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일과 사랑하는 일은 닮았다. 포기하지 않는 쪽을 택하니까"
O에게
요즘은 나도 버틴다는 게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자꾸 생각하게 돼.
쉬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잘 해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중간 어딘가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몸을 기울이고 있는 느낌.
너는 그곳에서 연구와 수업을 이어가고 있고,
나는 여기서 작품과 일정을 맞추고 있어.
우리가 하는 일의 내용은 다르지만,
“대충 해 보다가 안 되면 말지 뭐”라고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 너는 편지를 못 받은 채로 일어난 아침이
괜히 텅 빈 기분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잖아.
그 말을 들은 뒤로,
뭔가 많은 것들이 걱정 돼.
그럼에도 네가 내게 보내는 말들은
대체로 밝은 쪽을 고르고 있지.
힘들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어디쯤에서 웃음으로 마무리하려고 애쓰는 말투.
나는 그 균형을 좋아해.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와
완벽한 척하지 않겠다는 솔직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사람의 문장.
그래서 네가
“다른 사람들처럼 갑자기 무너져 버리진 않을까” 하고 걱정할 때,
나는 먼저 이 말부터 해주고 싶어.
너는 이미 여러 번,
무너질 만한 장면을 지나왔다는 걸.
그럼에도 아직 여기 있다는 걸.
버티는 사람의 얼굴은
겉으로 봤을 때는
그냥 평범해 보일지도 몰라.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가와 입술 사이에
숱한 포기의 유혹을 지나쳐온 흔적이 숨어 있다고 믿어.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그 흔적 때문이라고 생각해.
너는 자주 “나는 약한 사람 같다”고 말하지만,
내 눈에는
약하다고 느끼는 자신과 함께 서 있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보이거든.
그건 꽤 단단한 자세라 생각해.
오늘 이 편지를 쓰면서
나도 내 버팀을 한 번 돌아보게 돼.
대충 쓰는 게 익숙해지지 않도록,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마음에 너무 빨리 타협하지 않도록.
네가 거기서 버티는 만큼
나도 여기서 버티겠다는 마음을
늘 새로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마주 앉게 되면,
우리가 견뎌낸 시간들이
서로의 얼굴에 조금씩 남아 있을 거야.
그 흔적들 사이사이에
이 편지들이 얇은 층처럼 끼어 있을 거고.
그때 우리가 나누게 될 말은
아마 이런 거겠지.
“그때 진짜 힘들었는데,
그래도 안 무너지고 여기까지 왔네.”
그 말을 나중에 듣기 위해서라도,
오늘의 나는
이 편지를 쓰는 쪽을 선택해 볼게.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의 아침을 상상하며,
서울에서 버티고 있는 C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