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가 욕망을 가진 사람들"
그녀의 글은
자신감 넘치는 겉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글 안에서 그녀는 슬펐고,
자기의 위치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부자에 좋은 직장에 예쁘고 벤츠까지 타는 자신감 넘치는 이 사람이
무엇 때문에 'SM플레이'에 집착하는 걸까.
결국 그녀가 채우지 못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가학을 동반하는 'SM플레이'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될 것이란 가정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알게 된 '진실과 오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언제나 그렇듯 이 글 또한 특정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이것은 질병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각자만의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성관계 시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이상해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ㅣ인간의 무의식은 성적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즉 우리가 하는 수많은 욕망의 형태가 실은
성욕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울증 환자들이 대체적으로 성욕이 낮아지는 현상이 그렇다.
다만 이 예시는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일 수도 있으니
단순한 예시 정도로만 봐줬으면 좋겠다. (역으로 더 집착/의존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ㅣ프로이트는 이렇게 인간의 욕망 중 성욕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쇼펜하우어의 <사랑은 없다>라는 저서에서
인간은 욕망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말을 이해했다.
이렇듯 지금 자기 자신의 정신 상태가 어떠한지 궁금하다면,
본인의 성욕이 어떠한지를 살펴보자.
과도한 잠자리나 자위에 집착하거나 혹은 성적 욕망이 없다면
그것이 일시적/장기적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그래서 누가 SM성향을 가지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사실 우리 모두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S(사디즘)와 M(마조히즘)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성장 과정에 따라 그 차이가 조금씩 생겨나는 것이다.
그럼 누가 '플레이어'가 되는 걸까.
욕망은 개인이 '결핍'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 그것을 채우고자 분주히 노력한다.
그리고 대다수 SM플레이어들의 문제는
그것이 외적이 아닌 내면의 결핍이 되어 본인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문제들인 경우가 많다.
정확히는 이들은 이 욕망의 지점에 그저 특이점이 왔을 뿐인 것이다.
'사디즘'은 흔히 성장 과정에서 과도한 억압이나 소외가 성적 쾌감과 결부된 경우다.
문제는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대다수가 이를 경험했을 것이다.
허나 항상 말하지만 누구에게나 '나'의 기준에게 별 거 아닌 것들이,
특정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디즘'은 이에 역으로 억압당해왔던 결핍을
누군가를 지배함으로써 해소하는 것에 성적 만족도를 느낀다.
ㅣ마조히즘은 조금 안타깝게도 '죽음 본능'이라 한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결정적인 차이는,
마조히즘은 성장기 부모의 억압에 겪는 문제를
자꾸만 자신의 '죄'라는 죄책감으로 변질되는 것이 익숙해진 경우다.
때문에 억압과 고통을 버티는 것이 '사랑을 받는 것'이라 느끼게 된 것이
성적 쾌감과 결부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마조히즘은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가부장제 시절 억압된 여성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란 추측을 해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는 '마조히스트'들이 변태라 그런 것이 아닌,
오히려 그들이 너무 순수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사실 궁극적으로 서로의 성향이 잘 맞고 안전하게만 한다면,
특정 성행위에 대한 문제는 개인의 자유라 생각한다.
이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는 건 오지랖이다.
허나 종종 작가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오가는 유치한 대화를 예시로 들고 싶다.
글을 쓸 때, 이론이 중요하냐 감각이 중요하냐.
그런 대화를 나누는 거 보면 참 멍청한 대화라고 생각한다.
꼭 둘 중 하나만 중요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허나 나는 글을 수업할 때 항시 이론을 중요하게 가르친다.
그리고 이론을 바탕으로 글을 계속 쓸 건지 말 건지는 개인의 자유에 맡긴다.
그저 궁극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ㅣ이론을 알면서 안 쓰는 거랑, 모르면서 안 쓰는 건 큰 차이다.
플레이를 하는 당신도 그저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 그런다고 생각하지 말고,
왜 내가 이것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알고 하도록 하자. 부디 안전하게.
그럼 행복하시라.
[작법 노트] 글에서 욕망을 다루는 법
내 글에 힘이 없다면, 내가 내 욕망을 부정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1. 욕망을 '병'이 아닌 '정보'로 읽어라.
당신이 무엇을 강하게 욕망하거나, 반대로 강하게 거부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내면 결핍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보다. '나 왜 이러지?'라고 자책하기보다, '이 욕망이 나에게 어떤 결핍을 알려주려 하는가?'라고 관찰하라. 글쓰기는 이 욕망을 해독하는 과정이다.
2. 이론이라는 '지도'를 먼저 확보하라.
SM플레이에서 이론(규칙, 안전 장치)이 없으면 위험하듯,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론은 당신의 감각을 통제하는 족쇄가 아니다. 감각이 날뛰기 전에 미리 확보해 둔 안전망이자 지도다. 지도가 있어야 내가 지금 어디쯤에서 길을 잃었는지 알 수 있다.
3. 문장 속에서 '결핍'을 '동기'로 치환하라.
• 당신의 글이 슬프고 위치를 헤매고 있다면, 당신의 무의식이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라는 플레이 속에서, 내면의 결핍을 글을 쓰게 하는 강력한 동기로 재정의하라. 동기가 확실한 글은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