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나무 테이블

by 온음
한 평생을 어찌 풍파 없이 살았겠는가?
하지만 그 풍파를 그대로 두면
또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에
깎고 채우고 메워 완성해 낸다

투명한 레진 사이로 나무의 삶이 묻어 난다
보호제에 둘러 싸여 참으로 부드럽지만
나무의 삶은 그다지 부드럽지 못했다

하지만 그 굴곡과 홈이 어우러진 나무의 풍파가
그 테이블의 멋을 더하는 건 왜인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나의 글은 희망을 주고자 하지만

그 어떤 글보다 절망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하고


나의 글을 통해 치유가 이루어지길 원하지만

그 어떤 글보다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겪은 상처, 내가 겪은 아픔, 나의 무너짐, 나의 절망을 통해

삶에는 이런 상처도 아픔도 무너짐도 절망도 있구나! 하며 피해가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나'라는 사람 안에 수렴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근사한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수백년을 한 자리에 서 있던 나무를 베어 온다.

옹이도 흠도 상처도 뒤틀림도 나무 자체의 꺾임도 존재한다.

그것을 그냥 직사각형으로 잘나내어 테이블을 만든다면 얼마나 아까운 일일까?

그 나무 '한 객체'로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기성품'이 되는 순간이다.

이전의 과거를 기억할 수도 없는...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도 다르다.

그러할진데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더 다를까?

그 다름이 '나'를 완성하는 길일진데 우리는 반듯하고 매끈하게 잘려진 테이블이 되고자 한다.

더 반듯하고 더 매끈하게 잘 잘라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유용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희생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작 그 자신이 아닐까?


세상이 조금은 더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을 가르쳐줬으면 싶다.


어쩌면 나의 상처와 아픔, 무너짐과 절망이 내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준 것 같다.

그 시기에는 정말 죽고만 싶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찬찬히 다시 내 삶을 일구는 과정에서 '나를 그대로 보존'하며 '쓸모있는 테이블이 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사실 나라는 나무는 직사각형으로 잘라내면 손바닥만한 조각 하나 나올까 말까한

정말로 많이 상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쓸모없는 나무가 행복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세상의 기준은 잊혀진지 오래였고 그저 내가 이 모양으로 이 꼴로 존재할 수 있어야만 했다.

상처와 아픔, 무너짐과 절망을 모아 끌어 안았다.

그 안에서 쓸모 있을 것 같은 부분은 아프지만 '직시'했다.

'내'가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테이블을 준비중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수많은 부서진 조각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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