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벗다

by 온음
어쩌다 벗은 가면이었지만
그 삶은 그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모두에게 청한다
지금 쓰고 있는 가면을 벗기를


우리 부모님은 책임감 강한 아버지와 사랑 많은 어머니셨다. 하지만 그 둘의 궁합은 누구보다도 잘 맞지 않았다. 일상을 소소하게 함께 보내고 싶으신 어머니와 그리고 그것에 대한 공감과 표현이 어려운 아버지. 서로는 서로를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그 결과는 잦은 다툼이었다. 남들과 너무나도 비슷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조금 더 섬세하게 태어난 나는 그것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든 것이 상처였고 모든 것이 아픔이었다.

점점 난 내 목소리를 숨기고 조금이라도 우리 집이 화목해질 수 있는 방법만 고민했다. 가족들이 함께 모인 저녁 식사 자리는 나의 원맨쇼 무대였다. 그 웃음이 엄마와 아빠의 부딪힘을 줄여줬기 때문에. 힘든 내색도 아픈 모습도 모두 뒤로 숨기고 믿음직스러운 아들, 든든한 장남, 뭐든 잘 해내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신이 주신 선물이었을까? 제법 주어진 것들을 남들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잘해나갔고 집에서는 자랑스러운 아들, 밖에서는 성실한 학생, 친구들에게는 부러운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멀쩡해 보이는 아니 멋있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 안은 점점 병들고 곪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보여줘야 하는 모습이라는 강박에 취해 무너져가는 내 내면을 바라봐 주지 않았다. 아니 사실 어떻게 해야 볼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더 병들게 했고 마음의 병은 어느새 몸의 병이 되었다.

10년간 유학 생활까지 하며 준비했던 꿈을 접고 본격적인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내가 가진 것은 대학 중퇴, 병자, 쓸모없는 아들이라는 타이틀이었다. 누구도 나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지만 내가 나를 그렇게 여겼다.

슬픔과 아픔의 끝자락. 정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나를 벗어던지고 싶었던 그 순간. 나는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모든 힘이 다 빠져 가면조차 쓸 여력이 없던 그때, 나는 거울 속의 진짜 내 얼굴을 마주했다. 예뻤다. 아름다웠다. 보기 좋았다. 대견했다. 마음에 들었다. 가면의 모습들도 참 멋진 모습들이 많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로 살기로 다짐했다. 조금 부족해도 조금 못나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어도 적어도 내가 나를 사랑해 주고 이런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들 곁에 머물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내 인생은 아주 자그마한 변화를 맞이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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