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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리치 Apr 30. 2023

육아휴직을 후회한다.

면도하는 전업주부(육아휴직) #4

캐리어가 마룻바닥에 열려 있고

민진은 몇 번이고 그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짐을 싸고 있다.


-보조배터리는 챙겼어?


영양가 없는 훈수를 두며 체리 옆에서

앉아 시선은 민진을 따라간다.

체리도 가끔씩 캐리어 옆에서 엄마의 물건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옷을 사야 하나?

-옷 필요하면 몇 개 사서 가..


한가한 토요일 오후,

하지만 내일부터 민진이가 오지 않는

2주일을 준비하고 있다.


'민진의 출장'


진수는 이성적으로는 출장을 가라고 했지만

내심 두렵다. 육아휴직으로 전업주부가 된 지 3개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익숙해졌지만

내일부터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펼쳐짐을 예상한다.

민진이가 7시에 돌아온다는 기대감이

앞으로 2주 동안은 없을 테니

이성과 감성의 간극이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었다.


-체리야, 엄마가 멀리 가서 14일 동안 보지 못해

한번 안아주라.

-힝,,,


체리는 어리둥절했고,

민진은 감정이 눈을 타고 물이 되어 떨어진다.


-그만 울어, 2주인데..

-그래도,,,.. 힝..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등바등 거리는

체리에게 망고주스를 하나 쥐어주고,

빨대로 망고주스를 휘젓고 있는 체리를

무릎에 앉은 채.. 시간을 채우고 있다.


-차 왔어..

-갔다 올게.. 미국에서 영상통화 자주 할게.

-그래, 어서 타라.


민진이가 오지 않는 첫날

헛헛한 진수였지만,

체리와의 일상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헛헛함과 육아에 대한 부담감이

머리에서 입으로 나오기까지는

민진이가 아직 비행기에 있을 시간이었다.


-체리야. 자야지!!!

나보고 어떡하라고... 12시가 넘었어!!

-아아앙~

-나보고 어떡하라고!!


불을 끄고 수면등으로 바꾼 지

2시간이 흘렀을까..

잠을 자지 않으려는 체리와

진수가 대립각이다.


-아빠 피곤해!! 그럼 혼자서 놀아!!


진수는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체리가 밉다.


'쾅!!'


작은 불을 켜둔 거실에 체리를 

놓아둔 채 혼자 안방문을 닫아버렸다.


'타 다다닥'


체리의 작은 맨발이 끈적거리는

매트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짧게 들리면서.. 문이 열린다.


진수는 체리가 문을 열었지만

애써 외면한다.


-아아아앙~~


체리가 왜 우는지,

진수는 왜 내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민진이에게 미국출장을 왜 가라고 했는지

자신을 원망하면서

그 원망을 체리에게 풀고 있다.


-아빠 잠 온다고!!

-아아아앙~~


민진이가 다시 못 올 것처럼

진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찡그려서인지 눈물인지

찌그러져 보이는 체리도

입을 벌리고 있다.


-휴우 1시 반이네..


낮잠을 자버려서인지,

엄마가 안 와서 그런지,

그렇게 진수와 체리는

201동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깨어있는

사람처럼...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쉬이, 쉬이~


완전히 잠들 때까지

진수는 체리를 안고

거실을 서성거린다.


체리의 눈썹에 묻어있는 물기를

진수는 빤히 보면서,

'잘하고 있는 건가'

'조금만 참을걸..'


진수는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졌지만,

다시 삼켰다.

지금은 빨리 체리를 재워야 하기에.


-쉬이, 쉬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백색소음을 진수는 입으로 다시 내보낸다.


분주함이 없는

아침이 찾아왔다.


체리는 안방에서 자고 있고,

어제 일이 진수의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


'타 다다다 다다'


-체리야, 잘 잤어..


진수는 지금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오늘도 행복한 하루이고,

아빠는 여전히 체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뿐이다.

체리도 어제의 일을 기억할까?

해맑게 웃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체리를 보니

또 다짐한다.


다짐하고 다짐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몸은 체리의 유산균을 가위로 자르고 있다.

몸과 생각이 따로 놀아대는

진수는 스스로에게 의심을 했지만,

어쨌든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고,

그리 다르지 않은 하루가 지속될 거라 생각했다.


-체리야, 물 하고 유산균 먹자.


장난감을 손에 지고,,

동그란 눈을 진수에게 맞춰주는 체리를 보고

진수는 한 껏 팔을 벌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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