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NEED YOUR VOICE
기념일을 ‘기념’하는 행위는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밸런타인데이만 봐도 그렇다. 단순히 초콜릿을 주고받는 실천만으로 많은 소비를 부추기는 마케팅들이 성행되어 왔다. 성공적인 소비 구조를 구축한 밸런타인데이를 모방하여 기업들은 터무니없는 취지를 갖다 붙이며 14일마다 기념일들을 만들었다. 화이트데이, 로즈데이, 블랙데이 등 예외로 빼빼로데이까지. 이런 종류의 기념일은 여러 매체들의 화려한 마케팅으로 비효율적인 소비를 부추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념일이 계속되는 이유는 매년 그날을 챙기는 소비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번지르르한 포장지로 가려진 소비를 쫓는 기념일을 지양하고, 건강한 기념일을 기억하고 실현해야 한다.
매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여성인권운동가들에 의해 3.8 여성의 날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기리기 시작한 것은 1985년이며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것은 불과 3년 전 2018년이다. 1900년대 초부터 여성 해방 운동이 전개된 미국, 유럽권이나 1975년 공식적으로 세계 여성의 날을 제정한 UN 기구에 비해서도 상당히 느리게 결정된 셈이다.
세계 여성의 날(3.8)과 더불어 여권통문의 날(9.1)도 주목해야 한다. 1908년 세계 여성의 날보다 앞서 1898년 9월 1일 대한민국에는 여권통문이 선언된다. 여권통문은 여성의 근대적 권리인 교육권, 직업권 그리고 참정권을 주장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이다. 선언 이후 당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단체와 여학교를 설립한다. 또한 유교적 가부장제 속에 갇힌 여성들이 다양한 직업군을 형성하고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었다. 대한민국 고유의 페미니즘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권통문의 날도 100년이 넘게 흘러 작년 10월이 돼서야 법정기념일이 됐다. 아직 공식적으로 맞이한 적이 없는 셈이다. 우리는 여성의 날도 여권통문의 날도 놓칠 수 없다. 여성의 날의 굳은 행보는 여권통문의 날이 자리 잡는 발판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이어나가야 할까. 몇몇 기업들은 여성의 날 행사로 화장품을 세일을 하거나 ‘아내에게 장미꽃을 선물하세요.’ 같은 카피를 내세운다. 1900년대 초 여성운동가들에게 장미꽃이란 참정권을 뜻했다. 하지만 현시대 여성인권 신장에 장미꽃과 화장품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러한 상술에 동조한다면 곤란하다. 그들의 마케팅과 선물은 남성이 원하는 코르셋과 사회적 여성성으로 우리를 치장하는 행위이다. 여성의 날의 주체는 당연히 여성이 되어야 하며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궁극적인 의도에 맞게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어떠한 방식도 주제도 상관없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의견들을 주저하고 묵살당했다.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여태 사회적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던 남성들 앞에 무력화되었다. (“일부” 남성들은 궤변이라도 당당하게 말하지 않는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이야기하고 개인의 획일화와 일반화를 거부해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계속해서 뱉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더 나아갈 수 없다.
여성은 어느 곳에나 있다.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사회적 혐오와 유리천장들이 형태를 감추고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이자 당신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다.
“WE NEED YOUR VOICE”는 이러한 여성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의 삶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직시하고자 한다. 시사, 예술, 인물 등 우리 삶을 차지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는 여성이 목도한 사회적 차별과 묵살당한 언어를 복기하고자 한다. 2020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첫 장을 연다. 앞으로 쓰일 글들이 여성들의 삶이 지속되는 데에 있어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 우리는 세대를 막론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대할 수 있다. 현재와 미래에 단 한 명의 여성 동료도 잃지 않도록. We need your vo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