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법정
O에게
그날 밤의 일을 자꾸 떠올리게 돼.
네가 반신욕을 하다가 장난처럼 찍어 보냈던 그 사진.
나는 잠결에 알람만 끄듯 화면을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잠 속으로 가라앉았어.
다음 날 아침, 대충만 기억나는 그 장면을 붙잡으려다 결국 실패했지.
네 어깨가 어디까지 물에 잠겨 있었는지,
표정이 웃는 얼굴이었는지,
살짝 피곤해 보였는지조차 흐릿해.
사진은 분명 몇 초 동안이나 화면에 떠 있었는데,
남아 있는 건 “봤다”는 기억뿐이야.
정작 중요한 건 거의 지워져 버렸다는 느낌.
그 이후로,
나는 네가 보내주는 사진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열게 되었어.
무심하게 넘기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네가 거기서 보낸 하루의 온도가, 내 눈꺼풀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 버릴까 봐.
반신욕 사진이라는 건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장면이야.
몸이 물 속에 잠겨 있으니까, 화면에 잡히는 건 온도의 일부뿐이잖아.
김이 서린 욕실 거울, 탁자 위에 올려 둔 책, 욕조 모서리에 걸쳐진 팔.
딱 그만큼만 보여주는 대신,
나머지는 상상하게 만들지.
나는 그날 이후로,
네가 얼마나 오래 물 속에 있었는지,
손가락 끝이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버텼는지,
물을 틀어 놓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꾸 상상하게 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건,
결국 서로의 몸을 상상으로만 이어 붙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화면을 통해 보는 건 늘 결과물뿐이니까.
이미 고르고, 찍고, 보낼까 말까 고민한 끝에
“그래,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내게 도착한 장면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사진을 온전히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사진 자체보다 더 오래 남았어.
“그때 조금만 덜 졸렸으면,
그 장면을 더 또렷하게 기억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 장면들 사이를 오가는 것 같아.
한 번만 제대로 보고 지나쳤으면 좋았을 순간들,
조금만 더 집중했으면 달라졌을 표정들.
함께 있을 때에는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던 사소한 몸짓들이
이제는 화면 너머에서,
줌의 끊기는 화질 사이에서,
메신저에 남은 몇 줄의 문장만으로 재구성되고 있잖아.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서로에게 보내는 이런 불완전한 기록들이
완전히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다 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상상할 여지가 남아 있고,
그 상상 덕분에 네가 없는 시간에도
나는 계속 네 옆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거든.
완벽하게 저장된 장면보다
엷게 남은 조각들이 더 오래 마음에 머물 때가 있어.
그 반신욕 사진처럼.
대충만 스쳐 봤는데도,
몇 날 며칠 동안 계속 떠오르는 장면이 되어 버린 거지.
언젠가 우리가 같은 집에서
서로를 직접 보며 살아가게 된다면,
그때는 이런 사진들을 거의 찍지 않게 될까.
몸의 온도와 방 안의 습기가,
화면이 아니라 피부로 바로 전해지는 날이 오면,
나는 또 어떤 걸 놓치게 될까.
아마 그때는,
너를 너무 자주 보게 되어서
오히려 자세히 보지 않게 되는 것들을
놓치게 될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지금 이 어설픈 거리도 완전히 나쁘지는 않아 보여.
놓친 장면을 상상으로 메꾸는 동안,
나는 내 안에서 너를 한 번 더 불러내게 되니까.
반쯤 기억난 장면을 붙들고 있는 C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