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여행 - 1 -
여행은 나에게 쉼을 선물한다.
제대로 짜인 그물처럼 완벽하게 계획된 여행이거나,
엉망으로 매듭진 낚싯줄처럼 엉성한 여행일지라도 나는 여행지에서 쉼을 느끼며 평소의 삶을 잊곤 한다.
경상북도 행정구역으로서의 마지막 군위 여행은 사실 여행이 아닌 탐방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짧은 일정이었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 덕분인지 내 마음에 설레는 동요(動搖)가 일어났다.
그러나 반나절이라는 짧은 여행에서도 쉼을 느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화본역'과 '혜원의 집'을 거쳐, 대구로 오는 길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차츰 지겹게 느껴지며, 이건 여행이 아닌 탐방이기 때문에 쉴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해 갈 때 즈음, 도로 한복판에 수상한 모양의 건물이 나타났다.
붉은색의 동그란 모양을 지닌 한 쌍의 건물이었는데,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진 것처럼 빛바랜 모습이 이채로웠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빛바랜 것이 아니라 대추의 모양과 색을 표현한 것이었다. 대추 관련 전시관인가 싶어 안으로 들어갔는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수상한 건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대추 모양의 화장실이었다.
터지는 웃음을 뒤로하고 화장실에서 나와 이번에는 하늘 높게 솟아 있는 구조물로 향했다. 커다란 그릇에 대추들이 어슷하게 쌓여있는 구조물이었는데, 그 길이가 족히 20m 정도는 되어 보였다. 하늘 무서운지 모르는 건방진 대추들 옆에 이 수상한 장소의 정체를 알리는 글이 적혀있었다.
‘어슬렁 대추정원’
화본역에 비치된 군위군 관광안내지도를 살펴보니 ‘어슬렁 대추정원’은 전국 최초로 대추를 형상화한 공원이었다. 또한, 군위군은 경상북도 경산시와 충청북도 보은군 다음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은 대추 생산량을 자랑한다고 적혀있었다.
펼쳐놓은 관광안내지도를 주머니에 욱여넣는 순간, 대추 향이 코끝을 간질이며 내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추나무가 조경수로 심어져 있었다. 공원 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대추 향에 취해, 나는 어느새 피곤함을 잊어버린 채 어슬렁거리며 공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추 혹은 대추나무를 형상화한 다양한 조형물과 행운의 대추나무 등으로 조성된 공원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가꾸어져 있어서 놀라웠다. 이렇게 재미있는 공간이 어떻게 도로 한복판에 섬처럼 덩그러니 조성되어 있는지 의아했다.
정자에 걸터앉아 멍하니 대추 모양의 화장실을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방문하는 이가 많았다. 그렇다 이곳은 휴식처로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짜 대추공원이 이러한 의도로 조성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이곳의 존재 이유가 쉼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여행자에게 급한 볼일을 해결해 주고,
쉼과 여유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곳,
반나절이라는 짧은 일정에서도 여행이 주는 쉼을 느낄 수 있었던 장소였다.
여행은 나에게 쉼을 선물한다.
그 여행이 세계 일주와 같은 장기간의 일정이거나,
교외 나들이 같은 짧은 일정일지라도 나는 모든 여행이 주는 쉼을 이제 느낄 수가 있다.
공원을 나와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피로가 아닌 쉼이 묻어 있었다.
- 2023년 군위를 방문했던 어느날에 처루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