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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웬디스 레드 Apr 13. 2022

썸남의 모바일 청첩장

내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 그 남자에게


 "나 결혼해. 밥 한번 먹자."

 드디어 올 게 오고야 말았다. 코로나로 인해 약 2~3년간 억눌려있던 웨딩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2022년 봄. 아무리 봐도 한 명도 결혼을 못할 것 같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여 조금씩 결혼 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다. 다들 짝을 찾기는커녕 제 한 몸 건사를 못할 것 같은 이들이었는데 다들 이렇게 솔로 대열에서 떠나가다니 여러모로 충격과 시원섭섭한 마음이 마구 교차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충격적 부분은 그도 결혼한다는 소식. 그는 공식적으로는 친구, 비공식적으로는 구 썸남이었다. 그런 그와는 대학 졸업 후에 조금씩 연락이 끊겨져 갔고, 오늘 카톡이 울린 건 연락이 완전히 끊긴 이후부터로도 약 3년이나 지나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뜬금없이 결혼 소식을 전해오다니.


 남들이 보면 사실 그와는 딱히 별 관계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인은 절대로 아니었고, 딱히 진한 스킨십이 있던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와는 딱 그냥 친구에서부터 썸 사이 그 어딘가 걸쳐져 있는 관계였다. 서로 호감은 있었지만, 군대나 교환학생이나, 무언가 상황과 환경이 많이 바뀌던 20대 초중반이었기에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고 그저 애매한 상태로, 서로에게 여지만 남긴 애매한 를 유지며 지냈다. 심지어 서로 각자의 애인을 만나 서로의 연애를 응원하는 이상한  유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그 무언가 계륵 같은 존재로 남겨놨달까. 학창 시절 잘되지 못한 것을 단순 타이밍의 문제로 치부하고, 그 먼 미래에 언젠가 나중에 한번 사귈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가능성은 언제나 열어놓은 채였다. 그런데 이렇게 치사하게 그가 먼저 떠나버릴 줄이야.

 그가 짧은 안부인사를 건넨 후, 카카오톡으로 꽤나 근사해 보이는 모바일 청첩장을 건넸다. 묘한 마음으로 링크를 꾹 눌러보니 상당히 비싼 스튜디오의 브랜드 로고가 사진 하단에 떡하니 찍혀있었고, 신랑과 신부는 지불한 돈의 가치만큼 아주 뽀샤시하고 아름다웠다. 특히나 자신과 제대로 맺어지지 못했던 남자가 실물과는 영 딴판이지만, 상당히 멋지게  나온 모습 무언가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의 원판을 알기 때문에 포토샵이 잔뜩 가미되었을 거란 합리적인 의심 들었지만, 이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무언가 지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달까. 심지어 주르륵 스크롤을 내리다 마지막으로 눈길이 닿은 곳은 대망의 결혼식 장소였는데, 놀랍게도 매우 낯익은 장소가 그곳에 있었다. 호캉스를 가기에도 매우 겁나는 가격을 자랑하는 서울 5성급의 최고급 호텔이었다. 아차. 이때부터는 정말 질투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시점에 이르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연예인도 결혼했던 이 호텔에서 결혼식을?


 아니 이렇게나 좋은 장소에서 결혼을 하다니, 그의 재력은 확실히 자신이 알고 있던 것, 그 이상이었던 것이 분명다. 졸업 후 어느 직장에 다니는 지도 사실 알고 있었는데, 그 좋은 회사를 다니긴 하나 근본적으로는 회사원이기에, 아무래도 시댁의 재정적 지원이 빵빵했을 거라는 추측이 들었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훌륭한 금전적 조건의 이 남자가, 선택한 신부는 누구인 궁금해졌. 그녀는 확실히 사진 속에서 아름답고 고운 신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또 객관적으로 희대의 절세 미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여자분의 매력은 무엇이기에, 그가 자신이 아닌 바로 이 여자분 선택 이유도 궁금다. 왜 나는 안되고 이 여자였던 거니? 게다가 이렇게 좋은 식장에서 결혼할 재력이 있으면서도, 연락한 지 3년이나 된 구 썸녀에게 축의금을 뜯어가려는 그 고약한 심보도 매우 괘씸하게 느껴졌다.

  분노는, 근본적으로 그와 연락이 끊겼었지만 그와 마음의 끈만은 끊기지 않았었다고 생각했, 자신의 다소 미숙한 판단기인했다. 아직 부족하고 철없던 쪼꼬미 시절. 친구이 썸이든 뭐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밀한 상대가 있어서 버텨낼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와 그 시기를 함께 견뎌냈기에, 비록 지금처럼 몸은 멀리 떨어져 있 어찌 되었든 서로를 완전히 잊지 않았다고 멋대로 생각한 것이다.


 체적으로 하자면, 그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구직 활동 고통받던 취업준비생 시절이었다. 특히 딱 이맘때 꽃 피는 시기였지만 또 아직은 또 저녁에는 쌀쌀한 날 함께 보냈었. 그와 둘이서 밤에 무작정 한강을 걸으며, 그즈음에 봤던 면접 이야기를 나누 것이 하루의 주 일과였다. 쌀쌀한 날씨에 라면 맥주도 곁들이며, 채용 불합격 소식 그 때문에 불안하고 막막한 진로에 대해서 두리를 어놓고는 했었다.


 리고 그 경험은 결국에 삶을 안정시켜주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 현재 회사원의 삶이 딱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벌이를 하게 해 준 데에는 그의 역할이 팔 할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친밀한 관계에서 주는 배려 이해심으로, 멘탈 안정과 관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로 인해 마음이 보다 진정되어 면접을 그럭저럭 망치지 않고 볼 수 있었고, 끊임없는 불합격 속에서도 계속 일어날 수 있었. 래서 결국에 취업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다. 그리고 아 그도 마찬가지 마음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랬었기에 그때부터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그가 연락이 끊긴 자신을 잊지 않고 어찌 되었든 인생의 소중한 소식을 전해준 게 아니었을지. 그리고 여기까지 문뜩 생각이 미치게 되, 이윽고 마음속에 중대한 결심 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물론 아니꼬웠지만, 성숙한  성인답게 그의 소식을 어디 한번 진심으로 축하해주어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 임마 축하한다. 행복해 보이네."

  론 약간은 배가 아픈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과거의 썸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도와준 친구이자, 인간으로서 그를 이해해보기로 했다. 그와 함께 했던 짧은 시간 비록 돈이 없어 구질구질했지만 정신적으로 찬란한 시절이었다. 특히 자신을 많이 이해해 주었던 그와의 관계가 있었기에 지금의 조금 더 성장한 자신이 있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그래서 그 시기를 조금이나마 함께 위로하며 빛내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기로 했다. 먼저 연락해줘서 고맙고 가서 싸우지 말고 잘 살기를. 아름다운 신랑과 신부로서 행복하게 미래를 그려나가기를. 바일 청첩장 속 모습이 참 예쁘고 좋아 보인다는 축복과 함께.


그치만 가려면 내가 먼저 가고 싶긴 했었다. 이 나쁜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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