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하는 전업주부(육아휴직) #1
-갔다 올게!!
-띠리릭~
민진이가 출근하고
디지털 도어록이 자동으로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다시 조용하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문고리를 아래로 눌러서 안방 문을 닫는다.
오전 8시
안방은 암막 커튼 덕분에 깜깜하다.
-이건 이유식, 과일, 유산균은 어디 있지?
입고 있는 잠옷만큼 자유롭다.
좀 더 잘까? 아니면 책?
안방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니,,
체리가 이리저리 몸을 돌리고 있다.
깜깜한 방에 가습기 소리만..
깨우기 싫지만,
체리 옆에서 누워있고 싶다.
진수는 체리 옆에 누웠다.
체리의 작은 몸, 그리고 감긴 눈, 씰룩거리는 입..
혹여나 잠에서 깰까 봐 눈길도 조심스럽다.
슬며시 오른팔로 체리를 감싸본다.
내 팔보다 작은 체리를 안고 있으니
편안하고 든든하다.
-참, 이 녀석이 뭐라고..
체리는 작지만 그녀가 진수 가족에게는
크다. 영향력도 그녀로 인한 물건들도.
집안이 한층 분주해졌다.
체리는 뒤뚱거리며 여기 저기 만지고 있고,
진수는 한 손으로는 이유식을 꺼내면서
한눈으로는 체리를 슬쩍 본다.
-다다다다닥~
냄비에서 물이 끓어 되는데.
그 안에 중탕으로 유리그릇이
스테인리스와 부딪힌다.
-아!! 유산균!!
작지만 큰 입으로 체리는 유산균 가루와
물을 꿀꺽 먹는다.
진수의 첫날이 밝았다.
육아휴직,,
체리의 양육자는 민진이 아니라 진수다.
진수는 머릿속으로 혼자만의 매뉴얼을 만든다.
-밥 먹이고, 과일 먹이고, 책 읽히고,
유모차로 놀이터 가고.. 하루 어떻게 보내지.
지금 시각은 8시 반,
와이프가 올 때까지 8시간
진수는 막막하다.
뭘로 이 시간을 채워야 하지?
일단 하던 거 하자..
-체리야 밥 먹자.
밥 먹자는 말은 혼잣말일 뿐,
체리를 안고 자리에 앉히는 건 진수다.
-온도 딱이고만.
체리는 이케아 키즈 의자에 앉아서
진수의 손에 있는 숟가락을 본다.
진수가 체리의 입에 이유식을 한입
넣어주는데..
뱉.는.다.
-왜?
체리는 이케아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진수는 급하게 말리지만, 막무가내이다.
-밥은 먹고 놀자!
혼잣말이다.
체리는 아직 말을 못 하니깐.
체리가 바둥거리는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던 진수는
다시 의자에서 빼서 체리를
바닥에 놓아준다.
아까 데려오기 전 장난감을
만지고 빨고...
-민진이가 식탁에서 먹이라고 했는데...
숟가락 출동이다.
장난감에 집중하는 사이에,
-아~~
입을 벌린다.
이 때다. 진수는 재빠르게 이유식을
크게 한입 넣는다.
반은 삐져나오지만 다시 입술을 슥! 긁어서
안으로 넣는다.
투두둑~~
소음방지용 매트로 이유식이 떨어진다.
시작부터 전쟁이다.
시작부터 틀어진다.
매뉴얼? 스케줄? 사치다.
진수는 밥 먹이느라 진땀을 빼고
결국 1/3은 남겼다.
-됐다. 이 정도면..
이유식 통을 싱크대로 툭 놓고 나서
시계를 보니 10시..
10시.. 하아~
체리가 진수를 쳐다본다.
진수도 체리를 쳐다본다.
-이 시간에 아빠가 왜 여기 있지?
진수는 이런 눈빛을 체리에게 읽어낸다.
-어쩔 수 없어. 이제부터 우리 적응해야 돼.
혼잣말을 하면서 진수는 책을 들고
체리를 무릎에 앉힌다.
'바다생물도감'
유난히 물고기를 좋아하는 체리는
아는 물고기가 나오니 작은 입을 움직인다.
-이거 뻐~끔.
그래,, 뻐끔하는 물고기 맞아.
체리는 재미있고, 진수는 하품한다.
책 두 권 전도 읽으니 진수는 일어난다.
10시 30분..
-시간 왜 이렇게 안가..
답답하다.
벌써 피곤한데 10시 반?
-아 맞다. 과일..
민진이가 출근전에 슬라이스처럼 깎아놓은 사과를
냉장고에서 들고 온다.
-이 녀석, 밥은 잘 안 먹더니 이건 잘도 먹네..
진수도 슬쩍 3개 정도를 한데 뭉쳐
자기 입으로 넣는다.
-맛있네..
툭~ 접시를 던져놓고..
나갈 채비를 한다.
-아무튼 나가봐야겠어.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주려고 했지만,
모든 게 생소한 진수에게는
시간을 채우는 것도 버겁다.
체리가 뭘 생각하는지, 뭘 요구하는지...
민진이는 기똥차게 알아내던데...
진수는 뭐가 뭔지 모르고...
머릿속에는 민진이가 출근 전에
해야 할 일들만 맴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