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꿈을 향했던 대가

by 온음
가혹했다.
이다지도 가혹할 수 있을까? 한 것 보다도 더...
원치 않는 꿈을 향한 시간도 힘들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망가진 몸을 달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다.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어 보였다.


어머니는 참 열심히 성당에 다니셨다.

그래서 임신하고는 늘 '이 아이가 아들이면 당신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대부분의 열심한 신자들이라면 자연스러운 생각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커가면서는 조금 더 했다.

아마 당신의 결혼생활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것이 이유였기도 할 것이다.


섬세하게 태어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버려짐이라 여겼던 꼬마는 역할의식에 참 충실했다.

성당을 열심히 다니고 신부님이 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버려지지 않기 위해 그를 향한 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공부도 제법 잘 했다.

좋은 신부님이 될 거라고 주변에서도 좋아했다.

시험을 보고는 제발 떨어뜨려달라고 기도했지만 합격해버렸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10년을 사제준비생으로 살았다.


사제준비생으로 사는 동안에도 참 자주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면 버려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성당에서 욕먹는 것도 싫었다. 그저 잘 이겨내야만 했다.

울고 있는 내면 아이를 지하실 어두운 방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그래야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러던 중 병이 찾아왔다.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난치병이었다.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걷기도 잠들기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 길에 오른다.


4년 여의 시간.

몸은 더 망가져 인간 구실을 할 수 없다 느껴질 즈음에야 용기를 내서 귀국했다.

그리고는 이어진 투병생활


20대를 원치 않는 신학교에서 보냈다면

30대는 그로 인한 결과인 병마와 싸우는데 보냈다.


참 기구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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