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호랑이, 코끼리 혹은 양

by 온음
떨어져봐야 안다.
날개짓을 해봐야 그게 날개인지 팔인지 알 수 있고
있는 힘껏 달려봐야 내 다리가 그 달리기를 버텨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해보지 않고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딱 한 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당신이 그렇게 버티던 곳이 세상 어느 곳보다 더 지옥이었을 수도 있고
당신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곳이 세상 어느 곳보다 더 천국일 수도 있다.
혹은 그 반대일수도

하지만 시도해 본 사람은
두 곳을 다 들러본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살 곳은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이 설령 '나은 곳'이 아닌 '덜 나쁜 곳'일지라도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이었을까?

늘 '안전'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되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음악하고

다재다능할 수록

'어디서도 버림받을 일은 없겠지?'

하는 믿음


그래서 모든 것을 열심히 했고 감사하게도 어느정도의 재능 또한 받쳐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살 수록 나 자신만의 색을 잃어버리기 쉬웠다.


부모님이 보시기엔 그저 착하고 성실한 아들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바라지도 않았고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원하는 길로 잘 가주는 아들.


하지만 원치 않던 길은 그에게 마음의 병이 되었고

그런 마음의 병은 나아가 몸의 병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서서히 벼랑 끝으로 몰려 갔다.

밀려드는 압박 속에서 굴러 떨어지는 작은 돌들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그 벼랑의 끝에서 버티려 노력했다.

그에게 새로움이란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이었으니까.


'지금처럼만...
잘 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랬던 바람도 잠시 결국은 낭떨어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그 시간을 버틴 것 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으리라...


어? 근데 생각해보니 삶의 낭떨어지는 새로운 삶을 가져올 뿐

육체적 죽음으로 그를 몰아가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떨어지는 와중에

혹시라도 '내가 독수리는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던 그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추락은 길었고 멈출 기미 또한 보이지 않았다.

'아! 혹시 호랑인가? 날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절벽을 딛고 달려야 하나?'

호랑이는 제 자식을 절벽 밑으로 보낸다는 어디선가 주워 들은 이야기도 떠올랐다.

(물론 그의 부모가 강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너그러웠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팔 힘과 다리 힘은 약하디 약했고

결국 그 바닥까지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곳엔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절벽 위의 삭막한 곳이 아닌 푸른 초원이었다.

초식동물인 그에게는 더없이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날 수 있는 독수리일까?

힘 차게 절벽을 타고 달리는 호랑이일까?

아니면 어디서든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듬직한 코끼리일까?

했지만...

순한 양이었다.

간간히 산책하고 간간히 풀 뜯고 낮잠도 자고 무리가 없으면 조금은 많이 불안한

한 마리의 양이었다.


그래도 나 자신을 알고 나니 이전 같은 쓸데없는 힘은 주지 않는다.

내 속도에 맞춰

내 호흡에 맞춰

걷고 쉬고를 반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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