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에게
조금 전 통화를 끊고 카페에 왔어.
딱 네가 우리 미래에 대해 불안하다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그 통화 말이야.
웃기지 않아?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카페 의자에 앉자마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ㅣ아, 나 지금 이 사람을 정말 좋아하고 있구나.
이 말을 들으면 네가 어이없어할 것 같아.
“내가 그렇게 걱정된다고 하는데, 거기서 그 생각을 해?” 하고.
근데 어쩔 수가 없었어.
대화가 끝나고 나서도 내 머릿속을 제일 크게 차지한 건,
우리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그런 걱정을 내 앞에서 풀어 놓을 정도로,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거든.
ㅣ어쩌면 이게 내 상상일지라도, 내 상상 속의 사람인 넌 그런 존재야.
넌 말했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정말 괜찮을까, 우리가 기대하는 모양대로 만나게 될까.
미래는 늘 꽉 막힌 복도 같아서, 문을 열어보기 전까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근데 나는, 이상하게도 자꾸 기대가 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웃고 있을까, 네 표정과 말투, 걸음걸이가 앞으로 얼마나 더 변할까. 그걸 옆에서 계속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한텐 꽤 근사한 미래야.
ㅣ그러니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너무 고통받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미리 두려워하기보다는, 조금은 두근거리는 쪽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어차피 확실한 건 하나뿐이잖아. 우리가 여기까지 걸어왔고, 앞으로도 한 걸음씩은 더 가보고 싶어한다는 것. 그 끝이 어떤 모양이든, 그 길 위에 있는 시간들만큼은 분명 우리를 위한 길일 거라고 믿고 싶어.
생각해 보면, 좋은 관계라는 건 결국 이런 게 아닐까 싶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편에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해. 자기 자리, 자기 상처, 자기 사정을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보지. 그게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거야. 오히려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게 중요하니까.
우리도 어쩌면 비슷한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것 같아.
우리는 자주 오해하고, 서로에게 실망하고, 말이 어긋나서 상처를 줄 때도 있지.
그렇지만 끝까지 아무 일 없었던 척 지나가는 대신,
결국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 놓잖아.
마음이 어땠는지, 어디에서 서운했는지, 왜 그 말이 그렇게 들렸는지.
결국 나도, 너도, 서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보다 싶어.
그래서 널 사랑하게 됐는지도 몰라.
자기 마음을 내게 내어주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애써주는 사람.
세상에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끝끝내 이해하려 하지 않는 관계가 훨씬 많다는 걸 아니까,
이렇게까지 서로를 보려고 하는 관계가 얼마나 귀한지도 더 잘 느껴져.
아마 우리는 그런 사랑을 오래 해왔고,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온 거겠지.
ㅣ그럼에도 우린 많은 시간을 상상 속 인물로 머물러야할 거야.
우리가 실제로 마주 보고 있는 시간보다, 내가 너를 상상하는 시간이 훨씬 많으니까
그럼에도 그 상상 속에서라도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어 주지.
네가 눈을 뜨는 아침, 졸린 얼굴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모습,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허겁지겁 아침을 먹는 너.
강의실로 향하는 길, 도서관에서 앉아 있는 뒷모습,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을 때의 한숨까지.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간 속에 있는 널, 상상으로 채워넣을게.
너의 상상 속 어딘가에서 이 글을 쓰는 C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