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만난 리얼비긴스
멀긴 하다. 아침 일찍 준비해서 출발했는데 서쪽하늘에 해가 걸려있다. 기지개를 켜고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니 몸이 풀린다. "뛰지 말고,,, 차 조심!!" 체리는 답답했는지 여기저기 뛰어간다. "율피디님 어디 있어?" 율피디를 만나러 가는 체리의 발걸음은 바쁘다. 두꺼운 패딩이 어색하게 부산은 따뜻하다. 바닷바람이 가져온 습기 때문에 으슬으슬했지만 패딩 지퍼를 열어젖힌다.
서쪽 해가 영도 앞바다를 비추니 금색빛으로 물든다. 금빛 물결이 출렁거리는 모습, 통창이 있는 카페에서 율피디를 만난다. 와이프와 율피디의 어색한 인사, 곧 로미가족이 도착하니 조용했던 작은 카페는 시끌시끌해진다. 꽉 채웠던 2박 3일,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워크숍인지, 여행인지,
부산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늘 봐왔던 부산바다이다. 부산바다, 가족과 함께 봐왔던 바다였지만 오늘은 다르다. 부산에서 지냈던 학창 시절은 자유롭지 못했다. 억눌려있었고, 늘 그곳에 있던 바다였지만 나를 품어주지는 못했다. 지금 그 바다를 체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체리는 어떤 감정일까? 탁 트인 바다를 보는 자유를 느끼고 있을까? 내가 살았던 부산이 아닌 여행지로서 부산을 만끽한다.
현대적인 곳에서 생활했다. 교통이 좋고, 편리하고, 상권이 수려한 곳으로 옮기려고 했다. 그런 것만 보다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부산은 시간이 멈춰져 있다. 좁은 골목, 경사진 계단, 옹벽 틈으로 흘러내리는 물, 도둑을 방지하려고 뷰를 포기한 창문창살, 거미줄같이 얽혀있는 전봇대 전선, 그리고 포니.. 마치 80년대를 살아가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동네를 보니 이상하다. 억압된 시절의 풍경이라 생각했지만 마음이 편안해진다. 추억인가? 익숙함인가?
밥 냄새가 난다.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사람의 존재를 나타내는 그런 냄새가 난다. 10평이 될까? 여긴 화장실이 밖에 있는데, 그래도 사람이 살아간다. 타버린 연탄의 모습, 연탄 앞에서 밥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 연탄 구덩이 옆에 말리고 있던 내 신발, 달고나를 하려고 태워먹었던 국자, 여러 가지 생각들을 불러일으키는 풍경 속에 나는 어린 나를 관찰한다.
그때와 나는,, 동일하지만 다른 사람이 되었다. 보호받아야만 했던 내가 아닌 보호해야 할 가족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의 좋은 사람들, 좋아하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로미네, 율피디네, 그리고 우리..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가야 할지? 좋은 풍경을 편안하게 함께 바라볼 동료가 생겼다. 개인의 단위가 아닌 가족의 단위를 인정해 주는 동료이다.
사진을 정리하는데, 찡함이 느껴진다. 가봤던 곳인데, 마음이 이토록 다를 수 있을까? 꼬맹이였던 나는 이곳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커버린 나는 꼬맹이가 있던 곳에서 웃을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때의 꼬맹이도 웃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로미, 율피디, 그리고 우리 가족이 느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