 빈의 지금과 미래는 어떤지 꽤 많이 궁금하다. 날마다 새롭게 구글링을 하고, 빈에 다녀온 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계획은 날로 날로 세밀해지고, 흥미로워지고, 그리고 역동적이게도 변경되기도 한다. 거의 대부분의 순간 순간 마다 진실되고 싶고 충만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 욕심이 피어나는 게 여행이리라. 별 것 아닌 것에 다시금 감동할 줄 알게 되는 게 여행이겠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찬찬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는 게 여행이겠고. 발걸음도 생각도 표정도 그리고 말에서도 힘을 툭 빼고 느림보가 되어보는 특권을 누려보는 호사도 여행이리니. 아무 것도 안하는 듯 무심하게 그리고 여유가 만만하게...그렇지만 두 눈과 귀를 그리고 마음문을 활짝 열어 다른 세상의 여러가지 것들을 품고 흡수하고 즐기고 오게 되길 기대해본다.
함께 여행할 연인에게, 그리고 고맙게도 내 여행을 기대해주는 이들에게 내가 미리 그려본 나만의 여행 그림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있다. 어떤 완성이 될지, 어떤 스토리가 펼쳐질지, 어떤 뜻밖의 인연을 맞닥뜨리게 될지, 어떤 생경한 모습을 마주하게 될지...모든 낯선 것들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남은 날들을 보내련다.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가짐, 이제 제대로 카운트다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