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렇게나 다른데 사랑하고 있어"
O에게
우리가 하나하나 너무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마다,
이상하게 마음 한쪽에서 경계심이 올라와.
마치 “이거 혹시 내가 억지로 맞추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ㅣ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자주 비슷한 점을 찾잖아.
좋아하는 영화, 자주 듣는 음악, 좋아하는 계절, 음식 취향 같은 것들.
그런 걸 나열해 놓고 “우린 잘 맞는 사이구나”라고 안도하기도 하고.
ㅣ나도 예전엔 그런 걸 꽤 중요하게 생각했어.
같은 걸 좋아하면 갈등이 덜할 것 같고, 덜 싸울 것 같고, 덜 외로울 것 같아서.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져.
우리가 맞는 부분보다, 분명히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게 오히려 안심이 돼.
억지로 비슷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까.
결국 남은 시간은,
ㅣ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잖아.
나는 내 자리에서 살아온 사람이고, 너는 너만의 자리에서 삶을 견뎌온 사람이니까.
그래서일까.
네가 가끔 내 말과 다른 대답을 해 줄 때가 좋더라.
내가 겨울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같이 겨울을 좋아한다고 맞장구치기보다
가을이 더 좋다고 말해 주는 너.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했어.
ㅣ“우린 같아”라고 말해 줬을 때보다,
“나는 조금 달라”라고 말해 줬을 때 더 안도 돼.
삼겹살이 제일 좋다고 말하는 나에게,
망설임 없이 브로콜리가 좋다고 말하는 너도 그렇고.
나였으면 분위기 맞추느라 “그래도 삼겹살이지” 하고 웃었을지도 모르겠는데,
너는 네가 좋아하는 걸 그냥 네 말투대로 내놓더라.
그 순간에야 알았어.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건, 꼭 같은 취향의 사람이라기보다,
ㅣ자기 취향을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어쩌면 우리 미래의 식탁은 그런 모양일지도 몰라.
한쪽에는 바삭하게 잘 구운 삼겹살이 놓여 있고,
다른 한쪽에는 소금만 살짝 뿌린 브로콜리가 산처럼 쌓여 있는 식탁.
나는 내 접시에 있던 고기를 네 그릇에 하나 올려주고,
너는 네 접시에 있던 브로콜리를 내 그릇으로 슬쩍 밀어놓겠지.
그렇게 서로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시간들이,
우리의 진짜 취향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네가 좋아해도 괜찮고,
네가 싫어하는 것들을 내가 좋아해도 괜찮아.
나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너의 취향을 닮아갈 거고,
너도 모르는 사이 내 편에 서서 어떤 것들을 좋아하게 됐을 거야.
굳이 맞춰보려 애쓰지 않아도,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취향이라는 것도 조금씩 스며들 수밖에 없으니까.
좋은 관계라는 건 아마, 그렇게 서로의 다름을 조금씩 데려와 섞어 먹는 일이 아닐까 싶어.
ㅣ중요한 건, 우리가 아직 서로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손을 놓쳐버리곤 하잖아.
각자의 숨이 가쁘다는 이유로, 상대의 걸음이 느리다는 이유로,
혹은 어느 순간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관계는 산을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얼굴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고.
겨우 정상을 찍고 내려왔더니,
처음의 우리가 아니라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
넌 어때.
우리는 어떻게 변해 온 것 같아.
서울의 토요일 저녁, 네 손을 떠올린 C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