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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리치 Apr 29. 2023

너를 위한 일? 나를 위한 일!

면도하는 전업주부(육아휴직) #3


50 단어 정도 말할 수 있을까?

체리의 몇 개 안 되는 단어를

진수는 말이 빠르다고 생각하면서

딸바보인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체리가 진수를 빤히 쳐다보고

진수도 체리를 쳐다본다.


-엄마는 어디 갔어?

왜 아빠가 지금 이 시간에..


진수는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체리 옷을 입힌다.

6월이지만 그래도 추울지 모르니깐

무조건 따뜻하게..

진수도, 민진이도,,

초보 아빠 엄마는 왜 그리도 온도에

집착하는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진수는 조금 두껍게 입히고,

마지막으로 손수건을 체리의

목에 두른다.


-완벽한데....


물통과 뻥튀기를 챙기고

유모차 앞에 서있다.

그럴듯한 고가의 유모차가 있지만,

늘 나갈 때는 가벼운 간이 유모차..


-이거 왜 샀지? 쓰지도 않는데.. 아휴~


진수는 당근 마켓이 떠올랐지만,

언젠가 필요하겠지라고 생각하고

휙휙 손을 내젓는다.


진수는 출근할 때 사용했던 투미 가방에

기저귀, 체리 옷, 물병, 삶은 고구마, 물티슈

손수건을 넣는다.


-완벽해!


체리에게 제법 커다란 뻥튀기를 쥐여주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팔꿈치로 툭 친다.


'띵~ 1층입니다.'


-자, 어디를 가볼까?


진짜 어디 가지? 나오자마자 헤맨다.

체리는 멜로디가 나오는 책의 버튼을 누르면서

체리 입에서 기분 좋은 멜로디가 나온다.


-출발!!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물가가 있고 모래 놀이터가 있는 공원에서

2시간, 낮잠 1~2시간, 씻기고 핑크퐁

3일 동안 체리와의 시간이었다.

3일이 지나갔는데, 지겹다.

그저 체리를 따라다니고,, 바닥에 돌을 주워다 주면

받아주고, 같이 주저앉아 모래놀이하고..

3일 지났는데, 진수가 하는 말은 의미없이

허공에 떠다닌다. 그저 말소리의 높낮이만이

체리에게 전해진다.


-아, 이제 목요일..


진수는 혼잣말이 점점 늘어간다.


-오늘은 다른 데라고 가봐야겠어..


민진이가 출근하고, 체리가 깨어나고

유산균을 먹이고, 이유식을 먹이고,

과일을 깎아주고, 책을 읽히고,

다른 날과 같았던 오늘..

진수는 여행을 생각한다.

당일치기..


-체리를 위함이 아니라 나를 위함이야.


11시, 딱 좋다.

체리를 차 뒷좌석에 있는 카시트에 앉히고

백미러는 차 뒤창문이 아니라 체리에게 향하게

조정한다.

체리에게 뻥튀기 하나를 손에 쥐여주고,

네비를 맞춘다.


'롯데타워 아쿠아리움'


천안에서 약 1시간 반,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갈까 했지만,

삼성역 주변이 복잡할 것 같아서 롯데타워를 택했다.


-출발!!


진수는 핑크퐁 음악을 틀고

기어를 D로 바꾸자

미끄러지듯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차는 금세 천안 톨게이트를 벗어나니,,

평일 오전 경쾌한 고속도로이다.

백미러를 보니,,,

잔다.. 체리가 잔다...


-'제이슨 므라즈' 이거 들어야겠다.

얼마 만의 내 음악이냐....


진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팝송을

조용히 따라 부르며 1차선으로 가려다가

2차선에 남는다.

아직 1시까지는 20분이 남았고

롯데타워 주차장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백미러의 작은 거울에는 작은 체리의 얼굴이

더 작게 보인다. 이쁘게 잠을 자고 있는

체리의 얼굴이.. 최대한 이 시간을 누리리라.


체리에게 책 읽어주는 10분과 진수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1시간과 비슷하나. 체리가 눈을 뜨고

배실배실 웃으니 진수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체리야, 다 왔다... 여기 뻐~끔 많은 곳이야..


능숙하게 간이 유모차를 한 손을 탁 피고,

체리를 앉힌다.


-에어컨이 세려나?


진수는 체리에게 잠바를 입히려다가

유모차 주머니에 담는다.


3시 반, 진수와 체리는

평일 오후 붐비지 않는 아쿠아리움에서

불태웠다.

진수 앞에는 체리가 있었고,

누군가를 따라간다는 게 이렇게 힘든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비탈길을 뛰어다니는 체리의 자유는

자신의 걱정과 비례하다는 것을 느낀다.


-휴우~ 체리야 이제 집에 가자..


그런데,, 뭔가 체리의 모습이 어색해 보인다.

체리의 바지를 만져보니, 몰캉몰캉한

기저귀의 젤이 터질 듯이 부풀어있다.


-아 기저귀..


남자화장실로 들어가니

다행히 기저귀 교환대가 있다.


-오~ 새로 지은 건물이라 남자 화장실에

이런 게 다 있네..


체리를 세우고 바지를 벗겼는데,,

익숙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앗!!


진수는 3초 동안 기저귀만 바라봤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지.. 여기서 해도 되나? 체리를 안고

남자화장실 변기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기저귀를 벗기고, 물티슈로 조심스레

닦아낸다. 자기 새끼라 더럽지는 않지만

언제 쌌는지 불편하지 않았을까? 왜 지금 알았지?

체리에게 괜히 미안한 감정이다.


사실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때는 민진이가 있었고, 민진이가 다 처리했는데..

진수는 앞으로 이런 일이 많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진이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다 해줬는데..


엄마, 아빠.. 함께 있으면 말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체리는 엄마 몫이었다.

괜히 민진 생각이 났다.


-엄마는 엄마네...


진수는 남자화장실 한 칸에서

모든 건 처리하고 나왔다.

잘 있어준 체리가 고마웠지만

진수는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남자화장실.. 아빠니깐

남자화장실 많이 와야 하는데...


여자 화장실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작은 딸을 남자화장실 변기에서

기저귀를 가는 게 같은 남자지만

진수는 찝찝한 느낌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체리가 쇼핑몰 스트리트를 뛰어다닌다.

유난히 몸이 가벼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3미터 앞에 체리의 모습을 보고

진수도 웃으면서 뛰어간다.


-체리야 뛰지 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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