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조차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 애쓴다.” 프란츠 카프카
O에게
어젯밤엔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어.
대본을 덮어놓고 불을 끈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눈꺼풀 안쪽에서 글자들이 계속 움직였어.
침대 위에서 한 번 뒤척이고,
베개를 바꿔보고,
휴대폰 시계를 몇 번이나 확인하다가
결국 너를 떠올렸어.
이 시간쯤이면
너는 아마 꿈과 꿈 사이 어딘가를 떠돌고 있겠지.
하루의 피로를 겨우 내려놓고,
내가 모르는 얼굴로 잠들어 있을지도 몰라.
잠에 든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게
가끔 너무 선명하게 느껴져.
깨어 있을 때는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고,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화면 너머로라도 네 표정을 볼 수 있잖아.
근데 잠든 너에게는
아무 말도 닿지 않아.
네가 악몽을 꾸고 있다면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알 수 없어.
이불을 더 덮어줘야 할지,
머리카락을 쓸어줘야 할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곁에 앉아 있어야 할지.
나는 아직,
네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아침의 얼굴도,
잠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의 표정도.
그래서일까.
너의 꿈까지 알고 싶다는 마음이
어쩌면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상상하게 돼.
너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새로운 도시를 헤매는 꿈일까,
낯선 언어가 입안에서 제대로 나오지 않는 꿈일까,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끝난 줄 알았던 과거가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꿈일까.
사람의 꿈을 전부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아.
꿈속에서조차 우리는
자기 안의 두려움과 싸우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려고 애쓴다는 것.
네가 말했잖아.
잠자리에 드는 게 가끔 두렵다고.
눈을 감는다는 게
하루를 끝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같은 실수와 같은 생각을
다시 반복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괜히 미안해졌어.
네가 잠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떠올리는 얼굴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혹시라도 그 순간까지도
불안과 싸우고 있을까 봐.
그래서 요즘은
네게 메시지를 보낼 때
조금 더 신중해지려고 해.
네 하루의 첫 문장이 되려고 할 때만큼이나,
네 꿈 앞의 마지막 문장이 되려고 할 때도.
“잘 자”라는 말 하나를 보내는 일에도
조금 더 마음을 얹어 보게 돼.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서로의 꿈을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어떤 꿈을 꾸더라도
깨어났을 때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함께 지켜주는 일이 아닐까 싶어.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괜찮아, 꿈이었어”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 한 문장이 있느냐 없느냐가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 전체의 온도를 바꿔 놓기도 하잖아.
나는 아직
네 꿈속에 직접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르지만,
적어도 네가 깨어났을 때
“그 꿈, 나한테 말해줘”라고 말해줄 수는 있을 것 같아.
그 꿈이 어두웠다면
어디가 가장 무서웠는지,
왜 그 장면이 그렇게 오래 남는지,
너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어줄 수는 있을 거야.
우리는 아마
서로의 불안을 완전히 없애줄 수는 없을 거야.
그건 너무 큰 약속이라 함부로 하고 싶지 않아.
다만,
네가 꿈 때문에 괴로워할 때,
현실의 어떤 장면 때문에 마음이 뒤집혀 있을 때,
“너의 그 어두운 곳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말 정도는
조심스럽게 해 보고 싶어.
오늘 서울의 밤은
유난히 고요해.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거의 없고,
컴퓨터 전원 버튼의 작은 불빛만이 방 안을 지키고 있어.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나도 불을 끄고
잠을 청해 볼 생각이야.
혹시 꿈에서 네가 나온다면
그때는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볼게.
“너, 많이 힘들었지.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다고,
이제 좀 쉬어도 된다고.”
그 말이 꿈속에서라도
한 번 너에게 닿으면 좋겠고,
깨어났을 때
이 편지를 읽으며
“아, 누군가는 내 꿈까지 걱정해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이라도 들면 좋겠다.
어느 늦은 밤,
네 꿈 앞에서 한참을 머무른 C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