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감자딸의 그림을 사기로 했다
감자는 그림쟁이
감자 따님은 올해 중2
그림과 친하다.
초등감자 때부터인가. 아니다.
그보다 어렸을 적부터 손이 야무진 감자였다.
어린이집에서도 또래 아기 감자들이 서툰 포크질을 할 때 아이용 젓가락질을 척척 해내는 걸 당시 선생님께서는 지나친 배려심에 우리 감자에게 젓가락 대신 포크를 다시 쥐어주었다.
앞서 가지 말라고.
어린 감자에게 전우애라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가위질도 척척
선 넘지 않는 색칠도 착착
초등감자 때는 그림을 곧잘 그리기 시작했다.
미술선생님께서 감자 칭찬을 해주시기 시작했고 감자도 점점 그림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약간의 인내심도 도움이 되었을까 싶다.
아이 때부터 그 넘의 창의성을 위해서 조금은 희생할 줄 아는 애미였다.
바닥에 매직 낙서를 해도 벽지에 크레파스 떡칠 낙서를 해도
내 얼굴은 이미 수만 가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말은 참자.
조용히 염불을 외운다. 내가 불자였던가. 나도 모르게 마음속 사리를 만든다.
모든 방 벽지를 도화지로 내어줘도 이미 시큰둥해진 낙서쟁이에게
아이패드를 선물했다.
난 한국형 애미다.
나도 모르게 감자의 재능을 살려주고 싶다는 쓸데없는 욕망이 보글댄다. 참자.
감자는 그냥 감자로 두었을 때 가장 감자답다.
미술학원도 권유해서 잠시 끄적 다녀봤지만 역시 감자는 혼자 막그림이 좋단다.
그렇게 혼자 동영상과 책과 스스로의 사색으로 그림을 배워나간 감자
어설픈 애미의 글에 그림을 그려준다.
이렇게 글을 쓰는 애미도 처음이고
공개적인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감자도 처음이다.
우리의 콜라보는 어설픈 시작이지만 즐거운 과정이다.
그렇게 감자 딸의 그림을 사기 시작했다.
그림당 100원만 달라는 감자 따님
마음이 동실동실 감자 같다.
5년을 함께 그림 그렸던 아이패드가 어제 갑자기 사망했다.
혹사당한 시절이 야속해서인가 인사 한마디 없이 사망했다.
100원짜리 그림은 당분간 바로 볼 수는 없을 것도 같다.
몸값이 훌쩍 뛰어오른 새 아이패드님을 모셔오자니 가슴이 아프다.
감자 용돈에서 모셔 올 예정이니 감자 가슴이 아프다.
내 가슴이 아니라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