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하는 전업주부(맞벌이) #2
-엄마, 아무래도 안되겠지?
-허리수술했잖아. 체리를 안고 업지를 못해.
진수는 한숨이 나온다.
민진이의 육아휴직은 3개월 정도 남았다.
-민진아. 안된데.
-그럴 것 같더라. 어머님 허리 아프시잖아.
-장모님도 좀 그렇지?
-안돼. 장모님 목포에서 못 떠나.
너 육아휴직 밖에 없어.
진수는 말랑거리는
트리게라톱스 공룡인형을
의미없이 쥐었다 폈다하면서
앞에 있는 체리를 빤히 쳐다본다.
민진이는 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설겆이에 한창이다.
-설겆이가 제일 편해.
민진이가 고무장갑을 수전위에 척~걸치면서
혼잣말을 한다.
유난히 조용한 사무실에
진수는 멍하니 메신져를 바라보다가
5m 떨어진 부장님 자리로 흘깃 본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지?
MBTI 'I'인 진수는 뭔가 요청할 때는
죄를 지은 듯한 느낌이다.
진수는 내심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하지만,
육아휴직을 한다고 입 밖으로 내어놓는게
여간 힘들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혼자 일어나지도 않을 시나리오를 짠다.
말을 못한지 일주일이 지나갔다.
-오늘도 그냥 들어가면 민진이가 뭐라 할건데..
어쩌지? 안되겠다. 5,4,3,2,1
진수가 벌떡 일어나 부장님 자리로 가는데,
부장님도 벌떡 일어나신다.
-왜? 나한테 할 말 있어?
-네. 부장님.. 이번 프로젝트 진행중에 품질팀에서
결과를 공유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아... 병신..
진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하는게 왜케 힘든거야....아. 쒸..
동료들과 점심밥을 먹으면서
웃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육.아.휴.직
사실 우리팀에서 아빠 육아휴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사실도 진수에게는 중압감이었다.
진수는 다시 사무실 책상 앞에서..
메신져만 쳐다본다.
부장님이 왔다갔다하는데...
신경쓰인다...
-죄인도 아닌데,, 내 성격 왜이러냐..
진수는 체리 얼굴, 민진이 얼굴이 번갈아
떠올린다. 그냥 포기하고 베이비시터를 구할까?
-아니야.. 그건 아니야..
이건 민진이도 아니라고 했어.
이미 부장님으로 향한 메신저 빈 칸에는
'부장님,, 개인적으로 면담 신청드립니다.'
가 적혀있고,, 이제 엔터만 누르면 된다.
다시
-5,4,3,2,1 에라이 툭~
전송했다.
진수는 벌떡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소변이 마려운 건 아니었는데,,
괜히 화장실에서 소변을 눈다.
콩닥콩닥...
진수 스스로도 이게 뭐라고
이렇게 부담감이 되는지..
이런 생각을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떻해..
그렇게 토닥이며
다시 책상에 앉는다.
내가 보내 메신져 앞에
'안읽음'
또 다시 가슴이 콩닥콩닥..
다시 나갈까....
진수는 그런 마음을 먹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품질팀에서 온 전화였고
진수는 자연스럽게
업무를 하기 시작한다.
품질팀과 통화를 하고,
후배들과 업무 이야기를 하고,
데이타를 보다보니,
점점 면담에 대한 기억들이 잊혀질 즈음.
진수는 자신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얹히는
감촉을 느낀다.
-잠깐 시간있어?
부장님이다.
-아,, 네..
그렇게 진수는 부장님과 함께
사무실 밖으로 성큼성큼 나간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
혼자 두뇌 100%를 사용하면서
시나리오를 짠다.
하지만 늘 그렇듯,,,
시나리오는 그대로 흘러가지 않는게
인생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