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회의원의 발언을 되짚으며
예전, 이런 글을 쓴 적 있습니다.
“예술은 우리의 감정을 채우지만 동시에 우리의 윤리와 책임을 시험한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처럼, 창작자의 윤리적 결함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그 예술을 계속 사랑해도 괜찮은가?”
이 질문은 단지 예술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정치, 특히 공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의 발언은
직접적인 정치적 투사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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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준석 국회의원의 발언들은
그저 자극적인 정치 언어로 소비되기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많은 담론은 이를 ‘논쟁’이나 ‘전략’으로만 해석하고,
그 속에 깃든 구조적 혐오, 정서적 폭력, 사회적 차별의 내면화를 간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법적인 문제가 없다면, 그저 웃으며 소비해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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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과 소비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정치는 국민 정서의 지형 위에서 움직입니다.
우리는 매일 감정을 맞대며 살아가고,
그 감정은 곧 사회의 분위기와 기준을 형성합니다.
하지만 그 정서가
누군가의 존재를 지우고,
공적 윤리를 무너뜨리고 있다면
그건 더 이상 ‘의견’이 아니라 ‘폭력’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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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건 윤리적 경계선에 대한 감각입니다.
표현은 자유롭되, 그 결과는 책임져야 합니다.
특히 공적 위치에 있는 이들의 말은
사회의 정서 기준을 설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들을 소비하고 유통하는 우리 역시
그 기준의 일부가 됩니다.
경계에 대한 자각 없이 말이 반복될 때,
사회의 ‘위험 수용 한계치’는 인지되지 않은 채 계속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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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무엇에 웃고,
무엇을 지지하며,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