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무책임한 '글'은 비극을 만든다

"때론 글이 칼이 되기도 한다."

by 수취인불멍

우리는 작품을 쓰게 되면,

이 작품을 보거나 읽게 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하게 된다.

가장 보편적인 상업 작품 중 하나인 영화 <극한직업>을 떠올려 보자.


이병헌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그냥 정말 웃긴 영화, 관객들이 마구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극한직업>이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영향력은 아주 명확하다.


‘웃음’



maxresdefault.jpg

어떤 이에게는 “웃기기만 한 영화”라는 말이 폄하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극한직업>은 1,000만이 넘는 관객이 극장에서 보았고,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웃음을 선물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애초에 의도했던 영향력을

굉장히 충실하게 수행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쓰게 될 작품은 어떨까.

우리가 쓰는 작품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길 원하는가.


조금만 쉽게 말해 보자.

우리는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더 나아가, 우리는 작품을 통해 어떤 ‘주제의식’을 전파하고 싶은가.


예를 들어 보자.

여러분이 ‘욕망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라는 주제를 설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욕망에 빠져들고 그로 인해 망가지는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욕망을 좇다 가족을 잃거나,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캐릭터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


ㅣ정말 욕망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기만 하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욕망은 무조건 나쁘다”라는 전제를

아무렇지 않게 작품 안에 깔아 두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작품은 현실을 비추기보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된 가치관을

관객에게 들이밀기 쉬워진다.


ㅣ예술의 본질은 인간 사회를 비추고,

그 안에서 본질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데 있다.


그렇게 본다면 욕망은

누군가에게는 삶을 버티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예술을 밀고 나가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니 “욕망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라는 문장이

항상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문장은 너무 단정적이고,

한 방향으로만 닫혀 있는 주제의식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주제의식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할까.


한 번 이렇게 바꿔 보자.


“욕망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까?”


단지 마침표 하나를 물음표로 바꿨을 뿐인데,

주제의식의 방향이 달라진다.


앞의 문장은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다.

욕망은 나쁘고,

우리는 그 나쁨을 증명해 줄 캐릭터와 사건만 꾸리면 된다.


그럼 독자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결국 망가지겠지”라는 생각.

이야기 전체에 대한 기대가 줄어든다.


하지만 “욕망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으로 바꾸는 순간,

우리는 훨씬 더 넓은 가능성을 갖게 된다.


ㅣ욕망으로 인해 망가지는 인물도 쓸 수 있고,

욕망 덕분에 살아남는 인물을 쓸 수도 있다.


또 어떤 인물은 같은 욕망으로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한 문장 차이지만,

이제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독자는 “이 작품이 욕망을 어떻게 다룰까”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결국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나는 이렇게 생각하니까, 너도 이렇게 생각해”라는 태도다.


이 태도는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거부감을 준다.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다양해지고,

서로 다른 삶을 산 사람들이 같은 작품을 보게 되면서

이 거부감은 더 커졌다.


예술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자기 생각을 고집 없이 흔들어 보는 능력이다.


예술은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을 지키는 선에서,

가능한 한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ㅣ나는 지금, 얼마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작품에서

정말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정한 답을 관객에게 강요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자유로워지고 있는가.



[작법 노트] 주제의식을 ‘명제’가 아닌 ‘질문’으로 여는 법


작품을 처음 기획할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정리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이다.”

하지만 이 문장이 너무 일찍, 너무 단단하게 굳어버리면

작품은 살아 있는 질문이 아니라

하나의 주장만 반복하는 강의에 가까워진다.


다음 세 가지를 꼭 점검해 보려고 한다.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꿔 보라: “욕망은 인간을 파괴한다” 대신 “욕망은 인간을 파괴하기만 할까?” “관계는 결국 상처를 남긴다” 대신 “관계는 왜 우리를 상처입히면서도 다시 끌어당길까?” 단 한 글자 차이지만, 이 순간부터 작품은 “증명”이 아니라 “탐구”가 된다. 독자는 결론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가 된다.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인물’에게 시험해 보라: “욕망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을 세웠다면 한 인물에게만 적용하지 말고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인물 셋에게 나눠 줘 보자. 어떤 인물은 욕망 때문에 망가지고, 어떤 인물은 욕망 때문에 버틴다. 또 다른 인물은 욕망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한다.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이 나올 때, 작품의 세계는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결론을 내리지 말고, 독자에게 질문을 돌려라: “그래서 욕망은 나쁘다”로 끝나는 대신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여전히 욕망을 품고 살까”라는 질문으로 끝낼 수 있다. “관계는 결국 상처뿐이다”로 닫는 대신 “그런데도 우리는 왜 다시 누군가를 만나려 할까”라고 물어볼 수 있다. 결론을 닫아버리는 글보다, 독자의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게 만드는 글이 더 오래 기억된다.


주제의식을 명령이 아니라 질문으로 세울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정답이 아닌

여러 개의 삶과 여러 개의 해석을 담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이,

결국 우리가 예술을 통해 지키고 싶은 가치이기도 하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7화세상 가장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 (3)