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 (1)

“여성 서사를 놓기”

by 수취인불멍

(*본 글은 총 3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강의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여성 서사 좋은 작품 좀 추천해 주세요.”


그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나는 잠깐 말을 고른다.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작품들이 떠오른다.


<뮬란>, <히든 피겨스>, <블랙 스완>,

<캐롤>, <스파이>, <내일을 위한 시간>,

<몬스터>, <미성년>, <파니 핑크>.


장르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여성 인물들이 주인공인 작품들이다.


편의를 위해 여기서 ‘여성 서사’라고 부르겠지만,


ㅣ 사실 개인적으로 이 말을 아주 좋아하진 않는다.


그냥 ‘좋은 작품’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많은데,

굳이 ‘여성 서사’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그 작품이 다루고 있는 세계가 너무 좁아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많은 작품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ㅣ나는 여전히 <뮬란>을 이야기하게 된다.


3360088_dsk.jpg



무려 1997년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진보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뮬란>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하다.

‘여성의 가부장적 위치에서의 해방’과

‘남성 중심 사회 구조의 변화’라는 두 축을 동시에 보여준다.


주인공 뮬란은 “좋은 신부감”이 되어야 한다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러다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군대에 나가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으로 존재해 온 뮬란은

처음엔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고 번번이 실수하지만,

결국 자신의 방식으로 성장해 나간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이 기묘한 초능력이나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뮬란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정신력, 집중력,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 위에서 조금씩 자신만의 전략을 세운다.


ㅣ 그래서 뮬란은 결코 ‘남성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그저 뮬란일 뿐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지점은,

뮬란이 함께 생활하는 남성 동료들을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죽더라도 명예롭게 죽으면 된다”는 식의 비합리적인 용맹함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더 적은 희생으로 이길 수 있는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동료들을 이끌어간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남성은 더 이상 단순한 적대의 대상이 아니다.

함께 실수하고, 함께 배우고,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동료가 된다.


<뮬란>이 보여주는 페미니즘은 결국 이런 메시지에 가깝다.

남녀가 서로를 ‘전복해야 할 상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ㅣ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며 함께 성장하는 동등한 동료라는 것.


물론 <뮬란>에도 한계는 있다.


국왕의 제안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와,

가부장의 상징인 가족의 품과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결말은

아쉬움을 남긴다.


ㅣ여전히 “가족”이라는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했던

그 시대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뮬란>처럼 탄탄한 여성 서사는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모든 작품이 그 수준에 도달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많은 작품들이 실수하는 부분이 있다.

남성 캐릭터를 너무 손쉽게 ‘바보’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 <걸캅스>다.

이 영화에서 다수의 남성 캐릭터는 거의 패러디에 가까운 수준으로 과장되어 있다.

개연성보다는 “이 정도로 저질인 놈들이니까, 마음 편히 욕해도 된다”는 식의 표지판처럼 쓰인다.


물론 현실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


ㅣ하지만 대다수의 남성이 저렇게 노골적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들 또한 사회적 동물이고,

지식의 유무와 관계없이 대부분은

최소한 “상식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다.


<걸캅스>를 보면서 느꼈던 불편함은 여기에 있었다.

여성 캐릭터의 능력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대신,

주변 남성 캐릭터를 과장된 바보로 만들어 궁지와 통쾌함을 동시에 만드는 방식.

그러면서 정작 주인공 여성의 행동과 성취는 우연에 더 많이 기대고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여성 관객을 상대로 돈을 벌면서,

동시에 여성 캐릭터를 조금은 무능하게 그려버리는

이상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성범죄의 심각성을 말하고 싶었다면,

꼭 상업영화의 장르 문법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가 있었을까.


ㅣ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한공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피해자의 삶이 어떻게 일상 속에서 끝없이 흔들리는지 끝까지 따라간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은 설명을 들은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잠시나마 함께 느낀 사람이 된다.


ㅣ작품은 설명하고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이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걸캅스>를 두고 페미니즘을 논쟁의 장으로 올려놓는 것 자체가

페미니즘을 가볍게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다고 느낀다.


이 작품은 그냥, 여성 서사가 부족한 한국 상업 영화 시장에서

한 번쯤 나올 만한 시도 정도의 의미로 충분하다.

그 이상, 어떤 상징 같은 것까지 짊어지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현장에서는

윤가은, 정가영 감독을 비롯해

섬세하고 입체적인 여성 인물들을 그리는 감독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이들이 상업 영화판으로 자연스럽게 올라올 수 있도록,

관객과 시장이 더 넓은 자리를 열어줘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은

‘여성 서사’라는 말을 붙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잠시 내려놓고 작품 하나하나가


ㅣ어떤 사람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보는 일이 아닐까.


다음 글에서는

이름이 덜 알려졌지만, 내가 사랑하는 여성 인물 중심의 영화 몇 편을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작법 노트] 라벨에서 한 발 물러나 작품을 쓰는 법


인물을 먼저 묘사하라 : “이 작품은 훌륭한 여성 서사다”라는 말로 글을 열어버리면 독자는 이미 틀 속에서 작품을 보게 된다. 대신 구체적인 장면을 먼저 보여주자. <뮬란>이라면 신부 수업 장면, 군대 훈련 장면, 동료들과의 전략 회의 같은 장면들이다. 장면을 충분히 쌓아 둔 뒤에, 그때 비로소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작품을 여성 서사라고 부른다/부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편이 설득력이 있다.


‘적대’ 대신 ‘관계’를 바라보라 : 여성 서사를 쓸 때, 가장 쉬운 구조는 “여성 vs 남성”의 대립 구도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금방 납작해진다. <뮬란>이 흥미로운 이유는, 남성이 단순한 적이 아니라 함께 바뀌어 가는 동료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바보나 악인으로 만들기보다, 그들이 어떤 관계 안에서 실패하고 변해 가는지를 따라가면 글의 깊이가 달라진다.


분노를 쓰되, 작품을 대신 분노시키지 말라 :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글을 쓸 때, 내 안의 분노는 중요한 에너지다. 다만 그 분노를 그대로 캐릭터에게 쏟아붓는 순간, 인물은 메시지의 도구가 되기 쉽다. <걸캅스>처럼 주변 인물들을 과장된 악인과 바보로 채우면, 관객은 잠시 분노할 수 있지만 오래 기억하진 못한다. 글을 쓸 때는 “내가 이 문제에 왜 화가 나는지”를 먼저 적은 뒤, 한 번 더 묻자. “이 분노를 설명 대신, 장면과 관계로 보여줄 수는 없을까?”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4화욕망의 끝에서 발견된 '나'(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