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위도를 벗어나 그린 회복의 지도

보성에서 만난 차 한잔의 여운

by 웬디

보성 차꽃축제 사진전 출품작



차를 통해 이어진 보성과의 만남은,

수개월이 지나 서울에 있는 저에게 여전히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지난 여름, 보성 청년마을 “숙박비는 재능으로 받겠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어머님들께 음악 명상과 컬러 테라피로 마음을 꺼내는 시간을 드렸습니다. 서울에서 진행할 땐 주로 또래 청년들을 만났지만, 이번엔 저에게도 새로운 배움이 많았습니다.


“못 그리니까 하기 싫다” 하시던 어머님께

“이 위치에 그려볼까요?” 하며 대신 손이 되어드리니,

노란색은 밝아서 좋고, 빨간색은 살아 있는 듯해서 좋다며 꽃과 뿌리까지 그려 넣으셨어요. 어머님께서 묻어두었던 감정의 씨앗이 싹트는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또 다른 어머님은 남색이 풀물이 덜 들어 입기 무난하다 하시며, 까마귀 다리를 남색으로 칠하셨습니다. 좋아하는 색은 빨간색이라고 하시더니, 까마귀 몸에도 빨간 물이 묻어 있었어요.


아픈 몸 이야기를 하실 땐 저도 모르게 손을 주물러드리며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 이 짧은 시간 속 편안함을 드릴 수 있을까?”


바쁜 노동 속에 묻어두셨던 마음을 열도록 돕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함께 마음을 나누며 회복의 지도를 그려나갔습니다.


마을회관이 왜 필요한지 처음으로 깊이 와 닿았습니다. 집에만 있다면 서로 얼굴을 보고 챙겨주며 정담을 나눌 기회가 없을 겁니다. 아프신 몸, 새벽 차 밭 일이 끝나면 집에서 누워만 계실테니까요.


노동의 위도를 벗어나, 청년과 어르신이 오프라인에서 교류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마음으로, 머리로 깨달았습니다.


청년과 지역사회 어르신이 마을 단위에서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 저에게는 ESG이고, 도시재생인 것 같습니다. 같이 그림을 그리며, 저에게도 보성의 풀물이 물든듯 합니다. :)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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