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eam 알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리치 Mar 17. 2024

약간의 섭섭함을 느끼는 심플한 일상.

괜찮은 컬럼

"오빠, 남산 한 번 갈까?"


책을 소파 팔걸이에 툭 던지고 머리 뒤로로 팔을 올린다. 긴 호흡이 날숨으로 빠져나온다. 책을 들었다가 노트북을 열었다가, 식탁에 앉았다가, 체리를 안았다가.. 바다를 보고싶다는 의미없는 혼잣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하고 있지만 하지 않는 일들, 해야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들, 엉켜있는 매듭이 단단하다. 


"물고기 밥은 줬어?"


마치 리트리버처럼 물고기는 좁은 어항에서 내 손만 바라본다. 조롱하듯 손을 왔다갔다하면서 놀려댄다. 빈 손을 물고기는 따라다닌다. '먹이는 없어. 잘 보란 말이야.' 목숨을 내놓을 듯이 부지런하다. 어항과 마주한 내 등 뒤로는 아직 외출 준비를 하지 못한 와이프와 체리만이 바쁘게 움직인다.


3월의 남산은 두터운 잠바를 한번 더 여미게한다. 11시 일요일, 바쁜 걸음과 달리 출출함이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기업 사옥들 사이로 불꺼진 고급 음식점 사이로 스타벅스만이 활기차다. 백범광장은 매서운 바람을 예상못한 사람들에게 인상을 찌뿌리게 만든다. 롯데타워도 작게 보이고 남대문 시장이 크게 보인다. 몸이 데워질 즈음 평지의 광장이 우리를 쉬게 한다. 두터운 점퍼와 맨살 사이가 적당히 따뜻해진다. 아직 봄의 기운이 나무가지에 이르지 못해서 사이사이로 바쁜 서울의 모습이 보인다. 


케이블카를 탔었던가? 언제 왔을까? 마치 처음 마주한 것처럼 느껴지는 남산타워를 위로 올려다본다. 어디서 본 듯한 자물쇠가 걸린 난간에서 누군가가 또 한개의 자물쇠를 달고 있다. 스타벅스에 자리가 없다. 몇 층인지 모르게 와이프에 이끌려 어디론가 들어간다. 내 앞에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따뜻한 빵을 보니 포크를 쥐었다. 잔잔한 음악이 허공에 맴돌고, 알지못하는 외국인들의 대화는 음악과 함께 흐트러진다. 


"오빠, 많이 힘들지."


걱정어린 눈, 이야기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눈,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수없이 많은 질문을 했고 대답을 했다. 괜찮다고 했고, 잘 하고 있다고 했고,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다른 얼굴의 모습으로 나타나 무슨 말을 해야할지. 그토록 이야기했잖아. 잘하고 있고, 할 수 있는 것만 하라고 했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한다. 작은 어항속에 있었다. 커다란 통유리는 나갈 수 없는 좁고 맑은 어항속이었다. 투명하고 맑았지만 단단한 유리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있지만 나아가지 않는다. 위로 받고 싶지 않다.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유리를 깨뜨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뿐이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건너편 의자에 앉은 사람의 눈 아래가 반짝거린다. 또 우는건가? 나는 또 울고 있는걸까?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건가? 참기 힘들어 밖으로 나와버린다. 남산은 여전히 차분하고 조용하다. 내려가고 싶지만 여기까지다. 고무줄처럼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다시 카페 문을 연다. 그녀의 검정색 점퍼와 작은 아이의 맞잡은 손이 보인다. 눈 가에 보이는 마른 흔적들이 다시 뒤돌아서게 만든다.


"미안해"


70년 대 건물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이름모를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인 테이블에 앉았다.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 묻힌다. 나와 닮은 작은 아이의 눈이 보인다. 나의 또 다른 모습의 그녀의 눈이 보인다. 거울이 있다면 내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위의 소음들은 이명이 되어 눈으로 나온다. 내 마음속의 지꺼기를 닦어준 것일까? 마치 독서실에서 잠을 자듯 엎드린채 어둠속에서 청소를 한다. 내 등을 만져주는 커다란 손, 내 머리를 간지럽히는 작은 손.. 나는 그렇게 한참을 엎드려 청소를 한다.


"남산은 돈까스지."


긴 계단을 내려오니, 연예인들의 사진들이 붙은 돈까스집이 보인다. 심플한 플라스틱 접시에 알고 있는 맛을 내는 커다란 돈까스가 앞에 있다. 나도, 그녀도, 체리도 다 알고 있을거다. 나도 알고 있기에 웃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떠다니는 말은 일반돈까스를 먹자고 해도 끝까지 치즈돈까스를 고집하는 체리의 뾰루퉁한 말로 감싸진다. 약간의 섭섭함을 느끼는 심플한 일상이 다시 돌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