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에게
12월이 되니
사람들 대화의 절반은 자연스럽게 올해 이야기로 흘러가.
뭘 해냈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내년에는 뭘 해야 하는지.
카페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어디에서나 “올해 진짜 빨리 갔다”는 말을 듣게 돼.
네가 떠난 뒤로 맞이하는 첫 12월이라 그런지,
예전처럼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아.
우리에게는 “1년이 지났다”는보다
“서로 떨어져 보낸 계절이 하나 더 늘었다”는 말이
더 가깝게 와 닿는 것 같아서.
작년에 썼던 너에게의 편지를 다시 읽어봤어.
그때의 나는
너의 연구가 잘 되길,
공부가 잘 풀리길,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길 바란다고 적어 두었더라.
그리고 나도 내 자리에서,
작품과 생활을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말을 곁에 붙여두었지.
지금 다시 그 문장을 읽어보니
조금 웃기기도 하고,
조금 뭉클하기도 해.
한 해를 버틴다는 게
그렇게 거창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싶거든.
우리는 화려한 업적을 세기보다,
다른 것들을 세며 살아온 것 같아.
몇 번이나 시차를 건너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몇 번의 영상 통화가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는지,
네가 시험이나 발표를 앞두고 밤을 샜던 횟수,
내가 마감 앞에서 커피를 갈아 마신 횟수.
달력은 그런 세부사항들을 세어 주지 않지.
붉은 숫자와 검은 숫자만 바꿔가며
“또 한 해가 지났다”고만 말할 뿐이야.
그래서 나는
우리만의 올해를 세어 보기로 했어.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해 보려고 한 해,
한 번 더 버텨 보기로 한 밤,
도망치지 않고 서로에게 솔직해 보려고 마음먹었던 날들.
어쩌면 그런 날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는 게
달력의 숫자를 세는 것보다
조금 더 우리에게 솔직한 방식이 아닐까 싶어.
새해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
여전히 너는 연구실에서,
나는 작업실에서
각자의 싸움을 이어가겠지.
단 한 가지 약속만은
조심스럽게 되풀이해 보고 싶어.
우리가 서로에게
“끝까지 사랑해 보자”고 말했던 그 문장.
그 말은,
단지 끈질기게 버티자는 말만은 아닐 거야.
좋을 때만 사랑하자는 말도,
어떤 결과를 전제로 하는 약속도 아니겠지.
나는 그렇게 믿고 싶어.
새해의 약속이란,
우리 둘의 모습을
어떤 이상적인 성공의 기준에 맞추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가진 불안과 단점들까지 포함해서
“그래도 한 번 더 함께 걸어가 보자”는 고집에 가깝다고.
그래서 올해도
네가 있는 도시의 새벽과
내가 있는 서울의 밤은
조금씩 어긋난 시간대를 살겠지만,
그 어긋난 순간들 사이사이에
우리가 해낸 사랑과 버팀의 숫자가
천천히 쌓여가길 바래.
서울에서 한 해의 끝과 시작을 동시에 바라보는 C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