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세계

마음 깊이의 어딘가에서

by 웬디






시선의 끝은 바깥에 닿았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느낄 수 있을 지도몰라. 라는 무언가의 감각만이 남아있었다.
내가ㅡ 지금 있는 끝과 끝 너머 맞닿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연결됨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는 무언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람들의 겹쳐지는 목소리, 높고 낮은 음역대,

시끄럽고 차가운 무엇 또는 따뜻하거나 미지근한 어떤 것들.


이들은 어느 순간 웅웅대며

하나의 부드러운 화음을 나에게 만들어내고는 하였다.

그러한 무형의 공간에서 나는 때로는 편안함을 느끼고는 했다.


내가 - 어느 순간은 다른 나라는 사람이

문득 하나의 어우러지는 풍경이 된 것 만 같아서.

나는 다양함이 교차되는 순간들을

눈에 가득히 담고는 하였다.


또는 그저 눈을 감았다.


아, 그 순간이 눈부셔서 그럴지도 몰랐다.


닮을 수 없는 것들이 닮는 것은

나에게 소중한 감각을 그저 느끼고 싶게만 만들었다.

나는 그 속에서 온전히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무엇을 그저 그린다는 것은,

꽤나 어렵고 지루한 일일 수도 있었다.

이뤄지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과정들은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기는 하였다.


내가 그리는 어떤 것은 단지 막연한 이상일 수도 또는 -

당장 눈앞의 현실일 수도 있었다.


그런 미묘한 교차점을 찾아나가며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가는 여정은

마치 둥둥떠서 바다에 몸을 맡기는 느낌을 주고는 했다.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걸까. 또는, 바라고 있는 걸까.










어떠한 명확성을 찾고자 하는 것은 때로는 틀린 정답이나 힌트를 주기도 한다.
마치, 그렇게 쉽게 찾으려고 하는 것에서는 오히려 알 수 없어.- 라고
골리듯이 장난을 치는 것처럼.




문득 삶에 대한 야속함이 느껴졌지만,

이 또한 그저 훌훌 털어내고자 할 뿐이었다.


고개와 어깨를 으쓱하였다.

바라보는 광경들은 시간이 지나면 바뀌고 색이 변해가지만

집에 가기 전까지는 하나의 예쁜 모습들로 남아있을 것이었다.


그 순간들을 가득 담아가는 일들은,

나에게 있어서 꽤나 오래된 취미와 같은 일들이었다.


괜히- 빛나는 조그만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두는 어린아이처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왜 그런것을 신경써?'


나는 중요하다는 기준이 조금 남다른 아이였다.

내가 담는 세계는 조금은 잔인했고 조금은 몽환적이었고,

대체로 무언가의 색깔들을 만들어냈다.


어릴적의 추억은 나에게 기억보다는 감각과 이미지,

온도였다.






추상적인 형태는 사실 가장 정확한 형태의 기억일지도 몰랐다.




머리보다는 마음과 몸이 알고있었다.

울렁거리는 어떠한 순간들,

젤리같기도 연기같기도한 미묘한 삶의 순간들.

나를 둘러싼 모든 풍경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매일의 순간들 속에서 -

나는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매일같이 고민하고는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걸 느끼지 않는 걸까?'


때로는, 바닥으로 끝없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고.

때로는 그저 붕 떠서,

웅웅 대는 듯한 고양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나는 어떤 하나를 느끼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유형의 아이였다.


딱히 말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사실 오히려 말은 때로 혼란을 주었다.


내가 느끼는 마음의 씨앗은 조금 다른 색깔과 온도였는데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좀 더 다르게 행동하고는 했다.

싫거나, 슬프거나, 힘들거나 - 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때때로 나를 아프게했다.

그렇지만 나에게 웃어주는 사람의 얼굴은

나에게 뿌리깊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픔이라는 감정은,
쉽게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인가 보다.




아픔은 나에게 항상

풀어야할 숙제같은 것이었다.


사실 이게 감정인지도 알 수 없었다.

슬픔은, 조금 더 무거워지면 그저 아프기만 할 뿐이었다.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담고 싶지 않은데도 담아야만 하는 순간이 올 때 특히 그러했다.

어느 순간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고통만을 안겨주었다.

많은 부분들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별로 축복은 아니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아픔은 쉽게 전이되었다. 때로는 궁금하게 느껴졌다.


왜 다들 힘들어야 할까?


다들 행복하게 살 수 는 없는 걸까?


-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일까.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어느덧 식어 쿰쿰하게 쓴 맛이 올라오는 색깔이 되었다.
아픔을 그대로 눈에 담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세상을 선명하게 보는 것은 힘이 많이 들었다.
약간은 흐리게 보는 것이 나를 지키기에 가장 좋았다.




고개를 슬쩍 옆으로 눕혔다.

머리가 길게 늘어 눈 앞에 차양이 졌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비스듬한 각도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웅성웅성

다양한 색깔을 내뿜고 있었다.

가운데나 사선 위를 보는 것들은

별로 나랑 맞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항상 의문이기는 했다.

남들과 똑같은 것이 싫은 철부지의 마음이

남아있는지도 몰랐다.


오기일까?

글쎄..


그저 느끼거나 보일 뿐이었다.

대개, 어둠 속에 숨겨진 무엇들은

나에게 두근거리는 반짝임을 가지고 있는 것들 이었다.


그런 것들이 중요했다.

나는 눈이 좋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은,

주워 담아야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